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루주룩 주루룩
밤비 소리가 듣기 좋다. 불을 끄고 창문을 연다. 그리곤 창밖을 내다보고 서서 정처없이 내리는 빗소리로 마음을 보낸다.
주루룩 주루룩
비는 이따금 바람에 날려 내 얼굴에 뿌리다가 또 바람에 밀려 저쪽으로 가버린다. 깊어 가는 밤을 따라 빗발이 굵어지는가 했더니 더 세차게도 내린다. 쉴새없이 내리는 빗소리에 내 기댄 마음을 흥건히 적시려고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나 보다. 바람이 조금 거칠어 지다간 다시 얌전히 비만 내린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비가 오면 정신을 흘리곤 했던 날이 오늘따라 생생하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유리창가에 앉아 저 멀리 들판에서 줄지어 밀려오는 소나기에 정신을 팔곤 했다. 책장이 넘어가는 일이야 내가 알바 없이 앞에 앉은 학생의 등에 얼굴을 숨기고 멍청하게 소나기를 바라보다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비가 오면 언제나 마음이 가라앉고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왠지 모르지만 마음이 느긋하며 여유가 생기고 편안해진다. 시간에 대한 집착이 무디어지고 인생사에 집념도 수월해진다. 바쁠 것도 없고 걱정될 일도 잊어버린다. 만 겁의 근심도 내려 앉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빗물에 젖어 팽팽한 신경이 퍼지는 것일까. 급할 일도 걱정되는 일도 없어지는 걸 보면 마음과 몸에 습기가 푹 젖어들기는 드는가 보다.
온갖 상념이 애조(哀調)처럼 밀려왔다간 그저 빗소리에 다시 밀려가 버리는 공허한 마음. 불을 끈 채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번엔 사념들과 함께 우루루 밀려드는 빗소리. 그를 따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섬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오니 마음도 몸도 한량없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외딴 섬에 홀로 있기라도 하듯 미묘하고 아스라한 쾌감 같은 느낌마저 저려 든다.
마음이, 세상사 어느 일에도 기울지 않고, 어제와 내일에 얽매이지 않고, 사방에 주착됨도 없는 나를 다독거릴 것도 없이 그저 무심히 쏟아지는 빗소리에 나를 송두리째 맡겨 놓은 이 밤, 속마음까지 젖어 아무런 여한조차 없이 말갛게 빈 마음이 된다.
인기척이 끊긴 지 오래다. 빗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 목을 끌어안기나 하듯 더 세차게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듣는다.
주루룩 주루룩
잠을 설치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창가에 서니 바람에 날려 내 얼굴을 흠뻑 적시는 빗방울. 턱을 타고 젖어 내린 빗물이 가슴 한가운데로 흘러들어 속절없는 세월에 묻혀버린 흔적을 흥건히 적신다. 절로 살아나는 온갖 사연들이 눈물겹게 그리워지는 밤이다.
미명에 아직도 창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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