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존'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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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존'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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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사연

한때 일꾼들의 힘찬 작업으로 열띤 모습을 보이던 곳이, 이제는 버려져서 고요함만이 가득 차 있다. 농장의 기계와 각종 작업 도구들은 서서히 녹슬어가고 있다. 농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농장의 작물을 사가는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더 고급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들을 살 돈은 없다.

설비를 살돈은커녕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커피 노동자들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커피 노동자들은 굶주림과, 영양결핍,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들판에서 자라는 풀같은 것을 먹고 지낸다. 가끔 마을의 남자들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보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많다.‘

중남미의 유력 일간지에 실린 커피위기에 대한 기사의 일부이다. 지금 중남미는 커피 수확량의 감소와 커피 값의 하락으로 이중의 위기를 겪고 있다. 커피의 산출이 줄어들면 값이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수확량이 줄어드는데 가격은 떨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전 세계 커피의 70%를 생산해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틈타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커피의 재배가 급증하면서 중남미 커피가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같은 땅에서 커피를 재배해온 중남미에 비해 새로 커피 생산을 시작한 베트남이나 라오스의 생산력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커피를 재배해 노하우가 더 많이 축척되었을 것 같은 중남미가, 최근 커피생산을 늘리는 나라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모토컬쳐 농법 때문이다. 커피는 사탕수수, 옥수수, 바나나 등과 함께 중남미의 모노컬쳐(단일작물재배) 농업의 중요한 축을 지켜왔다. 그러나 모노컬쳐 농업의 단점인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른 폐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노컬쳐 농업의 특성상 한 가지 작물만 수십년, 수백년에 걸쳐 재배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력이 떨어져 생산량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자국내의 곡물수요를 맞추기 위한 자영농에 의한 농업이 아니라, 처음부터 식민지에 대규모의 농장을 마련하여 수출하기 위한 소작농의 형태를 취하여 온 농업 형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격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농업부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토지는 일부의 사람이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다. 그들은 농장에 큰 관심이 없다. 커피 산업이 기울어 간다고 생각하면 다른 산업을 생각하면 된다.

최근 중남미의 신문에 실린 한 칼럼은 “왜 그들은 아직도 커피에 집착하는가. 오래된 건물, 수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기구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은 길만 닦고 광고간판만 붙이면 그대로 아주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적고 있다. 도시 거주 상류계층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 토지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오던 원주민(인디헤나)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땅을 떠날 수가 없다. 땅은 그들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전통문화를 지켜온 그들은 읽고 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제대로 말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도시에 나가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중남미를 현재 덮고 있는 커피위기의 본질이다. 국민의 상당수가 위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적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돌려주려고 내전까지 벌여온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잦아들고 있다. 물론 멕시코의 사빠띠스타 운동, 에쿠아도르의 원주민 운동, 브라질의 무토지 소유자운동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중남미 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당장 약속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또 하나 슬픈 것인 것은 이들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베트남이나 라오스역시 이들 못지 않게 가난한 나라라는 점이다. 커피는 연간 강우량은 1500-2000mm인 열대와 아열대 지역, 그리고 일부 온대지방에서 잘 자란다. 위도 상으로 북위 28도에서 남위 30도 사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들 지역을 커피 존(Coffee Zone) 또는 커피 벨트 (Coffee Belt)라 부르기도 한다.

지도를 펴놓고 이들 지역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전통적으로 아시아권의 커피생산국인 인도네시아의 자메이카, 새로이 등장한 베트남과 라오스, 그리고 아프리카,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이 놓여있다. 이들 나라의 농촌에는 한결같이 가난하고 소외받는 농민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 그래서 커피라는 노동집약적 산물에 집중하는 나라. 커피가 경쟁력을 잃어서 작물을 바꾸고 싶어도 자신의 땅이 아니라서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곳, 세계 곳곳의 커피 존에는 그렇게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우아하게 마시는 값비싼 커피에는 그들이 눈물겨운 가난 속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조금씩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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