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꿩 대신 닭'인 오늘의 내 등산 파트너인 아들은 다음달의 입대를 앞두고는 '나사가 풀려' 요즘엔 밤새도록 게임만 한다. 그러다가 새벽녘에야 눈을 붙이는 관계로 해가 중천에 걸려야만 눈을 뜨니 영 내 맘에 안 든다. 하지만 다음달이면 군인이 되어 실컷(!) 고생을 할 터이니 내 어찌 아들을 지청구할 수 있으랴.
평소 간과했던 등산에 심취하게 된 것은 금년 초부터였다. 올 1월 중순에 처음으로 보문산 정상까지 올랐다. 등산 파트너로는 아들이 동행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여지껏 대전에서 20년 이상을 살면서 보문산을 그리도 숱하게 오르긴 했었다. 하지만 고작 중간 부근까지만 올랐다 내려오곤 했을 따름이었다. 가는 눈발이 흩뿌렸지만 땀이 날 정도로 그렇게 운동도 되어서 좋았고 또한 정상에 오르니 대전시내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주 압권이었다.
"역시 산은 이처럼 정상에 올라야 제 맛이야~"라는 나의 환성에 아들 역시도 "다음주에도 우리 또 올까요?"라며 화답을 했다. 봄을 잔뜩 묻혀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고 내려오노라니 불현듯 다시금 이런 자리에 아내가 없음이 못내 통탄스러웠다.
당시 아내와는 불화가 심하여 별거를 하고 있던 터였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아무튼 나는 그동안 등산을 작심했다가도 으레 토요일 오후만 되면 일주일의 피로를 푼다는 명목으로 술에 떡이 되는 날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러했기에 이튿날인 일요일의 등산계획은 늘상 공수표가 되곤 했었던 것이었다.
'진작에 일요일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이처럼 지척에 있는 보문산을 오르면서 마음을 열고 대화를 교류했더라면... '이라는 회한이 밀물처럼 몰려와 괴롭혔다. 약수를 마시고 페트병에도 물을 담아서 하산을 하는데 눈발은 더욱 강해졌다.
불현듯 맘이 약해져서 아내 생각을 떠올리노라니 다시금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눈발에 뒤섞이는 것이었다. 산을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산이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아주머니랑 함께 오시오~"라고. 귀가하여 등산화와 배낭을 정리하면서 작심했다.
내 이제 폭음에서 탈출할 것이며 아울러서 그동안의 아내에 대한 무관심과 반목 따위 역시도 모두 걷어내겠노라고... 봄과 함께 아내와는 해빙의 하해를 했고 아내의 손을 잡고 보문산에 다시 올랐다. 그러자 보문산은 빙그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두 분이 함께 오시니 보기에도 좋군요~" 등산은 역시 부부간의 사랑마저도 더욱 돈독하게 해 주는 명약이었다.
아내가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갔기에 함께 등산을 못 간다. 하지만 다음주 일요일엔 아내의 손을 잡고 또 산에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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