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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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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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 장편소설..10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

소설문학의 준령 박상륭 작가가 십 년 만에 큰 숨을 토해낸다. 자신의 일관된 화두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며 통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 온 박상륭이 이번에는 니체와 그의 차라투스트라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칠조어론> 이후 십 년 만의 장편소설인 <神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는 니체에 대한 도전장에 다름 아니다. 미적 사유의 극한에서 탄생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이번에는 박상륭이 창조한 종교적 삶의 세계로 자리를 옮긴다.

박상륭이 자유자재로 해석한 차라투스트라의 사상을 니체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니체는 자기 사상의 미래의 운명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박상륭도 자신의 차라투스트라가 니체의 너머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건 이 맞대결은 숙명적인 것이었다. 

 
   
  ^^^▲ 박상륭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표지
ⓒ 문학동네^^^
 
 

문학평론가 김재인의 이 책에 대한 평이다.

소설은 니체의 그것에서처럼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한 늙은 성자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서른이 되었을 때 그는 자기 고향과 고향 호수를 버리고 산으로 갔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자신의 고독을 즐겼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마음이 변했으니 (……) 나는 너처럼 아래로 내려가야(untergehen)만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아래쪽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 보아라! 이 잔은 다시 비고자 하고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인간이 되고자 한다. ―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내려옴(Untergang)은 시작되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니체의 텍스트와 유사한 서사구조 위에서 전개된다. 니체의 그것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소설 역시 주인공 차라투스트라의 하산으로 사건이 시작되고 있고, 주인공과 한 늙은 성자(기독교도)와의 만남과 대화를 중요한 서사적 요인으로 채택하고 있다.

(……) 보라! 이 술잔은 다시금 빈 잔이 되려고 하며, 그리하여 차라투스트라는 다시금 인간이 되려고 하는 도다! 차라투스트라는, 부르짖듯 그렇게 말하고, 세월 탓일 것이고, 또 그러는 동안, 쌓이게 된 지혜의 먼지에 덮인 탓일 것으로, 흐리게 된 눈, 어죽은 삭신으로, 제각각 저에게 편한 자리를 찾아, 끌박히듯 웅숭크리거나 똬리쳐 있는, 자기의 독수리와 뱀을 건너다보며, 마음으로, 눈으로, 하직을 고했다. (……) 새는 그리고, 비척이며 산을 내리는 차라투스트라 자기의 오랜 친구에게도, 모든 유정에게와 꼭 같은, 그런 공평한 눈길을 보냈다. (……) 허연, 늙은네 하나가, 지팡이에 의지해 서서. 손짓해 부르고 있음을 보았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에서

그러나 이 모든 서사구조와 소설적 모티프들은 니체의 그것과는 전혀 상반된 함의를 갖는, 의미상의 철저한 변용과 전복의 과정을 거쳐 채택된 것들이다. 가령,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의 하산행위는 니체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후자의 하산이 초인적 경지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몸소 실천하고 뭇 인간들에게 가르침을 펼치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전자의 그것은 기왕의 자신의 신념을 반성하고 재점검한 결과로서의 '입장 수정' 혹은 '입장 철회'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니체의 텍스트에서는 거의 침묵한 채로 차라투스트라에게 경멸당하던 기독교도 '늙은 성자'는, 이 소설에서는 2장(차라투스트라에게 답答한다) 전체에 걸쳐 차라투스트라에게 조목조목 반격하고 있다. 이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늙은 성자'의 말이야말로 박상륭이 하고자 하는 그것에 다름아닐 터이다.

 

 
   
  ^^^▲ 소설가 박상륭(2003년 2월 28일)
ⓒ 김동권^^^
 
 

박상륭은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경희대 정외과에서 수학했다. 1963년 성경의 유다 모티프를 도전적으로 재해석한 단편 「아겔다마」로 『사상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그는 1973년 『죽음의 한 연구』를 발표한 이후 이십여 년간 『칠조어론』 집필에 전념하면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죽음과 재생의 측면에서 탐사해왔다.

그의 문학은 동서고금의 종교 신화 철학을 아우르는 심오하고도 방대한 사유체계와 우주적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독보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광대한 차원으로 확장시켜왔다.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소설집 『열명길』 『아겔다마』 『평심』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산문집 『산해기』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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