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욕쟁이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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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욕쟁이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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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센병으로 고생하다 가신 친구같은 할머니를 추억하다

그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은 약 1년 6개월 전이다. 할머니는 한센병(나병)환자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질병중 에 이 병보다 사회에서 탄압과 멸시의 고통을 받은 병이 또 있을까? 예수가 아무리 핍박을 많이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해도 이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덜 받았을 것이다. 그는 죽을 때 주변에 제자와 가족이 있었지만 한센병 환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과의 단절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았다.

할머니는 병이 다 나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해서 양쪽 엄지손가락만 제외한 채 모두 잃었다. 그리고 발가락도 대부분 잃어서 거동을 잘 못했다. 게다가 몇 년 전에 발바닥이 유리에 심하게 다쳐서 그 상처 후유증을 늘 가지고 있었다.

밖에 나가는 것은 아주 가끔씩 집 앞에 바람 쐬러 나갈 뿐 방문하러 오는 사람이 없으면 늘 혼자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욕쟁이 할매'라는 별명이 있었다. 입담이 걸쭉할 뿐 아니라 항상 말끝에는 욕이 붙어 다녀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나는 할머니 집을 한 번 방문하면 짧게는 삼십분 길게는 한시간 이상 머물다가 갔다.

할머니는 당뇨도 심해서 음식을 아주 조심히 들었다. 또한 신장기능이 안좋은지 늘 얼굴이 부어 있었다. 그리고 혈액순환도 잘 안 돼서 등언저리에 돌처럼 딱딱한 것들이 자주 잡혔다. 그래서 방문할 때면 늘 이십분 이상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십여분 하고 나면 내 손도 땀으로 축축해지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됐다.

이렇게 주물러 드리면 할머니는 그날 잠을 편하게 주무신다고 늘 고마워했다. 당신은 늘 집에 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항상 틀어놨다. 그리고 꼭 YTN 뉴스채널만 보셨다. 당연히 할머니는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떤지 훤히 알고 계셨다. 나는 방문하기전에 얘기 꺼리를 두어개 정도 생각하고 갔다.

작년에 한창 북한 핵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얘기하셨다. "김정일이가 폭탄 들고 서울에 한방, 부산에 한방 확 떤지야 된다. 나라가 확 디비져야 된다. 그래서 나쁜 놈들은 다 죽고 착한 사람들만 살아나서 세상이 바뀌야 된다. 지금 봐라. 올매나 도둑놈들이 많노." 폭탄 터지면 다 죽는다고 얘기해도 할머니는 "하느님은 착한 사람들은 다 살려주게 돼 있다"고 말하며 늘 전쟁위기론(?)을 열변하셨다.

당신은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 괘씸할 때가 많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와 시사 얘기도 하고 가끔 라면도 끓여 먹으면서(할머니는 내가 끓여준 짜장라면을 매우 좋아하셨다.) 하루하루 정을 쌓아갔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싸울 때도 있는 법. 할머니와 나는 작년 대선 투표날 결국 한바탕했다. 할머니는 1번, 나는 2번. 대선 기간에 서로 선거운동 하면서 자신의 후보를 설득시키는 일을 매일 했다. 할머니는 "노무현" 후보의 발음이 어려웠던지 항상 "노무난"이라고 말했다.

"느그 젊은 놈들은 다 노무난이 찍제. 그라믄 안되는 기라. 이회창이 봐라. 올매나 사람이 점잖노. 말하는 것도 책임감있게 잘한다 아이가. 그라고 전에 한번 떨어졌다 아이가? 이번에는 해야 되는기라."

선거 당일 할머니에게 찾아갔다. 할머니는 부재자 투표를 며칠 전에 미리 해놓은 상태였다. 그날 정몽준 대표의 지지철회로 할머니는 한창 사기가 올라있었다.

"내가 뭐라켔노? 노무난이는 너무 말을 함부로 해서 안된다 아이가? 정몽준이가 올매나 썽이 났으믄 그리했겠노? 느그 젊은 놈들은 북한이 좋다 카지만 그래도 그 놈들은 적인기라. 느그가 전쟁을 해봤나?"

여기까지는 항상 들어왔던 말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후로 인신공격을 하면서 결국은 나한테도 아주 심한 말을 하셨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여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고 화를 내면서 그 집을 나왔다. 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만 참고 다독거렸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인것 같았다.

다음날 오후 집앞에서 몇 분간 머뭇거리다가 아무일 없는 것처럼 할머니를 찾아갔다. "왔나? 안온다 카드만 금방 오네." 무뚝뚝한 할머니는 이렇게 반겼고 어제 있었던 일은 서로가 사과하면서 잘 마무리 되었다. 할머니는 이회창 후보의 기자회견을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노무난이는 대통령 되는 머가 있는 갑다. 앞으로 잘하믄 안 되겠나?”할머니는 아쉬워하면서 현실을 수긍하셨다.

나는 할머니 집 방문 이후로 살림을 많이 배웠다. 손이 불편해서 종종 내가 반찬이나 나물 다듬기를 해주기도 했다. 처음으로 비린내가 많이 나는 고등어 손질도 해봤다. 할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머리 토막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는 일을 하고 나면 손에는 종일 고등어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총각한테 얄궂은 건만 시키서 미안하다."

미나리 다듬기, 김장 양념 섞기, 마늘 손질, 과일 깍아드리기부터 가끔씩 방청소, 주방 청소를 해드렸다. 할머니는 무뚝뚝하고 말투는 투박하여도 마음이 매우 여리고 정이 많았다. 또한 당신은 항상 모아두었던 과일과 음료수를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한 번은 한여름에 무슨 약재를 장시간 빻아드렸더니 너무 미안했던지 만원을 주셨다. 아무리 사양해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면서 기어이 주셨다.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 할머니는 용돈을 아껴가며 모아둔 돈이었다. 나는 바로 쓸 수가 없어서 장시간 그 돈을 서랍 속에 간직해 두었다. 가끔씩 여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중매 한번 시켜주려고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다. 때로는 없는 말도 지어냈지만 내가 못난 탓인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이 많은 할머니는 항상 죽고 싶어했다. 평생 온갖 병으로 인해서 고생하고 죽는 것도 쉽게 안된다면서 늘 하늘을 원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는 더욱 더 돈독해지고 깊은 얘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올해 4월 중순에 할머니와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다른 지방으로 가서 더 이상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작별인사 하면서 마지막으로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딱딱한 어깨를 매만지며 할머니의 건강을 빌었다. 할머니도 못내 서운해 하며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가끔씩 놀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할머니와 포옹을 하였다.

떠난 지 한 달 후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뒤늦게 소식을 들었다. 5월 초 할머니는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한다. 저멀리 1·4 후퇴때 중국에서부터 피난(할머니는 피난 당시 동상을 입은 후에 발병을 한 것 같다고 종종 말씀하셨다)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갖은 고생과 세상사람들에게 받아왔던 따돌림을 이제 마음에 묻어둔 채 가셨다. 당신의 소원대로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곳으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셨다.

할머니는 납골당에 묻히기를 싫어했다. 평소에 "내 죽으면 불에 꼬실라서 저 멀리 훨훨 뿌리삐라. 납골당은 절대 안들어 갈끼다"라며 당신은 한뼘의 공간밖에 안되는 그곳에서 해방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죽어서 나마 세상과 만나고 싶어했다. 결국 할머니의 유해는 다른 곳으로 모셨다고 했다.

할머니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더욱 자주 생각이 난다. 신경이 둔해서 늘 뜨거운 물에 손을 데었던 할머니, 다른 사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그 상처조차도 발견해내지 못하는 할머니, 그래서 손에는 늘 붕대를 감고 있었던 할머니가 못내 그립다.

"욕쟁이 할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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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03-07-05 16:24:55
불구하고도의 사랑 이성훈기자님 하기 어려운 일을 하셨군요.
모두 말은 쉽지만, 그렇게 찾아가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무엇 무엇에도 불구하고도의 사랑이란 말을 참
좋아 합니다. 불구하고도의 사랑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다 같이 잘살아 볼날이 가까워질것입니다. 잘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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