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조은뉴스 신영수(편집국장)기자 | ||
우리들의 소망은 오직 하나!
나는 배트남전에 참전했던 한 병사의 예기를 하고자 한다.
그는 지옥과도 같은 베트남전에 두 차례나 참전했던 병사였다.
먼저 그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선에 가면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오대천 가운데 쯤 움막을 지어 놓고 칡즙을 팔던 박동석이란 월남전 참전 노병!
정글전에 살포한 고엽제의 후휴증으로 제 몸을 잃어버린 사람, 뒤늦게 고엽제 전우회를 만들어 미국을 상대로 투쟁하던 역전의 용사.
나는 그를 2 년 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때도 오대산 들어가는 진부에서 정선으로 향하는 이 길이었다. 이 길은 언제 가도 좋다. 황장목이 많은 수려한 절벽 아래에 멈추었다. 예년과 달리 이 곳에 한 늙수그레한 이가 움막을 세워 칡즙을 팔고 있었다.
갈증이 난 터라 우리들은 그 곳에 차를 세우고 그의 움막으로 다가갔다. 종이컵에 칡즙을 따라 주면서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1947 년 생, 맹호부대 용사며 성은 박이고 고향이 문경인 그는 고엽제 환자였다. 얼굴에는 어릴 때 앓은 열 병 자국이 가득했다.
얼기설기 지은 움막 뒷 켠은 그의 늙은 노모가 나무에 기댄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그 곳에 있는 동안 노모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오대산 월정사 대웅전 앞에 있는 문수보살상과 같았다. 이 모습은 두고두고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칡즙을 마시는 동안 간단한 말들이 오고갔다.
우리들은 다 마시고도 그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월남전쟁에서 돌아온 후 그의 삶은 망가졌다. 그에게 처자식은 없는 것 같았다. 외진 곳에 살면서도 그는 고엽제 피해자 전우회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전쟁중이었다.
그 상대는 베링거 잉겔하임 제약회사가 다이옥신으로 만든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불리는 고엽제였다. 기억을 더듬자 그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불안해지기도 했다. 모퉁이를 돌아가자 그가 살던, 소나무를 얇게 켜로 잘라 얼기설기 지은 집이 보였다.
아무도 살지 않고 있는 집 앞에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마른 소똥들이 처마 끝까지 쌓여 있었다. 집의 뒷부분은 거의 주저앉았다.
깨진 유리창과 버려진 쓰레기들을 치우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황급하게 떠난 탓으로 이불이 겨울 내내 내린 눈과 비로 젖어 있었다. 아픈 그의 몸이 그러했으리라.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집 아래로 오대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병풍처럼 강을 감싸고 있는 산은 얼마나 오붓한가! 청결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길 가운데 빨래판 같은 얼음이 물 속에 반쯤 잠긴 채 떠내려가고 있었다. 온몸이 썩어 가는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위의 글쓴이가 찾고자했던 그 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우연히도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조국과 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조국은 그들을 이용만 했을 뿐 결코 그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피흘리며 죽어간 목숨값이 결국은 조국의 근대화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에도 "용병"이니 "침략군"이니 하는 불명예마져 그들에게 안겨주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조국근대화의 초석임을 긍지로 여기며 살아가는 그 노병은! 지금 "나는 조국에 바라는 게 없다."
다만 후세들에게 자랑스런 참전용사들의 업적을 전승해 줄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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