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이병태의 몰락, 이걸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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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이병태의 몰락, 이걸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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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참 어지러운 세상이다. 경제학자 이병태(61) 교수가 강제 성추행 혐의로 카이스트에서 직위 해제됐다. 직위 해제는 교수 신분은 유지하면서 특정 직책은 맡지 않는 것이다. 상황은 참담하다. 그래도 신뢰감을 주던 자유우파 경제학자의 느닷없는 몰락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골목에서 여성 지인을 강제 추행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연행됐다. 한 목격자는 “남자는 바지를 벗고, 여자는 앉아 있는 상태였다”며 “그냥 비명 지르듯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고 MBC에 말했다.

이 교수와 피해자는 한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일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자, 여기에서 참담한 것은 이 나라의 병든 언론들의 보도 태도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류언론은 이 문제를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자기 책임을 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사실 뭐라고 방어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조선일보 등에서는 자기네 지면의 주요필자였던 학자의 사고를 그렇게 무책임하게 홀대하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좌파 언론은 신났다. 이 침에 이병태를 본래 정신 나갔던 학자로 매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학자로서의 활동과 이번 성추행 혐의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고 때문에 별도의 문제인데 저들은 이침에 자유우파 학자는 죽어봐라고 돌을 들어 치는 상황이다. 조금 전 MBC가 그러했고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을 ‘치매 환자’라고 비판하고, 일본의 경제 보복 국면에서 “친일이 정상”이라고 주장했던 학자가 드디어 도덕적 문제로 치명상을 입었다는 식으로 몰고간다.

이교수의 몰락을 전하며 그러니까 그렇게 형편없는 윤리도덕을 가진 그 이기에 그가 예전 친일을 옹호했다는 식의 저급한 보도는 천박하기 그지 없는 본말 전도다. 여전히 이 나라 언론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맞다. 그래서 좌파 무죄이고, 우파는 유죄다. 함께 비교될 수조차 없는 일이지만, 좌파 친구 김용민의 경우는 그 예전에 “미국 국무장관 라이스를 강간해서 죽이자”라고 선동했던 최악의 저질 인간이 아니냐?

그런 김용민이 얼마 전 보도를 보니 YTN 사장을 뽑는 자리에 응모까지 했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우파는 약간의 틈새만 보여도 바로 사회적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큰일은 큰일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오해하지 말라. 나는 이 교수와 개인적 친분이 없다. 그리고 그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이번에 도덕적 문제를 일으킨 그는 근신해야 마땅하고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더욱 무거운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암튼 이번에 이병태 교수는 이번 일로 사회적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심각한 내상을 입고 당분간 사회활동이 어려울 것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잘 이해가 안 되는 대목도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를 성추행했다는 게 이해가 안간다. 언론에 얼핏 비친 내용은 바지까지 내렸다는 식인데 이게 말이 되나? 제 몸도 못가눌 정도 였다는데 바지를 내리고 여자에게 엉겼다고?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누군가 그의 바지를 내린 제3자가 있고, 그 여자가 이 교수를 끌어 안은 게 아닐까 모르겠다. 올해로 환갑인데, 60세가 넘은 친구가 그리 혈기 방장했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대목이다. 즉 그는 혹시 좌파의 작업에 결려든 것은 아닐까? 사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이번 일로 새삼 절감하지만, 저는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가 그리고 인간 이성이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가도 확인했다. 이번 일을 보면서 중앙일보 시절 후배가 저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그 사람은 미국정치철학자 러셀 커크의 그 유명한 저술 <보수의 정신>을 번역했는데, 어차피 보수정신이란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가 그리고 인간 이성이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절감하고 그 한계 내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거꾸로 좌파인간들은 세상 모두를 바꾸자며 설치는 것과 정반대라는 얘기다.

그게 맞는 소리다.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며 들떠서 결국은 인간지옥을 만다는 게 좌익이 아니냐? 반면 세상 모든 문제에 해답을 가진 듯 설치는 좌파와 달리 자유우파는 인간의 한계를 알고 항상 머뭇거리고 굼뜨게 움직인다. 이번 이병태 교수의 성추행 사건도 그걸 보여준 건 아닐까? 인간의 한계 앞에 누가 저렇게 용감하게 돌을 들어칠 수 있을까? 자중자애하자는 제안을 한다.

※ 이 글은 30일 오전에 방송된 "성추행 이병태의 몰락 이걸 어떻게 볼까?"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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