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감기약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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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감기약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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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인간적인 의사가 되어가는가 보다

의사도 사람이다. 그래서 의사도 아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의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병원이나 의원 그곳엔 세상의 온갖 바이러스며 세균들이 다 모이는 곳이 아닌가. 진료실에서 기침을 하고, 제치기를 하는 환자들에게서, 젊잖게 않아서 신문을 보며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서 끊임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미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의사도 아플 수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자주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조그만 동네의원을 혼자서 지키고 있다. 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맡기기가 무척 힘들다.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축근을 하지 않았다. ‘병가’란다. 물론 그 친구는 의사가 아니다. 의사에게 병가란 제도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들어본 적은 없다.

의사는 감기에 자주 걸린다. 대부분 생으로 참는다. 치료를 받으러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에게 자신을 진료하는 의사가 아프다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것저것 약을 주워 먹는다. 내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료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는다. 환자에게 처방하는 용량을 넘어서기 일 수다. 왜? 몸에 나쁜 것은 알지만 환자를 진찰할 때, 내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환자의 몸으로 전달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동네의원을 7년간 개업해왔다. 7년 동안 단 한번 지각을 해보았다. 나는 프로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내 일에서만은 철저하고 싶다. 병원이란 곳이 어딘가. 아파서 무언가 도움을 바라며 찾아오는 곳이 아닌가. 항상 준비된 모습을 보이고 싶다. 의사가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례다. 아픈 몸을 이끌고 믿음하나로 오랫동안 건강을 맡겨 오던 의사를 찾아왔는데,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리를 비우고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콧물감기다. 열이야 어지간히 나더라도 해열제만 한 줌 먹고 나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콧물은 생각보다 쉽게 가라 않지 않는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기 때문에 이게 한번 발동을 하면 좀처럼 멈추지를 않는 것이다. 요즘 좋은 콧물약이 많이 나왔다. 환자들마다 좋다고 하는 그 약이 나에게 만은 듣지를 않는다. 결국 여러 알을 먹는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환자들 앞에서 코를 훌쩍이며, 연신 코를 풀어 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일종의 권위의식이 아닌가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자신이 아프면 아픈 대로 솔직히 마스크를 쓰던가 하면서, 환자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면 되지 않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고집이 있다. 프로패셔날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건강에 관한한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평소에 건강하도록 조심을 잘해야 한다고, 그래서 아픈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아픈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걸 절대 허용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연신 콧물 약을 먹어댄다. 환자에겐 졸림 때문에 반알 씩만 처방하는 콧물약이다. 두알. 세알. 그렇게 먹어도 내 콧물은 금세 잘 멎지가 않는다. 환자들은 이상하게도 꼭 그런 순간에 연신 들이닥친다. 약을 한 알 더 먹으려 하는데 환자가 내 앞에 서있다. 할 수 없이 코를 훌쩍이며 진료를 한다. 그리고 그 환자가 돌아서서 나가는 순간을 틈타 또 한 알의 콧물 약을 재빨리 먹는다. 마침내 콧물이 멎었을 때쯤이면. 내 입은 콧물 약의 부작용으로 바짝바짝 말라있다. 아무리 커피를 마셔대도 몰려오는 졸림을 이길 수가 없다. 콧물 약을 그렇게나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의사라서 병원에 안가도 되는 것이 편해서 좋겠다.” 속 모르는 친구는 그렇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심한 몸살이라도 나면 정말 서러운 느낌이 든다. 나도 환자들처럼 보호자를 대동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어딘가 병원으로 가고 싶다. 누군가가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는 진료를 받고 싶다. 그리고 “이 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입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피곤한 머리를 굴려가며 처방을 해야 한다. 스스로 처방한 약을 먹는 마음은 다소 씁쓸하다. 그리고 외롭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몸살 때문에 자기 병원을 비우고 다른 병원에 가는 의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요즘 갈수록 배가 불러온다. ‘철저한 자기관리.’ 내가 그토록 고집해오던 주장이 서서히 무너져간다. 요즘은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밥을 적게 먹는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 아이와 호리호리한 아내도 나보다는 밥을 많이 먹는다. 그래도 내 체중은 자꾸만 불기만 한다. 그렇게 싫어하는 운동을 해보기도 한다. 평소 환자들에게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며 체중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가르쳐주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본다. 그래도 오는 세월을 막을 수 없듯이 찌는 살을 어찌할 수는 없다.

다소 풍성하게 입는 가운 밖으로까지 배가 불러온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는 펑퍼짐한 중년의사가 되어간다. 그토록 고집하던 프로근성에 대한 자부심을 버려야 할 때가 마침내 찾아 온 것이다. 이젠 환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비만은 정말 힘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저도 어쩔 수 없잖아요. 하지만 제가 못해도 말은 바르게 해야죠. 제가 못한다고 해서 살이 건강에 나쁘지 않다고 할 순 없잖아요. 나쁜 건 나쁜 겁니다. 우리 함께 용기를 내서 건강하게 살도록 해봅시다.”

나는 이제 조금 인간적인 의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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