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잊지 못할 생일 선물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의 잊지 못할 생일 선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개망초꽃아이들이 개망초꽃에 예쁜 리본을 달아 하나씩 주었다.
ⓒ 박철^^^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리고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 생일이기도 하다. 아침에 까치가 운다. 내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인가? 아내는 내 성질을 죽이라고 틱낫한 스님의 '화'(anger)를 선물로 사주었다. 어머니는 봉투에 돈을 담아 애들 편에 보내주셨다. 주일 아침예배를 드리고 우리교회 장로 네 분과 대룡리 음식점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냉면을 사 먹었다.

교우들이 내 생일을 알고, 생일상을 차린다는 걸 못하게 했다. 생일이 주일하고 겹쳤으므로 주일예배를 마치고 장로님들과 음식점에 가서 시원한 냉면이나 사먹자고 내가 강권하여 그렇게 했다. 네 분 장로님들은 다 형님같이 든든한 분이다. 동생 같은 목사의 말을 잘 들어 주신다. 냉면을 잘 먹고 들어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생일날이면 자꾸 첫 목회시절이 생각난다.

강원도 정선 두메에서 목회하던 시절이다. 한여름 삼복중에 그 찜통 같은 더위에 내 몸은 케이오 직전이었다. 아내와 나는 하릴 없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선풍기는 쉬지 않고 돌아가고, 뒷집에서 황소를 키우는 터라, 파리 떼들이 달려들어 낮잠을 성가시게 한다.

 

 
   
  ^^^▲ 넥타이핀18년전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준 것이다. 지금껏 잘 보관하고 있다.
ⓒ 박철^^^
 
 

아내는 큰 아이를 가졌을 때라 몸을 이리저리 뒹굴러도 더위와 갑갑증으로 못 견뎌 한다. 그래도 아내는 나보다 더위 강하고 참을성도 강하다. 나는 더위를 못 참는다. 아내와 나는 연신 파리 떼를 부채로 쫒으면서 낮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어떤 아이가 찾아와서 우리 집사람을 부르는 것이었다.

“사모님이요, 잠깐 나와 보세요.”
낮잠을 자다 들킨 우리 내외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학교에 다니는 소녀 소년들이 우리 내외를 찾아와 좀 보자는 것이다.

“야. 그럼 이리로 들어와라.”
“아녜요. 예배당에 가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예!”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 뭘 그러냐. 이리 들어와서 얘기 해.”

그래도 아이들은 한사코 예배당에서 얘기를 하고 싶단다. 그것도 우리 두 사람과 같이 가자는 것이다. 무슨 얘기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얘들이 무슨 긴요한 얘기가 있는 모양이다 생각하며 예배당을 향했다. 예배당 현관문을 드르럭 하고 열자 갑자기 위에서 물 양동이가 떨어지는데 이건 완전 물벼락이었다. 애들이 짓궂은 장난을 한 것이다.

“야! 이놈들 봐라?”
애들이 평소에도 비슷한 장난을 해오던 터라, 그냥 웃으면서 받아줬다. 예배당에 들어갔더니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있었다. 초등학교에도 안다니는 너덧 살 코흘리개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애들까지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우리 내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무지 무슨 영문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아내가 선물한 책나보고 화 좀 덜내고 살라는 뜻인 모양이다.
ⓒ 박철^^^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아이들 차례로 줄을 지어 다가와 예쁘게 리본장식을 한 들꽃을 하나씩 하나씩 내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 맨드라미, 메밀꽃, 들국화… 등 흔한 들꽃이었다. 그때서야 감이 잡히는데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 아니었던가. 아내 말고는 아무도 내 생일 기억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도 사치다 싶을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었다.

한달 사례비가 오 만원이었는데 그걸로 한달을 살아야 하는 전도사가 미역줄거리 하나 살만한 돈도 없었고, 또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섭섭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던 것이었다.

아내 목에는 역시 들꽃으로 만든 둥근 꽃다발을 걸어 주었다, 또 자기들끼리 백 원 이 백원을 모아서 산 것이라며 나에게 넥타이와 넥타이핀을 선물로 주었다. 생일 케잌 대신 제과점에서 사온 둥근 빵에 양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함께 불렀다.

큰 아이를 가져 만삭이던 아내는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울었고, 나도 덩달아 아이들 앞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었다. 그 때 아이들 표정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던지. 한줌의 가식도 없이, 우리 내외를 어떻게 하든지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예배당에 모였던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지금도 선하다. 내 생일을 맞으면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나는 이 해만 넘기면 지천명의 나이에 진입한다.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지났다. 생일이 무슨 대단한 날이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값도 못하고 살았다. 18년 전 강원도 정선 산골 조무래기들부터 지금 이곳의 80넘은 노인들까지도 내가 목사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내게 고개를 수그리신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내 일일진대, 그리고 나이 값을 하는 것일 텐데, 나는 늘 받기만 할 뿐이다. 여전히 미숙하기 짝이 없다. 나는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랑의 빚을 언제 다 갚는단 말인가? 내가 하느님께로 가는 날, 비로소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 18년전 추수감사절그때는 애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잘 울었다.
ⓒ 박철^^^
 
 

냉면 한 그릇을 인생의 최고의 기쁨으로 알고, 간소하게 단아(端雅)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생일을 맞는 나의 뉘우침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