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히 떠오르는 신문배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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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히 떠오르는 신문배달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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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할 수 있을까?

^^^ⓒ 네이버포토^^^
새벽 4시 30분.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집을 나선다.

'오늘도 이 고통을 이겨내야만 하는구나.'
차가운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할텐데도 오히려 눈은 자꾸만 감긴다. 내가 왜 신문배달을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매서운 겨울 바람과 깜깜한 새벽길은 무섭기만 하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썼건만 그 추위를 이겨낼 수가 없다.

기차역에 들어서며 화물기차가 오기만 기다린다. 몇몇 배달부들과 함께 기다란 의자에서 잔뜩 움츠리며 졸고 있다. 입에서는 김이 서리고 자꾸만 턱이 덜덜 떨린다.

잠시후 기차는 도착하고 신문을 하나둘씩 역 구내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된다. 대합실에서 화물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 두어상자만 어깨에 짊어져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숨이 찬다. 포장지를 뜯어내고 신문마다 광고 전단지를 끼워넣는다. 아주 숙달된 선수들은 누가 흉내도 못낼정도로 재빠른 솜씨를 보여준다.

나에게 주어진 신문 부수는 100여부. 가방에 70부를 넣고 나머지는 종이에 감싸서 왼쪽 팔에 끼운다. 가끔 특집호가 실릴 경우에는 그 양은 두배로 늘어난다. 독자와 신문사에서는 지면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배달부들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설날 연휴가 겹친 날에는 그 부피와 무게는 엄청나다.

버스는 도착하고 요금 대신 신문을 낸다. 가끔씩 운전기사 아저씨는 줄줄이 올라 타는 배달부들에게 그냥 타라며 신문을 안 받기도 한다.

밖은 여전히 한밤중이다. 이 새벽에 즐기는 잠은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가로등이 띄엄띄엄 켜져 있는 그 길은 무섭기만 하다. 집모양도 비슷비슷하고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신문을 접어서 대문 틈새로 던지기도 하고 밑으로 집어 넣기도 한다. 때로는 잘못 던져서 물에 젖으면 다음날 집주인에게 혼도 난다.

살을 깎아내는 추위에 손은 꽁꽁 얼어 붙고 몸은 더욱더 움츠려진다. 을시년스럽게 들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좁은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그들의 돌출행동은 머리를 쭈뼛 서게 만들고 간담을 서늘케 한다. 그리고 대형 사건이 터져서 탑기사에 인물 사진이 크게 실리는 경우, 가로등에 언뜻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무서운가! 골목길에는 중간중간에 스쳐가는 같은 배달부 외에는 인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일은 두 배가 된다. 비닐 봉투에 신문을 접어서 일일이 포장해야 하고 그 두께는 가방하나와 양손으로는 부족하다. 행여 비옷이 없어서 우산이라도 쓰는 날이면 세 배 이상 힘든 작업이 된다.

배달이 끝나면 손가락에는 신문 잉크가 배어있고 새신문의 잉크내음이 옷에 밴다. 구역을 한바퀴 돌고 배달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날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그쯤 되면 비로소 정신은 맑아있고 발걸음은 가벼워 진다. 가끔씩은 남들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는 자부심도 생긴다. 돌아오는 버스에는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꾸벅 졸고 있다. '저 학생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나도 같은 학생인데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으로 겨울 방학에 동네 형들을 한두번 따라다닌 것이 계기가 되어 신문배달을 하기 시작하였다. 며칠동안은 재미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고통으로 변했다. 방학 때는 배달 후 집에서 잠자는 맛이라도 있었지만 개학한 후로는 그 달콤함 마저 없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애쓰고 깨우시던 어머니께 신경질을 냈던 적이 많은 것 같다.

당시 한달에 받았던 월급은 만 오천원이었다. 일당 500원 인 셈이다. 새벽일찍 나와서 두어시간 이상 일한 것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돈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BB총이 너무나 갖고 싶어서 샀던 일이 있다.

그러나 월급의 기쁨은 한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적응이 됐을 법도 한데 항상 고통스러웠다. 결국은 개학하고 몇 달 후에 신문배달을 그만 뒀다. 한창 잠이 많던 시절 내 육신은 정신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 둔 이후 나는 재미삼아서라도 절대 배달을 하지 않았다. 6개월을 끝으로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끝난 것이다.

요즘에는 신문지면이 보통 40면에서 48면 정도이다. 두툼한 신문을 보고 있으면 읽을 거리가 많지만 가끔씩 신문배달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현재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시작한다면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버스요금 대신 신문을 내는지 궁금하다. 요즘에는 오토바이를 통해서 보통 배달을 한다.

아주 가끔씩 신문 배달했던 구역을 돌아볼 때가 있다. 지금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두집 정도는 어슴프레 떠오른다. "건강도 챙기고 용돈도 벌 수 있다"는 신문배달의 장점을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잉크가 채마르지 않은 따끈한 신문 내음을 맡으면서 잠에서 덜깬 중학생의 시절로 다시 돌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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