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섬, 그리움의 섬
희망의 섬, 그리움의 섬
  • 김광진
  • 승인 2003.07.09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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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에서 내 가슴에 박힌 울음소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예전 춘천에 들르면 찾아가곤 하던 카페의 이름이 ‘섬’이었습니다. 왠지 모르는 야릇한 느낌에 이끌려 그 카페를 자주 찾곤 하였습니다. 원래 그런 곳에 익숙지도 않은 내가 굳이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는 그 카페를 자주 찾은 것은 아마도 순전히 ‘섬’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섬’이라는 단어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그런 모티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섬은 곧잘 주술적, 또는 환상적, 혹은 막연한 동경의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격리, 고립, 고독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혹은 그 여러 가지의 이미지가 겹겹이 덧씌워진 홀로글램 같은 모습이 내 가슴속에 들어 있는 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줄 곳 바다에서 자랐으면서도 섬에 가본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가, 혹은 나의 환경이 많은 것을 제약하며 자라게 만들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살아가는 삶의 제약을 나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여, 해도 될 것들을 스스로에게 금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지 못한 것들, 간절히 원하면서도 스스로 자제하고 살아왔던 것들, 그런 것들이 아직도 내 속에 그치지 않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동인을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학창시절 내가 속으로만 삭였던 꿈들 중 하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거의 무전여행에 가까운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여행에서 얻는 자유과, 조금의 외로움과, 피로에 젖었을 무렵 목포에서 완도로 가는 밤배를 탔습니다. 느리게 밤바다를 산책하는 그 조그만 배에서 어둠의 그늘에 숨어있는 무수한 작은 섬들을 보았습니다. 선실 한구석에서 미숫가루를 타서 배를 채우고 다시 찾아본 바다는 여전히 검푸름에 속에 신비로운 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배의 탐조등 불빛에 하얗게 갈라지며 한없이 긴 물거품을 만들며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바다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하늘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내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무슨 바다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어둠이 껄껄대며 웃는 비명소리 같은 것을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물’ 은 여성적 이미지고, 모성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바다에 대한 동경과 바다 가운데 솟은 뭍인 ‘섬’에 대한 동경은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다는 숫한 방황의 목표이자 대상이기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문화적 코드였던 ‘고래사냥’의 모티브도, 이문열의 ‘그해 겨울’의 모티브도 바다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여성적인 것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명제의 그 시대적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었는지, 뭐가 그렇게도 그리움에 사무치기만 했는지, 내 가슴속에는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가 가득했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차가운 겨울 산을 에워싸고 밤새 울어대는 바람소리 같은 무엇이 밤을 새워 ‘곡’을 하는 것이 들려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다를 자주 찾았습니다. 바다는 내 일기장이었고, 내 화폭이었고, 바다의 울음소리는 내 가슴을 적시며 소곤거리는 연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도 나는 바다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긴 대화를 나누며 오랫동안의 우정에 대해 감사하였습니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내 가슴에 박혀 있던 울음소리들을 그곳 바다에 다시 풀어 놓아 주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난 용감하게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갈 꿈 많은 청년의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조금의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제 젊은 시절 가슴속에 차곡차곡 채워왔던 그리움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찾아보니 아직도 내 가슴속에 묶여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귀 기울여 주지 않는 동안 홀로 메아리치고 있던 그 오래된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 이름을 불러줍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속에 갇혀 있던 원망(願望)의 덩어리들을 이제 하나씩 풀어주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 혹은 다음해까지는 오랫동안 내 속에 머물러 있던 또 하나의 오랜 친구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섬’, 이젠 그것을 떠나보낼 차례입니다. 어느 곳, 신비와 갈등을 품고 안개 속에 고요히 숨어있을 섬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주보며 싶습니다. 그리고 섬의 이야기를 듣고, 내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던 깊은 울음을 토해내고 싶습니다.

너무 긴 시간이 지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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