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뉴스타운>에 애정을 갖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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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뉴스타운>에 애정을 갖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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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중매인 시작했을 때 온갖 어려움 겪던 기억이 나서

내가 <오마이뉴스>보다 <뉴스타운>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부모 마음에 자식도 못난 자식이 더 애틋하다고(<뉴스타운>에서 오해없기 바람), 처음 수협중매인을 시작했을 때는 생선 생자도 몰랐지요. 고향이 경북 북부지역이라서 바닷가 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냥 가정에 앉아 있기 보담은 뭘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무엇을 해야 될까 생각하다 마침 우리집 밑에 수협이 있어서 지나다보니 수신호라던가요? 그 몸 동작이 매우 역동적이었고 활력이 있어 보였읍니다. 그래서 수협중매인은 안된다는 걸 우기고 결국 수협중매인이 되었지요.

그런데 보기와는 딴판으로 막상 시작하니 거래처도 없고 기존중매인들의 기득권 실력 행사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부산공동어시장을 한번 가봤습니다. 그리고 진해수협 15번이라고 나자신을 알리고 다니면서 거래처를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때 마침 부산어점 형님(부산여고출신)이 남편이 전방에서 대위로 제대하고 시어머니께서 자갈치에 좌판이 있으므로 그걸 맡아서 하던 중 그 형님이나 나나 신참이기는 마찬가지였기에 의기투합해서 서로 거래를 하게되면서 자갈치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초엔 조금 때(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은 시기)는 생선이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이 났고, 한식 때는 물발이 세서 생선이 나지 않는 걸 고민하다가 수협 내에 수족관을 만들어서 조금 때면 이끼 좋은 것(싱싱한 것)만 저장 하였지요. 그래서 파도치고 물발이 세서 작업이 안되면 수족관에 있는 활어를 풀어서 꾸준히 거래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차츰 장사도 그런대로 잘 되어 가는 편이었는데, 기존 중매인 입장에서 보면 내가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별것도 아닌데 새벽부터 "귀때기 새파란 년"이란 험악한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고, 당할 때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지만 세게 치면 칠수록 더 높이 튀어오르는 공처럼 악착같이 거래처를 늘려 갔지요.

그러던 중 진해 해군통제부에서 (매년 있는 해군장교 부인회 젓갈바자회용) 멸치를 구입 한다는 정보를 알고 해군 작전참모 사모님을 따라 다녔지요. 그때 우리 아이는 겨우 돌을 막 지났으니 늘 제가 업고 다녔습니다.

처음엔 믿음이 안가는지 들은 척도 않더니, "15번이란 사람 멸치 납품했다는 명분만 주십시오" 했더니 보기에도 딱했던지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와서 멸치 700상자 우선적으로 납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전날까지 진해만에서 잡히던 멸치가 갑자기 딱 끊어지고, 영 올라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발을 동동 굴렀지요. 장사는 말이 곧 약속이므로 어떻게든 약속은 지켜야 되므로 남해 미조, 충무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남해 미조항에 멸치가 많이 올라온다는군요. 멸치군이 남해쪽으로 이동했는가 봅니다. 결국 남해 미조로 가서 밤새도록(미조항에는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경매함) 멸치를 사서 작업하여 통제부에 시간 맞춰 넣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처음 중매인 하니 어느 누구도 물건을 팔아줄 생각도 않았습니다. 생물이라서 그날 팔지 못하면 그냥 손해를 봐야 하기에 처음엔 손해도 많이 봤습니다. 경매가 500원이면 300원에 팔고 또 생선을 잘 몰라서 손해보기도 하고 해서 남보다 일찍 3시쯤(경매시작은 새벽5시)에 나가서 배마다 다니면서 누구 배엔 어떤 생선이 있고, 어떤 생선은 무게가 얼마 나간다는 것까지 기억해서 경매대에 올라 섭니다.

정말 피나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땐 젊었고 세상 겁나는 것도 없는 생짜였으니까요. 그 과정에 경쟁 상대(지금도 중매인 하므로 실명은 안밝히겠음)가 수협 직원이나 거래처에 온갖 모략을 다하므로 심지어는 경매 정지 처분까지 받는 등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흘린 눈물을 모으면 바다만큼 된다고 할 정도로 분하고 억울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 싶게 서로 친숙해지고, 또 바닷가 사람이라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훌훌 털어 버렸습니다. 그때 내가 그들의 압력에 굴복해 장사에서 졌다면 그런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끈질긴 생명력이 생기더군요. 경매를 마치고 나면 서울로(비행기를 타고 서울 남대문시장에서부터 노량진까지) 부산으로 발을 넓혀 갔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뉴스타운>도 앞으로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정도만을 걸어야 언제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뉴스타운>에 애정이 갑니다. 비록 인터넷상의 만남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므로 우리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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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목 2003-07-17 07:09:25
이화자님의 글 안엔 감동이 있습니다.
이화자님의 글 속엔 희노애락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이화자님의 글 들엔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나요?
제겐 이화자님이 아마도 이모뻘 정도 되는 분 같은데요!

전 제가 올린 기사를 검토하기 위해 보고, 다른 기사들은 자주 안 봅니다. 그러나 왠지 이모님의 글은 저를 이끌더군요.
다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이모님!
이모님의(^^) 글에서 잠시 잊어버릴뻔 했던 삶의 교훈들을 새기게 됐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끈기와 인내!

더군다나 요즘같이 쉽게 인생을 저 버리는 세태속에 일침을 가하는 글이기도 하네요.

종종 삶의 희망을 일구는 글들로 감동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성훈 2003-07-17 21:12:18
간단하게~ Me too. 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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