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실패와 또 다른 시작
쓰라린 실패와 또 다른 시작
  • 김광진
  • 승인 2003.07.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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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패배는 새로운 출발일 뿐이다

^^^▲ 서울 하늘 아래 두 모습지난 2월 14일 오전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퍼포먼스(오른쪽)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용산 미 8군사령부에선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주한 미군에게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초콜릿을 전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라크 전쟁을 찬성했던 국가들이 있었다. 그 국가들 중에는 이라크 전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려는 국가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국가들이 있었고, 그런 목적으로 전쟁을 이끌어가는 강대국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에 마지못해 찬성을 했던 국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강대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었다.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일찍부터 이라크 정부의 전복과 이라크에 걸린 정치지적학적, 경제적 이익을 자신의 국가적 목표로 분명히 규정하였다. 유엔의 입장과 상관없이 여하한 경우에도 자신의 국가적 이익을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전방위적인 외교공세를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미국의 전쟁을 반대한 국가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라크에 대해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중국이나, 러시아, 유럽의 여타 나라들이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 것은 국제역학의 관점이나 지정학적, 석유자원 확보와 그에 대한 이권이란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특별한 이권이 걸려있지도 않는 약소국들 중에, 21세기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거대제국을 이룩한 미국의 전쟁을 반대한 국가들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이익이 걸린 전쟁에 당연히 찬성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아랍권의 일부국가와, 동남아시아국가들, 그리고 전통적인 미국의 앞마당이었던 멕시코와 남미국가들이 미국이 그토록 강력하게 추진한 전쟁에 명백한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동안 아랍권의 일부 국가들의 정부는 자신의 권력을 미국의 영향력 하에서 유지해왔었다. 그런 정부를 깔보듯이 미국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편파적 입장등 중동지역 국가에 대해 미국의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아랍민중의 자결권을 무시하고는 이런 미국의 행태로 인해, 중동 지역의 국민들 사이에는 광범위한 반미감정에도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부는 충실하게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왔다.

정권기반이 취약한 이들 국가의 운영자들로서는 국민들의 요구보다 미국의 요구를 더 잘 따르는 것이 정권유지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 사이에 들끓는 반미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그들이 이라크 침공 때는 더 이상 미국에 협조를 하지 않았다. 일부국가는 명백한 반대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그것은 더 이상 미국의 요구에 순응할 경우, 정권의 유지가 힘들 정도로 국민들의 정서가 극한적인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동남아 회교권 국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 역시 전 세계적으로 공감되고 있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부당함과,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더우기 이들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지만 국민의 다수가 회교신도인 나라들이 아니었던가. 회교 형제국에 대한 침공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을 달래기 위해서는, 1997년의 금융위기를 겪은바 있는 이들 국가의 정부들마저도 미국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멕시코는 어떤가. NAFTA 가입으로 멕시코의 거시적 경제는 안정되어 가는 것 같으나, 미국의 농산품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던 농민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하고 있다. 농민의 위기는 결국 전체 빈민의 위기가 된다. 농촌이 붕괴되면서 도시로 밀려드는 거대한 인력의 존재는, NAFTA 후 늘어난 봉제 임가공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여건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늘어나는 공장의 일자리보다, 농촌에서 몰려나오는 대기노동자의 공급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남미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남미 각국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세계은행 체제에 편입되었고, 그로 인한 폐해가 현재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이들 국가들이다. 오랜 기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 국가 기간산업은 외국인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들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혹한 감원을 실시했다.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이상이 비정규노동직이 되었다. 그 결과 노조가 붕괴되고 노동조합은 약화되었다지만, 토지가 없는 농민과 실업자들은 이제 이들 국가의 정권의 향방과 정책결정에 유례가 없는 강력한 압력세력이 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운동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배경으로 경제적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이라면, 이들 빈민들의 투쟁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의 생존적 차원의 투쟁이기에 쉽게 진압되기도, 와해시킬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이들은 아이들과 여인들을 앞세워 도로를 점거하고 정부를 압박한다. 토지가 없는 농민들은 경작하지 않는 부재지주의 농토를 무단 점거해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단지 생존권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이렇게 내몬 장본인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이라크와 같은 나라를 침공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반대세력들의 열정적인 전쟁반대 노력과 한줄기 여린 희망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제국은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하나의 국가를 간단하게 점령해버렸다.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다는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제 그들에게 전쟁이란 쌍방이 피를 흘리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장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적을 제압하느냐 하는 게임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동안 전 세계의 국민들의 노력과, 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부들이 힘을 뭉쳐 막으려했던 전쟁은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한때 세계를 뒤덮던 ‘평화의 열망이 세계를 지킬 수 있으리란 희망에 찬 기대’는 산산이 무너져 버렸다. 제국은 그토록 강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쓰라린 실패는 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승리를 향한 시작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유지확산하기 위해 기꺼이 전쟁국가의 역할을 하는 마다하지 제국에 맞서려는 헛된 노력을 버리라고. 또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이미 대세로 다가온 세계적 질서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편입되는 것뿐이 아니냐고 말한다. 또 그들은 말한다. 무력까지 동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제국의 경제적 침탈행위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과연 무엇이 있는가라고.

나는 대답한다.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고. 그러나 대안의 싹은 이미 우리들 안에서 싹트기 시작하고 있지 않느냐고. 제국의 힘이 강력하지만, 그 힘을 자의적이고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제국은 도덕성을 잃었다고. 부당한 힘의 거대함에 직면해서 우리는 이미 조금씩 자신의 의지를 싹틔우고, 키우고, 전파하는 자발적인 노력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느냐고.

효순이, 미순이 촛불집회에서부터 이라크 전 반대 집회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우리 안의 에너지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그리고 거대하게 분출된 적이 있었던가?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역사상 이토록 전 세계의 민중이 단합하였던 적이 있었던가. 자국의 이익과 관계없이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한 가지 목표를 위하여 노력하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러한 힘들이 그들의 정부로 하여금 거대한 제국에 반대표를 던지게 하지 않았던가?

제국이 세상을 이렇게 강하게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적 단위에서 제국의 힘에 반대하고 나서기는 힘들다. 그러나 제국의 힘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의 삶의 질곡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용기를 얻는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에 처한 사람보다 더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그들의 힘이 세계적인 연대를 형성하고, 하나 둘씩 국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문제의 경우처럼 제국은 다시금 하나하나의 국가를 압박하여 오고 있다. 그토록 거대한 반대의 물결이 일어도 제국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간단히 이라크를 제압해 버렸듯이 또 다른 하나의 국가를 쉽게 황폐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이 심할수록 그에 대한 저항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가장 많은 것을 내어준 남미에서 저항의 불길이 가장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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