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열과 카스트의 성지 - 뉴델리,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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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열과 카스트의 성지 - 뉴델리,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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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시[7] 인도India

^^^▲ 인도의 국경일 퍼레이드 장면^^^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 돌아올 수 있어서 더 기쁘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혜택에 다름 아니다. 빛깔이나 맛이 다른 나날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 행복인 이다. 때묻은 아내의 가계부, 온갖 소음과 공해가 설치는 이 거리 저 길목, 음흉한 웃음과 겹겹으로 가면을 쓴 서비스로 완강하게 무장한 직장인들, 그리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많이 너절하게 어지러 지고 더럽혀진 속물근성과 스너비즘.

이런 것들과 우리는 잠시, 기꺼이 절연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로 창문을 연다. 싸~한 풍경과 인연을 맺는다. 옛 이야기 속에 나오는 왕자와도 같이 의연한 마음 되어 이곳 저곳을 돌아본다. 그리고는 마침내 부단한 충격과 놀라움과 신기한 풍물에 지친다. 후줄근한 넝마처럼 우리의 육신을 늘어뜨린다. 리크리에이션을 갈망하게 된다.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이 기쁜 것은 그 때문이다.

인도 ! 4억이 넘는 사람들이 150만의 영국인에 의하여 300년 동안이나 지배를 받아 온 나라, 그 역사의 기적이 넘실거리는 인도에 초대받은 국빈작가로 떠난 것은 93년 3월도 초순이었다. 델리공항에 내려서자 내 신경조직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대뜸 인도가 겪은 불행의 상징인 그들의 가난과 게으름과 불결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고 험한 눈이 여기저기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정체불명의 공포감이 공연히 집적거렸다.

사위에서 풍겨오는 악취에 코를 내밀기가 역겨울 지경이었다. 나중에사 안 일이다. 그것은 악취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즐겨온 향료의 내음이었다. 건물에서도 상점에서도 아름다운 여자의 몸에서도, 음식에서도, 잠자리에서도 그 악취는 풍겨대고 있었다. 참기 어려울만큼.

델리, 뉴델리

관광성 직원의 안내로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델리는 신,구新舊 두면을 함께 가진 도시다. 하나는 영국의 도시계획아래 정치도시로 건설된 뉴델리요, 또 하나는 그 북쪽, 지난 날 무갈 제국의 황제가 주므나 강기슭에 세운 레드 포트 Red Fort의 외곽 도시로 발전한 올드.델리-. 이 두 도시를 합친 것이 델리이다. 인도가 정치, 경제적으로 중립국가라는 사실은 뉴델리에 들어서자 확연히 실감되었다.

공산권의 대사관 등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뉴델리의 거리는 매우 한산하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시가지와 울창한 숲으로 이뤄진 정원들, 어쩌다 한 대씩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 넓고 시원한 주택들, 이런 모습은 차라리 전원지대의 별장이나 비원 숲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멋갈스런 도시풍경은 인도에 그리 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봄베이의 바닷가, 벵갈 만이 보이는 마드래스의 유원지, 이런 것들이 고작 인상적일 뿐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서구식으로 변질해 가는 도시의 모습이나 분위기에 있지 않다. 그들의 풍경과 생활에 있다.

진기한 풍물, 카스트

인도의 연인들은 손을 잡지 않는다. 그렇게 걷지 않는다. 부부끼리도 그렇다. 마치 도망갈 사람이라도 붙잡고 가듯이 연인의 팔짱을 다부지게 끼고 걷는 서울의 정경에 비하면 이만저만 보수적이 아니다. 물론 미니스커트도 장발족이나 히피도 찾아 볼 수 없다. 여인들은 그들의 고유 의상인 사리를 악착같이 입는 것으로 보였다. 남자들의 넥타이는 매우 가늘고 바지는 무척 줍아 보였다. 남자들 역시 사리를 입고 있는 수가 많았다.

뉴델리 최대의 번화가라는 커넛 플레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도시를 벗어나면 도대체 옷을 걸친 것인지 누더기를 걸친 것인지 분별조차 되지 않았다. 남루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옷에 대해서 무관심한 탓일까. 농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옷으로 맵시를 내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걸인이거나 비참한 가난에 시달리는 극빈자로 보이게 했다. 아니다.

이것은 무척이나 불손한 이방인의 무지無知로 치부하는 것이 차라리 낳으리라. 인도의 여인들이 몸에 덕지덕지 보석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보아서도 그렇다. 귀걸이 목걸이를 비롯해서 팔걸이, 발걸이(잔지바르라고 부르는 여러 개의 방울들) 반지, 심지어는 코걸이까지 쓰인다. 미간에는 붉은 점Kum Kum을 찍음으로써 결혼을 나타내는 화장을 하기도 한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은 임자 없는 소가 많다는 점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살생을 최대의 금기로 여기고 살아가는 힌두교도들은 무수한 개, 고양이, 까마귀 등과도 더불어 살아간다. 인도의 가난은 우선 식량난으로 표시하지만 만약 그들이 생각을 바꾸어 가령 우리들처럼 영양 탕도 먹고, 비이프스테이크, 폭찹 돈까스 따위도 먹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들은 쉽사리 그들의 가난을 이겨낼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임자 없는 소나 개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에겐 계급과 종교가 또한 많다.

최고의 귀족 격인 브라만을 비롯, 가장 천한 수드라(노예계급)에 이르기까지, 수천 갈래의 계급이 있단다. 그들의 성姓으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좀처럼 신분을 감출 수가 없단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구태여 자신의 비참한 신분에 대해 분노하거나 회의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의 계급에 대한 숙명적인 사고방식은 어느 율법보다도 강력하고 견고한 힌두교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힌두교를 거부하지 않는 한 인생을 재편성하려는 사회 개혁적인 이념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불교가 처음으로 일어난 나라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끼게 하였다. 인도의 역사는 힌두와 모슬렘의 싸움으로 얼룩져 있다. 마침내 힌두교도 들은 인도를, 모슬렘교도들은 파키스탄을 20세기에 들어서서 세우기까지 했다. 핵 폭탄도 공유한다. 인도의 보수주의자들은 인도를 인도India라 부르지 않고, 힌두스탄Hindustan이라 부른다. 힌두교도Hindu 의 땅 Stan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도에 다른 종교가 없는 것이 아니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기독교, 페르시아 정교등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힌두교에 눈치보지 않고 활기있게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머리에 터번을 쓰고 수염을 울창하게 기른 시크교도 들처럼 활기 있는 종족도 드물 것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인도의 남자는 모드 터번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시크가 아니고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워낙 활동적이기 때문에 마치 인도의 대표적 종족인 것처럼 외국에 알려져 있다.

환락가 제로지대

인도에는 술집이 없다. 술집이 없으니 환락가도 매춘부도 있을 턱이 없다. 프랑스에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는 여행자는, 잘 차린 만찬 장에 도시락을 지참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는 말이 있다. 세계적인 호사가들도 인도에만은 아내를 데리고 온다는 뒷 얘기가 나돌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에 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토속주도 있고 죠니워커도, 화잇호스, 꼬냑도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보다도 힘이 센 디오니소스는 인간이 존재하는 곳마다 술을 만들어 주지 않을 까닭이 없었던 것일까. 그런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은 금주일禁酒日이고 한달에 한번씩은 단식일Fasting day이 있고, 월급날엔 절대로 상점에서 술을 팔지 않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럭저럭 디오니소스는 체면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성지 바라나시의 질감質感

짧은 시간동안 인도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머문다고 해서 인도가 파악되는 것도 아니다. 인도여행의 클라이막스는 바라나시였다. 갠지스 강변의 성지 바라나시에는 쾌청한 대낮에도 죽음의 재가 날린다. 산다는 일이나 죽는다는 일이,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의 범백사 凡百事가 그곳에선 한낱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 버리는 미풍의 무게인 양 속절없는 일이다.

허무한 일로나 생각될 것이다. 고행의 성지 바라나시! 바라나시를 모르고 인도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곳에 이르면 비로소 인도에 대한 인식의 안개가 걷힌다. 그들의 가난에 대해 침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사라지게 된다. 오히려 우리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진지하지 못하였던 것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거기엔 매일이면 매일 연기를 뿜어대는 정경이 있다.

힌두교도의 시체가 한줌의 재로 갠지스강에 흩날려지기를 갈망한 소원대로 강물 위에 뿌려진다. 죽음을 기다리는 힌두의 노인들이 마지막 수도와 고행에 전념한다. 목청을 돋우어 진리를 설파하는 노인들 옆에는 남녀 히피와 젊은 고행자들이 혹은 킬킬대고, 혹은 심각한 얼굴로 둘러앉아 있다. 인도사람들은 모기나 파리도 죽이지 않는다. 도둑질도 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그들은 조용히 드러누워 차라리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 것들이 바라나시에 가면 한꺼번에 이해된다. 그런데......한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인도여인들의 살인적인 관능미와 매혹적인 눈동자다. 거대한 사원에는 리얼한 성교조각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것도 해괴한 일이다. 인도의 섹스 바이블이라고 하는 '카마수트라'는 현대인들이 생각해내지도 못할 기기묘묘한 섹스테크닉을 가르치고 있다. 광풍이라도 일으킬 듯한 그들의 관능미, 불꽃 속의 에메랄드처럼 번쩍이는 그네들의 눈동자, 카마수트라, 리얼한 성교조각- 이것은 힌드이즘의 정신주의에 대한 원초적 반역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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