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날마다 행복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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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날마다 행복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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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말간 얼굴을 들여다 보며 화장을 하는 순간 여자는 행복을 느낀다. 루즈는 무슨 색깔로 바를까. 분홍, 빨강, 장미빛 등 이것 저것 발라 보고 지우기를 몇 차례 한다.

마땅히 갈 데도 없지만 시장이나 백화점에라도 갈 때면 괜시리 설렌다. 피부 빛깔이 검지는 않을까. 컬러빛이 튀지는 않을까. 촌스럽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내게 된다. 그러다 20대의 튕기는 듯한 탄력과 윤기나는 피부빛깔을 잃어버린 데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거울 앞에 토해낸다.

'그래도 이만하면 봐줄 만 할 거야'라며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공주병에 걸린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딸아이가 자기도 화장을 하겠다고 루즈로 얼굴에다 그림을 그리듯 칠하고 스카프를 길게 땋아내려 자기 머리에다 핀으로 고정시키고는 동화속 공주와 왕자가 된듯이 행동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놀기를 좋아하더니 9살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젠 보자기를 이용해 치마도 만들어 입고 곧잘 바느질도 한다. 여느때처럼 무언가를 만들 참인지 반짇고리를 내린다. 거울 뒤로 비쳐드는 그리움 한덩어리가 묻어 내린다.

작은 상자 속에 넣어 반짇고리 깊숙이 숨겨 두었던 내 할머니의 은빛비녀. 근 10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은빛나는 비녀가 가슴에 한줄기 비를 뿌린다. 한올도 흐트러지지 않게 가르마를 타고, 윤기나는 머리채를 뒤로 빗어넘겨 돌돌 말아 꾹 찔러 넣으면 그리 단정하게 보일 수가 없다.

중학교 수학여행 갔다가 마땅히 선물할 게 없어서 은색 비녀를 사 드렸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한순간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다가 돌아가실 때 내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다.

큰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쯤에도 툭하면 끄집어내려 방바닥으로 퍽 쏟아지는 바람에 장난감으로 둔갑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딸아이의 요술봉이 되어 버렸다.

작은 봉으로 "수리수리 마수리 오빠 배 안 아프게 해주시고 우리 엄마 맛있는 요리 잘 만들게 해 주세요. 얏"하며 손을 내 뻗칠 땐 소중한 내 보물이 저러다 망가지는 건 아닌가 염려되기도 했다.

그 시절 할머니의 요술봉은 손이었다. 나도 지극히 튼튼한 체질은 아니다 보니 툭 하면 배앓이에 골골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배를 쓸어 내렸다. "내 손은 약손이고 니 배는 똥배~"하며 민요인 듯한 노래를 읊어 주면 신기하게도 아픈 것이 싹 가셨다.

멍석을 깐 마당엔 모깃불이 피어나고 옥수수 수염을 단 할아버진 그 옆에서 부채질을 했다. 부챗바람에 연기가 날려 목이 매워 컥컥거리면 냉수를 얼른 입에다 대었다.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물맛은 그리 시원할 수가 없었다. 청량음료인들 그리 시원할까. 그리고 할머니 무릎과 손은 잠자리 날개보다 더 부드러운 날개를 나에게 달아주었다.

내 눈에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푸른빛 보석들 사이로 노랫가락이 흘렀다. 까만 개구리알이 동동 떠 있는 무논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언덕배기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 터질 것만 같다가도 연두빛 망개가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친구들과 뒷산에 가서 망개를 한 바구니 따와서 실에 꿰어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었다. 톡톡 빼 먹는 재미도 그만이다. 또 하얀 감꽃이 필 때도 마찬가지다. 시큼한 감꽃의 뒷맛은 그리 상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는 일품이다. 하얀 미소를 달고 초록빛 보리밭 사이로 달리기를 할 때면 어느새 모기장 안에 내가 누워 있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이런 추억이 없었다면 그리움도 아쉬움도 행복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거리에 쏟아지는 자동차의 질주도 주름진 노인들의 얼굴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듯이 나도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이 되어 나의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지금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들이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세월이 어떻게 지나 버렸는지 효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쓸쓸하게 떠나신 할머니를 잠시나마 추억하게 해준 딸아이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갑자기 당한 딸아이는 까르르 웃어 제치며 또 또 하며 이마를 들이댄다.

어제는 자다 말고 베개를 들고 와 가슴팎으로 파고 들었다. 아들녀석도 질세라 그 큰 덩치로 밀고 들어와서는 서로 부둥켜안고,

"엄마 나 사랑해?"
"그래 사랑하고 말고."
"그럼 나는, 오빠만 사랑해?"
"아니 엄마는 우리 딸도 사랑하지."

음~쪽쪽 아이들은 뽀뽀 세레를 퍼부었다.

거울 속에 아련한 미소가 보인다. 단정한 할머니의 모습, 하얀 모시저고리에 대님까지 매고 댓돌 위로 올라서시는 할아버지의 정갈한 모습도 은빛비녀와 함께 나타난다. 언젠가는 타임머신도 만들어지겠지. 꿈은 만화처럼 왔다가 현실로 되는 것이 많았으니까.

매일 아침 거울에다 꿈을 싣는다. 대리만족이라고 해도 좋다. 자식에대한 기대도 남편에 대한 바람도, 잃어 버린 것과 잊어 버릴 것은 무엇인지. 수많은 것들에 대해 요술을 건다. 화장을 할 때 잠시나마 얻는 여자의 특권처럼 난 마음에다 요술을 건다. 내가 날마다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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