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3년 대한민국 역사에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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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63년 대한민국 역사에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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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대 국회 & 잡음 많았던 선거

^^^▲ 서독에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가난한 우리나라 국민들을 생각합시다.”^^^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행하는 마지막 과정인 제 6대 국회의원 선거가 1963년 11월 26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예상대로 공화당은 압승한 반면 야당은 참패하고 말았다.

선거는 기권률이 30.2%로 전례없이 높았는데 그 원인은 그 원인은 극심한 민생고와 위정자에 대한 불신 및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라고 하겠다.

6대 국회의원 선거는 자유당 치하에서의 선거처럼 많은 잡음을 빚어냈다. 선거자금의 낭비를 방지하기 위하여 10. 15 대통령 선거 때부터 실시한 선거 공영제는 실제에 있어서 야당에만 적용되는 일방적 제도나 다름없었으며 여당은 법정액을 훨씬 초과하는 막대한 자금을 뿌렸다고 야당은 비난하였다.

정당정치의 확립을 위해 채택한 비례대표제 역시 수많은 모순점을 드러내었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 비하여 선거의 공명성에도 의문이 많다는 적지않은 말썽을 부렸다. 제1, 제2, 제3의 공무원 선거 관여폭로, 선심공세, 금력선거, 대리투표 등등의 사태를 빚어 내었다고 야당의원들은 격렬히 비난하였다.

젊어진 선량

이 선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국회의원 당선자 중 대학출신자가 85%로 역대 국회의원들에게 비해 표면상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군인출신이 30명(여 28명 야 2명)이나 진출한 점에서도 특색을 가진 이 선거는 당선 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48세로 가장 낮다.

특히 야당의원보다 여당의원들의 평균 연령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다. 또한 5.16이전의 소위 구정치인이 78명밖에 안되는데 비하여 초선의원이 97명으로 55.4%나 차지했다. 그러나 전 자유당 의원들이 20명이나 당선되었고(여 18 야 2)

이른바 구악들을 공천한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의 현실 반 이상 반이라는 말에서 집약되듯이 완전한 세대교체나 체질개선은 극히 미미한 가능성을 남겼을 뿐 제3공화국에 넘겨진 거의 불가능한 커다란 숙제가 되고 말았다.

정당별지역구전국구합계
공화당86석24석110석
민정당27석14석41석
민주당8석5석13석
자민당6석3석9석
국민의당2석2석

6대 국회 의장단 명단

의장 - 이효상
부의장-장경순 나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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