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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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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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고 후회되는 일

그때는 서울이 그렇게 싫었었다. 복잡한 도시의 생활에 많이 지친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내가 서울에 남아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도 하다. 아직은 내 가슴에 남아있는 끓는 피의 흔적 때문이다.

작년 월드컵. 온 나라가 신들린 듯 축구에 열광을 하던 그때에도 나는 심드렁했었다. 온통 TV채널이 축구에 점령을 당해 내가 좋아하는 교양방송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 TV를 많이 보지도 않지만, 평소에 잘 보지 않던 것도 모든 채널이 점령당해 볼 수 없게 되니 괜히 TV가 보고 싶어지는 좁은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평소 운동에 관심이 없다. 자신이 운동을 하는 건 못해도 보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운동을 보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아까운 시간을 왜 그런데 써!’ 이게 운동에 대한 내 평소의 심성이었다.

근데 우리나라 팀이 승승장구해 16강, 8강, 4강... 이런 식으로 온 나라를 휘감아 도는 긴장의 강도가 점점 증가하면서, 나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운동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나 역시 한국인이 아니었던가. 결국 차츰 축구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유명 팀의 경기나, 한국팀의 경기가 아니면 안보는 정도였을 뿐이지만...

그 당시에 나는 바빴다. 늘 무언가에 미쳐서 몰두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인생을 허비하는 것만 같아서 공연히 불안하기도 하고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내 인생의 조급증이다. 나는 당시에는 주말마다 무슨 자격증을 따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4강전이 치러지는 그날이 마침 자격증 시험 날이었다. 4강전에 오른다고 시험날짜가 연기되지는 않았다. 몇 달 동안 공부한 자격시험을 치기위해 그날은 종일토록 공부를 하다가 책 너머로 가끔씩 축구 보다가 하였다. 경기가 종료되기 직전 시험시간에 맞추기 위해 집을 나서야 했다. 지하철은 오직 나 혼자타고 있었다. 텅 빈 지하철 좌석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는데, 두어 정거장가니 젊은이들이 우루루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타는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리도 행동패턴이 꼭 같던지 참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야 시청으로 모여..’ ‘시청은 지난번에 보니 너무 복잡해. 오늘은 강남역에서 모이자... 그래? 신촌이 더 분위기가 괞찮다고?’ 그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음, 우리가 이겼나보군... 하면서 다소 흐뭇한 마음이었다.

시험을 치고 다시 전철을 타러 역삼역 부근으로 나오니 세상이 뒤집혀 이었다. 전에도 군중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는 걸 본적은 많이 있었다. 어려서 동원된 반공집회에서부터, 79년에도, 86년... 그러나 이날의 분위기는 참 특이했었다.

젊음과 발랄함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승용차 트렁크에 빼곡히 들어찬 붉은 옷의 청년들, 태극기를 머리부터 바지까지 두른 젊음이 터져나가는 아기씨들, 귀가 멍멍하게 울려대는 크락션 소리의 축제...

헐렁한 양복바지를 입고 시험교재를 들고 거리에 나선 촌스러운 중년아저씨인 나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참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그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나는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머지 않아 서울엔 다시 대규모 모임이 시작되었다. 효선이 미선이 집회. 그리고 이라크 전 반대집회... 그때 나는 다시 잠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느라 애를 먹었었다.

나 혼자서 골방에서 기도를 올릴 수도, 인터넷에서도 조금의 항의 글을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서울의 그 자리에 그들과 함께 서있다고 해도 나는 수많은 인파중의 한사람일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뜻을 함께하는 무리들이 모이는 곳에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마음에 큰 위로이자 축복이지 않겠는가.

어쩌면 열화와 같은 전 세계적 반대시위로 이라크를 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전세계적 반전시위다, 혹은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전쟁예방시위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의미로운 것이라는 등 낙관적인 의견들이 무성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희망들을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역사는 또 다시 한 페이지를 넘겨버렸다.

눈물이 흘렀을 거다. 가슴을 적시고, 목을 울리고 흐느낌이 되었을 겁니다. 그 깊은 울음은 가슴을 채우고 넘쳐 올라서 눈물로 흘러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내가 그 자리에 있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사람들과 손에 손을 마주잡고, 같이 오열하고, 같이 흥분하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지켜야할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토록 서럽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러나 그것은 나의 욕심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이 생기는 법이고, 내가 할 일은 오늘 하루를 성실로 매우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약간의 미련은 남는다. ‘그때 그 자리에 내가 함께 있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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