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5년 대한민국 역사에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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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65년 대한민국 역사에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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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호를 위한 십자군, 월남파병

 
   
  ▲ 월남전에 파병되는 맹호부대 환송식
www.vietnamwar.co.kr
 
 

최초의 한국군 월남 파병

세계의 불씨를 안고 동. 서 양대 진영의 냉전이 불꽃을 튀기는 열전장으로 화한 월남,

지난 날 한국 전란과 너무나 닮은 월남의 내전은 세계의 이목을 폭양이 작렬하는 동남아의 한 모퉁이인 정글 속에 집중시킨 채 점점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전화에 휩싸인 월남에서 베트콩과 고전을 거듭하는 정부군을 도와 군사 고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월남 내전의 작전을 도맡아 고전 분투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의 어떤 여론이나 비난에도 결코 월남을 포기할 수 는 없었다.

그러나 세계 정세와 여론 때문에 전투 부대의 대규모 파견만은 감행할 수 없었으므로 미국의 고민은 심각한 것이며 거기에 따르는 타격과 손실 또한 막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혼자 담당하기에 벅찬 월남전에 미국의 원조에 얽매어 있는 우방국들의 도움을 요청, 한국에도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월남에 비 전투요원인 1개 야전 외과 병원을 파견한 바 있는 한국에 대하여 월남은 다시 공병과 수송병과를 중심으로 자체 방위를 위한 경비병을 포함한 정규군 1천여명의 파견을 요청해 왔고, 미국은 월남 파병 한국군의 봉급과 보급품의 담당과 함께 월남전에 소요되는 군수품 중에서 국내생산 가능품목에 대한 한국에서의 구매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한국 정부측에 적극적인 월남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은 6.25 때 수많은 인명과 물자의 희생을 무릅쓰고 한국을 공산 침략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의 참전과 지원을 상기하더라도 미국의 월남전 지원 요구를 의리상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비대한 한국군의 유지와 장비 현대화 및 보강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던 한국의 처지로서도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병안 국회 통과

1965년 1월 26일 박 대통령은 국회의 월남 파병안 동의 여부에 관한 표결에 앞서 “현재 월남을 불태우고 있는 공산 침략의 불씨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협조하는 것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최상의 길이고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에 월남파병을 결정하였다”고 밝히고 정부는 국토 방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지원을 월남 공화국에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평화의 십자군 환송

1965년 2월 5일 백설이 내린 중부 전선의 국군기지에서 결단식을 마친 장병들을 마지막 환송하는 국민의 식전이 서울에서 거행되었다. 2월 9일 하오 2시 서울 운동장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시민, 학생, 군인 등 3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월남 파견 장병의 환송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의장대를 사열한 후 “6. 25 때 우리를 도와준 자유 우방의 전우들과 똑같은 자유 수호를 위한 십자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선량한 우방을 도와 주기 바란다”고 치하하였다.

식은 최두선 대회장의 식사, 이효상 국회의장의 국민 대표 환송사에 이어 박 대통령의 하사품 수여, 기념품 증정, 조 단장의 답사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조 단장은 답사를 통하여 “어떠한 역경을 당하더라도 공산 침략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여 전우의 나라 월남 땅에 자유의 생생한 뿌리를 심어놓고 꽃을 피우겠다”고 다짐하였으며 답사를 하고있는 동안, 주변은 출정하는 남편, 아버지, 오빠를 지켜 보고있는 가족들은 모두 경건한 표정으로 그들의 장도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고 있었다.

이어 파월 장병에 대한 꽃다발 증정, 무학 여고생의 환송의 노래에 이어 대법원장의 만세 삼창으로 끝나고 파월 부대의 시가 행진으로 들어갔다. 건투와 필승을 비는 전 국민의 환송속에 조국을 떠나 월남으로 향한 국군 비둘기 부대 제 1진을 태운 우리 해군의 LST함정 5척은 남지나 해의 거센 파도를 헤치고 2월 25일 새벽, 사이공 강 어구 붕타우를 지났다.

10일 동안 미국 제 7함대 소속 함정과 함재기의 호위를 받으며 항해를 계속한 해군 LST함정 수송단은 사이공 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월남 항공기와 해군 함정의 엄중한 에스코드를 받으며 월남의 수도 사이공으로 향하였다.

드디어 긴 항해를 끝내고 사이공 부두에 도착한 비둘기 부대는 월남 군악대의 아리랑 연주 속에 월남 정부 고위 관리와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그 역사적인 첫발을 월남에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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