▲ 1947년 12월 1일 미 보잉사의 최초의 B-47 폭격기 모습 ⓒ http://en.wikipedia.org | ||
미국은 지난 1959년과 1968년 베트남에서, 1961년 라오스에서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제거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비밀 해제된 미 공군 자료를 인용 아주시보(亞洲時報)가 16일 보도했다.
1959년 미 공군 토마스 디 화이트(Thomas D White)장군은 북부 베트남의 여러 목표지점을 선택했지만 다른 군 관리들이 동남아시아국가에 대한 핵사용 요구를 봉쇄했다고 자료는 밝혔다.
비밀 해제된 자료는 “화이트는 재래식 혹은 핵무기 모두를 사용해 베트남 북부 목표지점을 공격함으로써 보급물자 루트를 차단하고 공산 게릴라들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기를 원했다”고 밝히고, “화이트가 북부베트남 선제공격 경고를 요구했으나 다른 군 관계자들은 핵무기가 포함돼 있어 이를 막았고 따라서 7개월 후에 그 제안은 철회됐다”고 적시했다.
400쪽에 달하는 비밀 해제된 미 공군 자료명은 “동남아시아에서의 미국 공군 : 1954-1973 북부 라오스에서의 전쟁(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Southeast Asia: The War in Northern Laos 1954-1973)”으로 미 워싱턴 소재 미 공군 역사 센터가 1993년에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자료는 또 “화이트가 베트남 인근 지역 공격 준비를 위해 필리핀에 있는 클라크 공군기지(Clark Air Base)에서 SAC(전략 공군 사령부, Strategic Air Command) B-47 폭격 비행대대를 파견해 줄 것을 요구 했다”고 밝혔다. 또 핵무기 창고를 열고 핵을 사용하려했던 화이트는 “동남아시아에서의 제한 전쟁의 핵무기(Atomic Weapons in Limited Wars in Southeast Asia)”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 연구 보고서 각주(脚註)에서 “정글, 계곡의 물자보급 루트, 카르스트 지형 및 산악지대에서의 적군의 활동 등 상황 통제를 위해 핵무기 사용에 초점을 맞췄다”고 비밀 해제자료는 밝혔다. 그 지역이 비로 북부 베트남과 라오스를 의미한다고 아주시보는 전했다.
1960년 12월과 1961년 1월 사이 구. 소련은 식량, 연료, 군사장비 등을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 라오스 내 친 소련 세력에 항공보급루트를 통해 제공했었다. 그리고 1961년 3월에 미 합동참모본부는 제공권을 장악하고 핵무기로 완수하기 위해 6만 명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자료는 밝혔다.
북부 베트남 군대와 남부 베트콩 연합 세력이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신년 대공세(Tet Offensive)가 있기 바로 전 1968년 베트남 주둔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William Westmoreland)미 공군 사령관은 핵무기 단추를 누르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자료는 밝혔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령관은 당시 1월 하순경 만일 비무장지대 인근 지역 및 케산 상황이 극적으로 악화 된다면 핵 혹은 화학무기가 사용됐을지도 모른다”고 1970년 미 공군 역사실이 작성한 “동남아시아에서의 공군 : 1968, 폭격 중지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106쪽짜리 “일급비밀” 보고서는 밝혔다.
미국의 일련의 실패한 전쟁에서 미국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대규모 공습은 물론 네이팜탄에 의존했지만 미 공군의 3번의 핵무기 사용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 3개국에서 미국은 힘을 잃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1975년 이들 3개국 모두는 권력을 잡게 됐다. 당시 공산 국가인 중국은 미국의 공격에 대항에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게릴라를 지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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