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의 국론분열과 역사 왜곡
김원웅 광복회장의 국론분열과 역사 왜곡
  • 강명천 기자
  • 승인 2020.08.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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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세 (전)부산교총회장 (현)학교바로 세우기 전국연합회장
조금세 (전)부산교총회장 (현)학교바로 세우기 전국연합회장

작금 대한민국은 이중인격자 광복회장 김원웅이란 소인배로 인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말했고, KBS, MBC라디오 방송에서 이승만은 친일 미 청산의 99% 책임이 있고, 해방 후 미국에 빌붙어서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국가이익을 챙긴 사람이며, 신채호 선생을 들먹이며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라고 극언을 서슴치 않았다.

또한 지난 17일에는 백선엽장군에 대해 6·25가 난 그날 백장군이 이끌던 육군 1사단이 안 나타났는데 그것만 가지고도 사형감이라고 있지도 않는 일을 지어내어 망언을 했다. 명색이 광복회장이라는 자가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토대를 마련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한 백선엽장군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망발을 하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발언에 청와대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고, 이낙연 전 총리를 비롯한 많은 여당 정치인들은 마치 김원웅이 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립운동가 후손의 한사람으로서 비분강개 하지 않을 수 없다.

1. 이승만 전대통령을 친일파, 친미파로 평가하는 김원웅의 잘못된 역사관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 친미 인물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어찌 3선 국회의원이 되고 광복회장으로 선출되었는지 통탄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에 적극 참여하여 열강의 침략과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노력과 고초를 겪은 분이다.

1899년에는 열강의 압력에 자주성을 잃은 고종황제 폐위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1904년 8월9일 특별사면령을 받고 석방되어 11월 민영환과 한규설의 주선으로 한국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합병 후 이승만대통령의 조선의 독립을 위한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일본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강경하였고, 독도 영유권, 이승만 평화선 주장, 일본과의 국교회복 거부 등 시종일관 일본에 강경하였다. 다만 1948년 10월12일에 구성이 완료된 반민족 행위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아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반민특위 활동이 부진하여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두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 비호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또한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국국가이익을 챙긴 사람이라고 한 것은 이승만대통령의 대미정책을 너무도 모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해방 후 미군정 시절 미국정부는 이승만박사 대신 몽양 여운형, 우사 김규식박사를 한국정부 수반으로 세우려고 계획을 하였다. 그 주원인은 이승만박사는 미군정의 공산주의자에 대한 미온적 태도와 조선을 신탁통치로 북한을 소련에 남한을 미국이 분점하려는 계획에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미군정의 잘못된 정책에 제동을 거는 이승만박사 보다는 미군정의 정책에 호응하는 여운형과 김규식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국 이후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많은 충돌을 하였다. 미 국무성 기밀문서에 의하면 미국은 4번에 걸쳐 이승만 대통령 제거작업을 시도했다. 6·25전쟁 휴전 후 휴전회담을 강행하려는 미국의 입장과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대통령령의 입장이 충돌했고 전후 미국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북한군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을 격분시켰다. 일본과 원만한 관계를 회복하여 한일수교를 바라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반해 독도영유권 및 이승만평화선을 강행하고 일본과의 수교를 반대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책노선에 미국은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일본과 미국에 대해 자주독립과 열강의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고 뚝심으로 한미동맹을 체결한 이승만대통령을 잘못된 일부분만 가지고 친일, 친미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역사를 너무나 왜곡하는 것이다.

2. 구국의 영웅 백선엽장군을 사형감이라고 극언하는 김원웅

1950년 8월 북한군의 파죽지세의 공세에 밀려 낙동강전선까지 붕괴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불과 8천명의 1개 사단으로 북한군의 2만 명이 넘는 3개 사단을 한 달 가까이 방어하여 북한군의 대구와 부산 점령을 막아 인천상륙자전 성공을 가져온 다부동전투와 북진하여 최초로 1사단의 평양 입성, 중공군 춘계대공세 방어 등 혁혁한 전공으로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원한 백선엽장군의 업적을 폄하하고,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어 역사를 왜곡한 김원웅은 역사의 죄인이다.

김원웅이 문제 삼는 백선엽장군의 간도토벌대 문제는 간도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던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는 1940년 12월 러시아연해주로 이동하여 러시아군에 병합되었고 백선엽장군이 초급장교로 근무하던 1943년~1945년 사이 간도에서는 독립군이 전무하였다. 이런 연유로 백선엽장군이 비록 간도 특설대에 중위로 근무하였으나 독립군과 우리 동포들에게 위해를 가한일은 전혀 없었다.

3. 표리부동한 광복회장 김원웅이 이승만 전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을 폄훼하는 이유

첫째, 김원웅은 깜도 되지 않으면서 독립운동가 부모의 후광과 교언영색과 정치적 야망을 위한 변절로 3선 국회의원과 광복회장감투를 차지했다. 광복회장을 맡고 보니 자신의 과거 부끄러운 행적을 덮기 위해 현 정부가 싫어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장군을 폄훼하는 것이 자신의 입지구축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김원웅의 모친 전월선은 조선의용대 출신으로 약산 김원봉 밑에서 독립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김원웅은 평소 김원봉을 존경하고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런 김원웅의 사상 성향은 자연히 북한정권을 흠모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입장이였고 하물며 북한 김정은을 추앙하고 반대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장군을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셋째, 문재인 정부는 최근 부동산정책 실패, 오거돈 부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사건, 추미애장관의 검찰개혁의 무리수,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사건, 코로나 재 확산 및 경기위축 등 갖은 악재로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다. 이를 간파한 간교한 김원웅은 엉뚱하게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장군의 과거 행적을 과장하여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 현 정부의 인정을 받기 위한 술책으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 김원웅은 지금이라도 전 국민에게 석고대죄 하고 국론분열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욕되게 하지 말고 광복회장을 사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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