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간단하게 쇼핑을 한 뒤 오랜만에 피자집엘 들렀습니다. 시끄러운 음악과 윙윙대는 소음이 가득한 그 곳에 두 할머니가 손자쯤 되는 젊은이들 틈에 자리를 하셨더군요. 우두커니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계셨습니다. 메뉴판을 들고 오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죠.
할머니들은 참다못해 서빙 하는 여학생을 불러 주문을 받으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 여학생은 "셀프예요!"라고 대꾸했고, 할머니는 "셀프가 뭐냐?"고 되물어시더군요. 여학생은 황당하다는 듯이 "저기 나가서 시키는 거요!"라며 손가락을 내질렀습니다.
두 분 할머니는 그 여학생이 가리킨 주방 쪽을 바라보시면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듯했죠. 한 분은 '그냥 나가자'고, 다른 분은 '이왕 왔으니 그냥 아무거나 먹자'고 말입니다.
결국 그 두 분이 젊은이들을 헤집고 받아온 음식은 콜라 두 잔뿐이었습니다. 왜 할머니들은 이처럼 생소한 곳에 오셨을까요? 그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분들이 갈 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실제로 도심의 어느 곳에도 노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빌딩 숲 속의 벤치는 물론이고 전통찻집 간판을 걸어놓은 곳에서도 노인들은 환영받지 못하잖아요? 오히려 차도와 보도를 종횡무진 달리는 오토바이에 사고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저는 우리 노인들의 삶을 일본의 그것과 자주 비교하곤 합니다. 일본에서 몇 년을 살았거든요. 여기서 잠깐 제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아유미'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분을 통해 노인 봉사의 동기를 얻었답니다.
아유미 할머니는 저희 옆집에 사셨는데 독서광이셨어요. 집 안엔 책이 가득했는데, 활자가 유난히 큰 노인 도서를 보고 저희 부부는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일본에 오기 전 팔순이 넘으신 저의 할머니역시 무척이나 독서를 즐기셔서 백내장 수술 후에도 늘 제게 뭔가 읽을거리를 부탁하시곤 하셨지요. 하지만 서점가를 둘러봐도 마땅한 책이 없었습니다. 해가 여러 번 바뀌어도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일본엔 노인용 도서가 우리 나라의 아동 도서만큼이나 잘 구비되어 있더군요. 다정다감한 아유미 할머니는 저희와 함께 가족처럼 지냈는데요. 할머니는 제가 보기에 일흔은 훨씬 넘어뵈셨는데도 외출이 잦았습니다. 저희가 할머니의 화단에 물을 줘야 할 정도로 말예요.
이유인즉슨, 할머니는 평일에는 근처 보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셨고, 주말이면 댄스 교습소에서 춤을 배우셨어요. 하지만 언제나 무엇이든 솔직했던 그녀이긴 했지만 유독 나이만은 비밀에 붙이셨습니다.
넌지시 농담 삼아 나이를 알아 맞춰보겠다고 하면 언제나 "스물 일곱!"이라면서 미소를 지을 뿐이었죠. 영원한 27세의 아유미 할머니. 아마 지금도 할머니는 27세 인생을 즐겁게 사실 테지요.
일본 나가사키역 택시 승강장에 들르면 분주히 움직이시는 할아버지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관광객에게 택시를 안내하시는데 모두 일흔은 돼 보입니다. 적재적소에 노인의 일자리를 만들어 드릴 줄 아는 일본인들이 참 존경스럽더군요.
언제나 우리나라는 그런 모습으로 노년을 살 수 있을까요? 방 안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텔레비전이 유일한 친구인 나라. 아파트 양지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나라. 화투장이 난무하는 경로당이 공식적인 노인 휴식터인 나라…. 우리의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일본 얘기는 너무 먼 나라 얘기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언제나 일본 따라하기에 바쁜 우리 나라. 몇 년 후면 우리 주위에 제2, 제3의 아유미 할머니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좋은 것은 빨리 배울수록 유익할 테지요.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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