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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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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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어린 음악감상실

예전의 종로 2가 YMCA 부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한 건물의 3층인가 4층인가에 ‘르네상스’란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그 건물은 유리창마다 금이 가 있었고, 복도며 계단에는 거미줄이 가득했었다. 왜 건물을 그렇게 방치해 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결과적으로 음악을 들으러 그 건물을 찾아가는 느낌을 더 범상치 않게 해 주었다.

그 낡은 건물의 거미줄이 쳐진 계단을 빙빙 돌아서 몇 층을 올라가면, 그곳이 바로 르네상스였다. 나에게 그곳을 알려 준 사람들은 그곳을 당시 몇 군데 남지 않은 ‘정통 음악감상실’이라고 하였다.

입구에서 조금의 돈을 내밀면 입장권과 겸용인 음료권을 내주었다. 그 종이를 들고 문을 하나 열고 들어가면, 음악을 듣다 쉬고 싶은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않아있는 조그만 공간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서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이 바로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침묵의 공간’ 음악실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시체처럼 눈을 감고 숨소리조차 죽이곤 각자의 의자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깊은 밤처럼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한 그 조그만 공간을,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음악의 선율이 압도하고 있었다. 음악은 그곳에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으며 아름답고 현란한 춤을 추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 놓인 칠판엔 하얀 백묵으로 오늘 즐길 음악의 메뉴들이 적혀있었다. 사람들이 눈을 감고 않아서 가끔 탄식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기다리고 있는 좌석을 향하여 음악이 칠판에 적힌 순서대로 배달되었다.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또 온갖 처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 메뉴를 음미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희미한 불빛 아래엔 하얀 머리칼을 곱게 빗어 넘기고 하얀 지휘봉을 손에 들고 있는 카라얀이 어둠 속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그 어둠 속 어딘가, 깊은 음악의 샘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만 같은 삶의 의미를 찾아서 르네상스로 향하는 나의 순례는 계속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곳을 찾는 내 발길이 끊겼다. 당시 직장초년시절 늘 바쁘기만 했지만 꼭 바쁜 것 때문에 그곳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그곳에 도착해 의자에 않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고 졸면서도 열심히 그곳을 찾아다녔었다. 한여름의 풀숲처럼 싱그러움만이 가득하던 내 가슴에 세상의 삶이란 것이 조금씩 스며들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차츰 내 마음이 메말라져 버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음악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내 삶이 요즘에야 다시 음악을 찾을 여유가 생겼다. 꼭 여유가 생겨서라기보다는,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다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내 앞에 떠오르는 통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 이젠 다시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진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오랜만에 다시 접하는 음악이지만, 역시 들을 때마다 음악은 내 가슴에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요즘의 음악은 이제 어두움에서 벗어났다. 이젠 더 이상 어두운 감상실이 아니라 밝은 카페에서, 널찍한 거실에서, 내 책상의 컴퓨터에서 편안하게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 시절. 그 깊은 어두움에 몸을 감추고 음악의 깊은 곳에 젖어들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멀리가지 않아도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가슴에 느껴지는 음악의 깊이는 왠지 그 시절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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