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암 송시열 선생의 초상화 ⓒ 위키백과^^^ | ||
선사(禪師)가 대꾸했다. “없다(無).”
이것은 무문관(無門關) 제1칙에 나오는 화두(話頭)이다.
무문관은 중국 남송 말기의 승려였던 무문 혜개(無門慧開 1183-1260)가 도합 48칙의 화두를 머리말과 함께 편집한 노트이다.
여기서 퉁명스럽게 응답하는 스승은 조주 종심(趙州從諶 778-897)이다.
조주는 재치가 넘치는 화두를 후세에 여럿 남기고 있는데,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테마는 특히 무자(無字)로 요약된다.
그런데 만약 그 학승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습니까?”라고, 처음부터 네거티브로 질문했다면 선사는 무어라고 대답했을까? 아마 조주는 “있다(有).”라고 역시 말을 뒤집었을 것 같다.
이러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승은 “유무(有無) 패러독스”에서 벗어나 있었다. 둘째, 그의 관심은 “다람쥐 쳇바퀴”에서 맴도는 제자의 무명(無明)의 틀을 깨뜨리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조주의 뜻을 요약하면, 개의 불성 유무는 수도자가 해탈하는데 괄호 밖의 자료에 불과하다. 전생이 개였던지, 사후에 개로 환생할는지, 이런 것은 쓸데없는 망상일 따름이다. 해탈은 철저하게 “나, 지금 여기”에서 시작한다. “송장 끌고 다니는 놈, 이 뭣고? 무아(無我)”, 이렇게 조주는 자문자답했을 것이다. 이때 무아는 생사의 경계(半)에서 그 너머(極)로 자리 잡는 상태이리라.
탄강에서 승천까지 예수의 삶은 무아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메시야로서 마지막 3년 동안 보인 모습은 잘 닦인 유리창처럼 투명하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움으로써 세상 너머로 천국을 비추었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선교 첫 말씀은 “회개하라(마가 1:15)”였다. 회개는 유아(有我)에서 무아로의 전환, 즉 세상차원에서 천국차원으로 자기를 뒤집는 과정이다.
여기서 예수를 통한 비움은 역동적이다. 이 비움은 채움과 쌍방향 가역반응이 일어난다. 즉 “세속의 나”를 비우면, 곧 “천국의 은혜”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물통 속에 빈 컵을 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보면, 채움이 있기에 비우는 것으로 뒤집어볼 수 있다. “먼저 물통, 나중 빈 컵”으로 정렬시키면, 예수의 탄생은 “하늘 영광, 땅에 평화”의 팡파레로 찬양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상에서 특이한(unique) 종교의 나라이다.
1. 고조선 이래 제천(祭天) 신앙이 풍속(風俗)으로 전승되고 있다.
2. 불교로 중세(中世)를 열었고, 선종(禪宗)의 법통이 계승되었다.
3. 성리학의 윤리체제로 유가(儒家)의 도통(道統)을 생존시켰다.
4. 자생한 그리스도교가 근대를 선도하며, 섬김과 나눔을 실천했다.
21세기는 분자생물학이 과학기술을 이끌 것이다. 시대는 인간이 자존심을 잃고 짐승과 뒤섞일 수 있다는 문명적 전환점을 향하고 있다. 인류는 하나의 종(種)으로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한국은 인류의 성골(聖骨)이 사는 지구의 궁궐로서 남아야 한다.
시끌벅적했던 2007년을 마감하며 한 가지 종결지은 것은 이명박 차기대통령 당선자이다.
대한민국을 버스라고 친다면 앞으로 5년간 우리가 그에게 운전대를 쥐어준 셈이다. 그는 개신교 장로이다. 당선된 후 맞이한 첫 주일을 예배 보는 것만으로 대외활동을 줄였다고 한다. 선거운동을 승리로 이끄는 동안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며 쉬었던 것으로 단순하게 볼 수 있다.
단지 일요일은 쉬는 날이란 보편적인 상식을 이명박이 실행한 것이라면, 앞으로 펼쳐질 그의 국정운영 역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 교파가 보여주듯 배타적인 기독교 도그마를 실천한 것으로 간주된다면, 불교계를 비롯한 다른 종교와 그 밖의 안티 기독교로 편향된 일부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갈등을 부를 수도 있다.
기독교와 불교는 종교로서 서로 섬기며 평화를 나눌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사이 역시 상대적 가치로서 존중하며 한 쌍의 철학으로 공존가능하다. 이는 신학과 수학이 더불어 같은 포럼에서 함께 만날 수 있음과 다르지 않다. 또 “잃어버린 10년”이란 선거판 슬로건도 당선자가 승화시켜야할 정치과제이다. 좌파와 우파는 정치적 한 컬레이며, 한 수레가 굴러갈 두 바퀴이다.
17세기 우리 민족의 존립은 가물거리는 촛불 같았다.
왜란에 이은 호란으로 “일번지 민족”이란 자존심이 바닥에 추락했을 때였다. 송시열(1607-89)은 무엇보다 먼저 도학의 전통이 해동으로 건너왔음을 천하에 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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