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자주국방으로의 길(4)
[특집] 자주국방으로의 길(4)
  • 오원철 박사
  • 승인 2007.08.3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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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병기개발과 자주국방

 
   
  ^^^▲ 일생을 받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朴 대통령, "자주국방만이 우리의 살 길"

朴 대통령은 김정렴 당시 비서실장으로부터 美 7사단뿐만 아니라 앞으로 5∼6년 사이에 모든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계획이 추진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고 한다.

미군이 완전 철수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의 기본 「틀」이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朴 대통령은 분명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군의 월남파병 결정 때에 존슨 美 행정부가 얼마나 고마워했는가를 엊그제 일같이 기억하고 있는 朴 대통령으로서는 주월 한국군 2개 사단이 지금 이 시각에도 미군을 도와 피를 흘리고 있는 이 시기에 닉슨 행정부가 이러한 태도로 나오는 데 대해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신년사에서 "자기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적자생존의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朴 대통령은 이러한 냉혹한 생존경쟁의 시대에 살고있는 힘없는 약소국가 대통령으로서의 아픔을 되새겼을 것이다.

前記 김정렴 비서실장의 회고록에 의하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朴 대통령은 "美측 방침에 일희일비하는 처지를 빨리 초월해야 한다. 자주국방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자주국방에는 막대한 내외자가 소요되므로 경제가 잘 되어야 하며, 첨단 정밀무기는 고가이므로 외화는 신종 고성능 무기 도입에만 충당하고 전통적 기본무기는 하루 빨리 국산화해야 한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주한미군 완전철수가 앞으로 5∼6년 후에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71년은 국운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해이며, 앞으로 2∼3년간이 국가안보상 중대한 시기라고 했다. 2∼3년 사이에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국군의 현대화를 끝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선보장(先保障) 후감군(後減軍) 정책의 연원

이 시점에서 한미간의 군사협력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 북한에는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약 절반이요, 경제력으로 따지면 1/10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부나 국민은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당장 북한의 침공이 있을 것으로 느끼고 겁을 먹고 있다.

한 나라가 이렇게까지 외국 군대에 의존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안전 보장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감군이나 철군은 국가안보상 치명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주한미군을 철군이나 감군하려면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을 하고 난 후에 실시하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선보장 후감군」이라는 정책이다. 그런데 이 정책의 연원을 찾아보면 6·25 전쟁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선보장」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북한에서 소련군이 철수하는 것과 동시에 미군도 철수한다"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규식(金奎植) 당시 입법원 의장은 "한반도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국방군」을 창설한 후 철병하는 것이 미소 남북 점령군의 책임이다" 라고 강력히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것이「선보장 후철군 정책」의 시초였다.

이 때 김규식 입법원 의장이 말하는 선보장은 「한국군의 창설과 현대화」개념이었다. 그 후 소련군이 북한으로부터 철군하자 미군도 이에 따라 철군하기로 했다. 이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침략은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라는 한마디 약속만 해준다면 미군이 주둔해 달라고 하지 않겠다"라며 애원했다.

李 대통령의 뜻은 「한국에서 전쟁 발발시 미국은 자동 개입한다는 정책」을 선언해 달라는 것이었다. 줄여서「자동개입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 때 처음 제기되었다. 이렇게 돼서 선보장에는 「한국군의 현대화」「자동개입 정책 채택」의 두 가지 방법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단지 500명의 군사 고문단만 남겨 놓고 1949년 6월에 전면 철군을 했다.

한편 소련은 미소 공동위원회의 소련측 수석 대표로서 서울에 체재하면서 한국의 내부 사정도 잘 파악하고 있던 스티코프 대장을 초대 駐 북한 대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 3천 명에 달하는 (소련) 군사고문단을 배치하여 조직적, 계획적으로 북조선 인민군을 창설하고 강화해 나갔다. 이 결과가 6·25 한국전쟁이었다. 즉 주한미군 철수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45년 8월에 있었던 38도선의 책정, 49년 6월의 주한미군 철수, 그리고 한국전 참전 등을 손수 결정했으니 우리 민족의 비극은 트루먼 대통령의 오판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연유로 주한미군 철군문제가 거론되기만 하면 트루먼 대통령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을 이행하라, 즉 「(1) 자동개입 조약을 맺든가 아니면 (2) 한국군을 현대화하고 난 후에 철군(감군)하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자동개입」문제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상반된 입장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각국의 「자동개입 정책」에 대해 정리해 본다. 「자동개입」이나 「즉각개입」이라는 개념은 일반론으로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어떤 나라가 적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 우방국의 도움으로 적국을 물리쳤다고 치자. 이 때 적국의 공격이 또 다시 일어날지 모르니, 우방국에게 "항구적으로 병력을 주둔시켜 달라"고 한다면 염치없는 요구일 것이다. 더구나 "적국이 쳐들어 올 때는 자동적으로 파병하겠다"는 조약을 맺고 난 후, 철군을 하라고 한다. 20세기 현재에 있어서는 지나친 요구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보장」이 한반도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동서냉전의 격돌지」라는 데 그 원인이 있다. 한반도의 주변 강대국은 한반도를 차지하는 나라가 극동전략상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주변 국가들은 우리나라를 자국의 이익선(利益線)상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38도선 분할론」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스탈린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6·25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만일 소련이 남한(예컨대 진해(鎭海) 등 남해안)에 대규모의 군항과 여러 개의 공군기지를 갖게 된다면, 일본의 방위체제는 물론이고 미군의 태평양 전략은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UN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하자 중공이나 소련으로서는 ―현재까지는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었는데―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미국, 한국, 일본 등의 서방측 공동세력권과 중공, 소련, 북한의 공산사회국가가 직접 국경선을 접하고 대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공은 의용군이란 명목으로 수백만 명의 육군을 파견했고, 소련은 대대적인 공군병력을 참전시켰다. 중공과 소련은 서방세력권과 직접 국경을 접하기를 꺼렸다는 뜻이다. 양국은 제각기 국가안보상 북한(38도선과 압록강 및 두만강까지의 지역)이라는 완충지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이러한 이해관계를 절충한 결과가 바로 휴전이었다.

6·25 전쟁 후 자동개입 조약을 체결한 것은 북한쪽이다. 1961년 남한에서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북한은 소련 및 중공과「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소련과는 61년 7월 1일, 중공과는 7월 11일에 체결됐는데, 그 내용에는 「계약 쌍방은 계약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계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의 연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사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계약 쌍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제2조)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이 조약은 완벽한「자동개입 조약」인 것이다.

고쳐 말하면, 북한이 미국과 한국 어느 한 쪽 또는 공동으로부터 침략을 당할 때에는 소련과 중공은 군사적으로 자동 개입한다는 조약이다. 그리고도 북한, 중공, 소련은 여러 번에 걸친 성명을 통해 「북한의 피점(被占) 또는 자본주의 제도에 의한 무력적 한반도 통일은 중공의 공업요지인 만주(滿洲)와 소련의 극동영역의 안전보장에 극히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북한, 중공, 소련은 안전보장에 관한 한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 중공과는 달리 자동개입 조약 맺기를 꺼리고 있었다. 그래서 남한과 미국 사이에는 1953년 8월 8일에 맺은「상호방위조약」이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당사국 중 어느 일국 … 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 자조와 상호협조에 의하여 무력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며 강화시킬 것이며, …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제2조)」로 되어 있다. 즉 당사국이 위협을 받을 때에도 협의와 합의하에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이 소련이나 중공과 맺은 자동개입 조약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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