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무영남 시무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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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무영남 시무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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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전 일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한 충무공의 표현인 "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다)"는 임진왜란 당시를 압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의 전환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의 중반 결산이기도 하였다.

조선왕조는 아시아 전제정의 절정이었다. 전제정은 농업관료제에 기반하는 폭정으로 기아와 문맹이란 부산물을 낳는다. 특히, 조선왕조는 주자학이란 폐쇄적, 사대적 사상에 집착하며 고대사회의 특징인 노예제도를 특징으로 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조선왕조는 암흑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오늘날 소위 제도론자들의 전제인 제도가 갖는 무서운 후발효과이다. 다시말해 전제정 아래서 사상가(철학자)와 전략가는 탄생하지 않으며 국민성은 비자주적이고 덜 호전적이 된다.

임진왜란 당시의 참상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유성룡의 징비록과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들 수 있다. 한편으로 당시 일본군과 함께온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기록 나아가 당시 일본사도 좋은 참고자료이다.

조선은 중세적 왕조인 고려를 반동시킨 결과 역병, 기아와 문맹으로 얼룩져 전쟁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반면 당시 선진국이었던 일본은 30만 참전군을 위해 나고야에 전진도시를 만들고 보급을 위한 70만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500년전 국력의 격차에서 보여준 한일비교는 '사회역량(social capability)'에서도 확연히 달랐다. 조선이 국민의 거의 절반이 노예이고 거주이전 마저 제한 당한 폐쇄사회와 달리 일본은 무간지옥이었던 100년에 걸친 전국시대를 관통한 것은 진취적인 사무라이국가이자 교육, 무역과 광산개발의 전형이었다.

500년전 임진왜란은 150년전 마침내 구한말의 혼란속에 속절없이 한일합병으로 종결되었다. 징비록은 동일 왕조아래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일관계가 평화기로 접어들었고 이후 수십차례 통신사를 파견했으나 조선왕조는 일본을 통한 각성이나 개선을 위한 노력은 찾아 볼 수 없었고 결국 역사상 최초의 식민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일제로 부터 한반도를 해방시킨 것도 미국이었다. 당시 태평양 전쟁은 200만에 달하는 미군의 희생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한일격차는 상상 이상이었고 당연히 동맹국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미국의 선입견은 6.25를 초래했다.

6.25가 진정한 국난이었던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이 잘 보여준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북조선이 쏘련위성국으로 전락하고 거대한 제국 쏘련과 중공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 북조선의 군사력은 종전후 평화에 취한 미국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다행하게도 미국 역시 군사문화를 가진 강국이었다. 개전 직후 일본주둔 8군사령관으로 참전한 워커장군은 충무공의 재림이었다. 연전연패로 절대적 전력 열세를 파악한 워커장군은 본진의 응원군이 올때까지 버티기위해 낙동강전선(일명 워커라인)을 구축한다. 이것은 전력열세를 극복하기위한 고육책이자 전략적 선택이었다.

동서 90km, 남북 150km에 이르는 낙동강전선은 국토의 20퍼센트에 전력을 집중시키는 전략인 동시에 강과 태백산맥의 지형 나아가 부산과 대구를 지키려는 의도였다. 워커장군의 기지는 진지전과 기동전 나아가 북부라인(한국군)과 서부라인(미군)을 결합한 것에도 잘 드러난다.

유럽전선의 신화 패턴장군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얻었던 워커장군은 자신이 직접 짚차를 운전하며 전선을 누빈 용감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후일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교본이 된 그의 "죽음으로 버텨라(stand or die)"는 최후 명령은 바로 충무공의 "필사즉생"의 미국판 버전인 것이다. 다시말해 "약무영남 시무국가(한국)"인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과 워커장군 70주기를 맞아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재평가가 나타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미국의 역사 돌아보기와 함께 전쟁영웅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국이었던 한국인에게는 역사와 감사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냉혹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사와 감사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비극)는 반복되며 희망과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봉규 부경대학교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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