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뼈다귀는 재탕해 먹으면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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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뼈다귀는 재탕해 먹으면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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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과 정숙이 엄마 이야기

 
   
  ^^^▲ 할머니 손맛 감자탕^^^  
 

내가 소싯적 자장면을 처음 먹어보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자장면이 제일 맛있는 음식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획기적인 음식을 발견했는데 그게 ‘감자탕’이었습니다.

왜 하필 감자탕이냐 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달리 설명할 이유도 없이 감자탕은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일대 혁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음식은 하나도 먹어보지 못한 가난뱅이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타박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신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늦가을이었습니다. 은행나무 단풍이 차도를 덮어 차가 지나갈 적마다 노오란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려고 광화문으로 걸어 내려오다 신학교 같은 과 누나가 ‘박 선생 저녁밥 먹고 가자’ 하면서 내 팔짱을 끼고 데리고 간 곳이 광화문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이었습니다.

누나는 나보고 ‘뭐 먹을래?’ 물어보지도 않고 음식을 시켰는데,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 늦은 저녁이 되도록 위장이 비어져 있었으므로 아무거나 양만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인 듯 한 청년이 큰 냄비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뼈다귀를 가득 담아 갖고 왔는데 그게 ‘감자탕’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자도 서너 개 들어있었습니다. 돼지 뼈다귀면 어떻고 소 뼈다귀면 어떻습니까? 나는 뼈다귀를 쥐고 입으로 물어뜯는데 연한 고기 살점이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든지, 누나가 뼈다귀 하나 뜯어먹는 동안 나는 먹는데 걸신들린 놈처럼 냄비에 담겨 있는 뼈다귀 고기 살점을 다 뜯어먹었습니다.

“야, 너 무진장 배 고팠나보다!”

뼈다귀를 다 뜯어먹고 난 다음에는 감자를 숟갈로 으깨서 국물과 함께 흰쌀밥에 얹어 먹는데 시쳇말로 죽여주더군요. 이야기가 조금 과장되었다 싶기도 하지만, 배도 고프기도 했겠다 그 뜨거운 국물이 뱃속에 들어가니 코끝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속에서 트림이 나오는데 그 포만감이란 소싯적 자장면 먹고 감탄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 추풍령 옛날맛 감자탕
ⓒ 우리 홈쇼핑^^^
 
 

‘감자탕’ 맛에 반한 이후로 좀 출출하다 싶으면 허름한 뒷골목 감자탕 집을 찾았습니다. 서울시내에 감자탕 집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모르고, 나는 서울에서 십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결혼을 하고나서도 감자탕은 내가 즐겨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내도, 애들도 나를 닮아서 감자탕을 좋아하는데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살점이 많이 붙은 감자탕 집을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던 초가을 어느 날 돼지고기를 사다 구워먹으려고 정육점엘 갔는데 불조심 포스터 옆에 ‘사댕이 팝니다’고 써 붙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댕이라?’ ‘사댕이가 도대체 어디에 붙은 고긴가?’ 해서 정육점 주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저씨, 사댕이가 무슨 고기인가요?”
“사댕이도 모르세요? 돼지 등뼈예요. 이놈을 사다가 감자 넣고 팍 끓여 잡수시면 끝내줘요!”
“아, 감자탕!”

‘그럼 집에서도 감자탕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무엇이든지 모험정신이 발동하면 안하곤 못 배기는 성질이라 돼지고기 대신 사댕이 한 짝을 샀습니다. 한 짝이라고 해봐야 돼지고기 두 근 값이었습니다. 사댕이를 사갖고 와서 “야, 이제부터 내가 감자탕 실력을 발휘해 볼 테니 감자 갖고 오고 마늘, 파, 고춧가루 다 갖고 온나!”하면서 아내를 닦달했습니다.

돼지 한 마리 분량의 뼈다귀를 들통에다 다 집어 놓고 욕심 사납게 감자도 잔뜩 집어넣고 고추장을 풀어 한참동안 고았습니다. 그렇게 얼추 2시간을 고았는데 국물을 맛본다고 국자로 떠먹은 것만 한바가지는 되었을 겁니다.

 

 
   
  ^^^▲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정숙이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
ⓒ 박철^^^
 
 

애들도 침을 꼴깍 삼키며 밥상 앞에서 감자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고기가 물렀겠다 싶어 대접에다 가득 뼈다귀를 담아 서로 뜯어먹기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데 식당에서 사먹는 것처럼 고기 살점이 쏙쏙 빠질 정도는 아니었어도 국물이라든가 다른 건 식당에서 먹는 거와 진배없었습니다.

나는 연신 뼈다귀를 뜯으면서 ‘맛있지, 맛있지’를 확인하자 애들은 며칠 굶은 애들처럼 고개를 끄덕 끄덕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돼지 뼈다귀는 상위에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네 식구가 그 많은 뼈다귀를 다 먹어 치운 것입니다. 감자탕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내가,

“여보, 이 뼈다귀 개줄까?” 물어 보길래, 나는 “야, 뼈다귀는 완전히 무르지 않아서 아직도 살점이 많이 붙어 있어 한번 재탕 해먹고 개주자고. 개주기는 아깝잖아!”

돼지 뼈다귀 재탕 해먹었다는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그놈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닷새쯤 지났을까요? 다시 돼지 뼈다귀를 가지고 들통에 집어넣고 똑같은 방법으로 재탕을 했습니다.

애들은 “아빠 멀었어요?” 하고 물어보는데 한번 끓인 거라 지난번보다 시간을 적게 잡아 감자탕을 만들어 상에 내놓았습니다. 돼지뼈다귀 감자탕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애들아 감사기도하자.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돼지뼈다귀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돼지 뼈다귀로 감자탕을 만들었는데 맛있게 먹게 해주소서….”

 

 
   
  ^^^▲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둘째 아들 태규
ⓒ 박철^^^
 
 

기도가 끝나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정숙이 엄마였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목장에서 일하는 목부의 아내였습니다. 키는 작지만 체구가 당당하고 힘깨나 쓰고, 먹는데 안 빠지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왔냐?’고 하니까 그냥 놀러왔다는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들어오라고 ‘밥 먹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안 먹었다’ 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점심때가 훨씬 지났으므로 당연히 점심밥을 먹었을 줄 알았는데 안 먹었다니, 그러니 같이 먹자고 그럴 수도 없고,

‘이 돼지뼈다귀가 우리 식구들이 다 침 발라 놓은 것인데, 그걸 재탕한 것이니 미안하지만 줄 수 없노라’ 고 설명 할 수도 없고, 속으로 생각하길, 침 발라 놓은 뼈다귀라도 끓인 것이니 먹으라고 하자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정숙 엄마, 이 돼지 뼈다귀 좀 먹어볼래, 고기는 별로 안 붙어 있어!”
“예, 조금만 먹어 볼까요?”

정숙 엄마는 오랜만에 목사네 집에서 포식한번 하게 되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밥상 앞에 앉아 뼈다귀를 집어 들었습니다. 돼지 뼈다귀에 살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숙이 엄마가 돼지 뼈다귀를 보고 ‘거 이상하다, 무슨 돼지 뼈다귀에 살점이 하나도 없나?’ 하면서 요리저리 살피면서 어디 고기 안 붙어 있나? 아무리 살펴도 고기가 안 달라붙어 있으니 고기살점을 뜯어 먹는 게 아니라 돼지 뼈다귀를 빨아 먹는데, 나는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웃겨 뒤로 자빠질 뻔 했습니다.

그러니 웃을 수도 없고, 웃음은 나오는데 그걸 참느라고 아내와 나는 얼마나 애를 먹었든지? 하도 웃음을 참으니까 콧구멍으로 밥알이 나오고 방귀가 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정숙이 엄마가 오랜만에 포식 좀 하는 줄 알았는데 고기 살점은 하나도 없고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합니다.

 

 
   
  ^^^▲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큰딸 정숙이
ⓒ 박철^^^
 
 

요즘도 가끔 아이들과 외식하러가서 감자탕을 먹으면서 10년 전, 남양에서 정숙이 엄마가 돼지 뼈다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돼지 뼈다귀에 살점이 하나 없는가?’ 이상하기도 하고, 한편 실망스럽기도 한 표정으로 돼지 뼈다귀를 빨아먹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침 발라 놓은 돼지 뼈다귀를 재탕해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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