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미학' 이조 여류시인에게서 찾아본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사랑의 미학' 이조 여류시인에게서 찾아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규정' 임을 기다리는 젊은 여인의 로맨티시즘이 담긴 서정시다.

 
   
  ▲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까치
ⓒ 조대원
 
 

대개의 사람들은 한자어가 어려워서 한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시 중에는 지금의 현대시처럼 많은 운치와 멋이 있는 시들이 많다. 그런 시중에 하나인 <규정(閨情)>은 옥봉 이씨(玉峰 李氏)라는 여인이 쓴 시로서, 임을 기다리는 젊은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는 서정시다.

그녀는 전주 사람으로서 군수 봉(逢)의 딸이었다. 조원(趙瑗)의 부실로서 정철, 이항복, 유성룡 등과 시서가무(時書歌舞)를 즐겼다. 그의 문집으로는 옥봉집(玉峰集)이 있고, 허난설헌에 비교되는 여류시인이다. 그녀의 생존연대는 조선 명종에서 선조 때로, 임을 그리워하고 외로운 심정을 노래한 시가 많다.

규정(閨情)

유약하래만(有約河來晩) 봄이오면 오시겠다 다짐했었지

정매욕사시(庭梅欲謝時) 매화마저 지느니 봄도 가누나

홀문지상작(忽聞枝上鵲) 홀연히 들려오는 까치소리에

허화경중미(虛畵鏡中眉) 헛되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렸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선 한자 풀이로, 첫 행의 유약(有約)은 약속을 말하고, 그 다음 행의 정매(庭梅)는 뜰에 심은 매화를 말한다. 셋째 행의 홀문(忽聞)은 생각지 않은데서 들려오는 소리를 칭하고, 마지막 행의 경중(鏡中)은 거울 속을 말한다.

이 시는 에로스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헤어지지 못하겠다고 님의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는 여인에게 약속을 하고 떠난 낭군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봄이 돌아와 정원에 매화향기가 그윽하게 퍼졌지만, 그래도 임은 오지 않는다.

바람소리, 까치소리, 멍멍개가 짖어도 혹시 임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가 하여서 밖을 내다보고 기다린다. 그렇게 몇 번이고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려진 눈썹을 지우며, 거울 속에 자기 얼굴을 본다. 너무나 서러워 눈물을 흘린다는 시상의 글이다.

봄이 오면 오겠다고 한 임은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다시 와도 오시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여인이 그리움으로 사무쳐 눈물을 쏟아 내고, 한숨짓는 심정을 노래한 것으로,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는 에로티시즘의 시다. 너무나 애절한 심정을 엿볼 수가 있다.

에로스는 그리스 신으로서 젊은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여러 가지로 구분해 볼 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에로스(Eros), 아가페(Agape), 필리아(Philia) 로 나누어 생각했다. 에로스는 그리스 신으로서 젊은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을 말할 때 썼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필리아는 인간의 우정을 말할 때 썼으며, 자연과 문화, 인간과 학문, 예술적 사랑 등 넓은 의미의 사랑을 말한다.

플라톤은 에로스는 정애(情愛)에 뿌리박은 정열적인 사랑이어서 종종 광기의 모습을 보인다. 일자(一者)와 합일하여 참다운 실재와 융합하기를 바라지만, 지상에서 육체적인 생존을 계속하고 있는 한, 신적인 것과의 일체화를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망아활홀(忘我恍惚)의 경지를 끝없이 추구하여서,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아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지만, 결국 이기애(利己愛)에 귀착된다. 이기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뜻이 같거나, 나쁜 사람을 막론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필리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로까지 높아지고 깊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이상 인류를 모두 평등하게 사랑할 수 없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위선이다. 위선에 빠지지 않는 사랑은 자기애적(自己愛的)인 사랑인 에로스뿐이다. 필리아는 에로스적 요소를 잃지 않는 정도에서 사랑에 빠져야하기 때문에, 아가페와 에로스의 양극사이를 오가게 되는 사랑이라고 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아가페의 사랑에 대해 신과 인간과의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고, 신과 인간의 융합은 실제적으로 합일이 일어날 수 없으며, 단지 있는 것은 인간과 신의 사귐이 있을 뿐이다. 신과 인간과는 절대적인 심연(深淵)에 의해서 떨어져 있고, 어떻게 사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존재의 뜻이 거기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신과 인간의 중보자(仲保者)로서 신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났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신의 유일한 증거다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신을 알고 이 중보자가 없다면 신과의 모든 사귐은 끊어진다라고 했다.

어느 것이 더 비교우위에 있는지?

이러한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 어느 것이 더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을 더 중요시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더 그리워하고,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더 중요시하는 필리아, 에로스의 사랑을 추구한다.

이조 시대의 여인들은 들어내놓고 사랑을 하지 못했던 시절에 살았다. 젊은 여인이 떠나간 낭군이 그리워서, 화장을 하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린 눈썹을 지운다. 이 한 줄의 글로 그녀의 애틋한 에로스의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하게 보여진다.

에로스의 사랑이 담긴 시, "규정"은 그 당시뿐만이 아니라 지금에 보아도 대단한 로맨티시즘이 있는 서정시로 보인다. 지금처럼 들어내지 않고 사랑하며,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조용히 기다리는데서 사랑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한시는 곱씹고 되새김질하는데서 그 맛을 더 느끼게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