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 플라스틱 삿갓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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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플라스틱 삿갓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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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골굴암

"저어~ 말 좀 물읍시다. 골골암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골골암요?"
"아, 마침 잘되었니더. 저희들도 골굴암을 가는데."
"같이 타고 가도 되겠습니까?"

 

 
   
  ^^^▲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불
ⓒ 이종찬^^^
 
 

그날은 무척 뜨거웠다. 경주 엑스포 전시장 옆에 널부러진 도로에서는 아지랑이가 갸녀린 허리를 휘감으며 너훌너훌 춤을 추고 있다. 그래. 이렇게 티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에 걸린 태양마저 너 잘 만났다는 듯이 초록빛 세상을 마음껏 유린하고 있다.

20분 간격으로 다닌다는 감포, 양남행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마와 등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린다. 날도 더운데 막걸리나 한잔 하고 갈까요? 그라다가 차 놓치모 우짤라꼬예? 뭐가 그리 급합니까? 다음 차 타면 되지. 그때 차량번호판에 대전이란 글씨가 씌어진 자가용이 한 대 스르르 멈추어 선다.

자가용 안에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녀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스스럼 없이 말을 놓고 지내는 걸 보니 부부인 듯하다. 이 분들은 경주에 관광을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골굴암을 보기 위해서, 대전에서 3시간 남짓 걸려 경주까지 달려왔다고 한다. 그래.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아, 골골암이 아니라 골굴암이었군요? 근데 그 골굴암에는 개도 앉아서 기도를 한다면서요?"
"글쎄요?"
"그거는 아마도 골굴암 입구에 있는 백구를 보고 하는 말인 것 같니더. 그 백구의 목에 백팔염주가 걸려 있으니."

오늘따라 덕동댐이 더욱 넓게 느껴진다. 때도 없이 마구 쏟아진 비 탓일게다. 40여 년을 경주에서 살았다는, 나의 경주 길라잡이 신 선생 말로는 이 덕동댐의 물이 곧 감로수란다. 왜요? 이 물은 경주시민의 식수원이자 경주의 들판을 가뭄에서 구해주는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한다 아인교.

윤슬을 수없이 굴리는 덕동댐에서부터 강원도 신골짜기 같은 추령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계속 S자다. 추령터널을 지나자 오른편에는 바닥이 환하게 드러다 보이는 약수 같은 물이 졸졸졸 흐른다. 금방이라도 돌틈 사이에서 가재 한 마리가 집게발을 벌리며 기어나올 것만 같다.

"저기가 장항리니더. 쌍탑이 있다는 그 절터 말이니더. 저 곳에 있었던 절이 불국사보다 더 컸다고 하니더."
"그래. 저기까지 걸어갔단 말이요?"
"우짜겠능교. 차도 안 다니는데."

 

 
   
  ^^^▲ 골굴암 요사채
ⓒ 이종찬^^^
 
 

 

 
   
  ^^^▲ 골굴암 일주문
ⓒ 이종찬^^^
 
 

모가 일렬로 잘 심어진 들판은 정겹기만 하다. 들판 곳곳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긴 목을 쭈욱 빼고 열심히 저벅거리고 있다. 간혹 타조만한 크기의 황새도 보인다. 안동리. 이대로 지나쳐 조금 더 달리면 감은사지와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다. 바다가 보고 싶다. 하지만 동해바다를 지척에 두고 좌측으로 꺾어야만 한다.

기림사와 골굴암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도 바닥이 환히 드러다 보이는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른다. 문득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우리 마을에도 이처럼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도랑이 있었어.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침이면 누구나 그 도랑에서 세수를 했고, 마을 아낙네들은 빨래를 했었지.

여름방학을 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그 도랑에 나가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어. 가시나들은 도랑 아래 쪽에서, 머슴아들은 도랑 위 쪽에서. 그래. 그 도랑은 여름 내내 우리들에게 훌륭한 수영장 구실을 해주었어. 그래. 우리들은 눈이 발개질 때까지 그렇게 개헤엄을 치며 놀았지.

"주차장을 이렇게 넓게 만들고 여기저기 집을 짓는 걸 보니, 여기도 머잖아 입장료를 받겠구먼."
"저기 가서 목이나 축이고 가입시더."
"이 산 속에 웬 백구?"

약수터가 있는 곳에는 목에 백팔염주를 걸고 있는 백구 두 마리가 혀를 길게 빼물고 마구 헉헉거리고 있다. 근데 사람이 곁에 가도 본 체 만 체 한다. 이 백구들도 도를 통해버렸나. 아니, 이게 뭐야. 감로수가 수도꼭지에서 나오다니. 아니, 또 저것은 뭐야. 숲속에 웬 플라스틱 하우스?

 

 
   
  ^^^▲ 삿갓 쓴 마애여래불
ⓒ 이종찬^^^
 
 

"몇 해 전부터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을 보호한다고 저렇게 씌워놓았니더."
"아, 천년을 넘게 모진 비바람에도 버텨온 마애불인데... 쯧쯧쯧. 어디 가나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 하면 저런 꼴이야."
"그뿐만 아이라 마애불에 방부제까지 칠했다고 하니더."
"플라스틱 삿갓을 쓴 마애불이라..."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304번지에 우뚝 솟아있는 마애여래좌상. 이곳이 바로 기림사의 암자였다는 골굴암이다. 하지만 골굴암의 이력에 대한 것은 그리 확실치가 않다. 기림사 사적기를 펼치면 "함월산 반대편에 천생석굴이 있는데, 굴이 12개가 있으며 그 굴마다 각각 이름이 붙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골굴암을 기림사의 암자라고 여기고 있단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원효대사가 죽은 뒤 그 아들 설총이 원효의 뼈를 갈아 실물 크기의 조상을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설총이 한때 원효대사(아버지)가 살고 있던 동굴 부근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짙푸른 녹음이 지쳐가는 숲속에 둥지를 튼 골굴암은 그 이름처럼 석회암질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다. 그 바위덩어리 곳곳은 마치 큰 돌덩이에 맞은 것처럼 오목하게 패여져 있다. 오목하게 패여진 이 곳에 바로 석굴이다. 또한 그 거대한 바윗덩어리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불상이 바로 마애여래좌상이다. 높이 4m, 폭 2.2m. 보물 제581호.

 

 
   
  ^^^▲ 남근바위와 여궁
ⓒ 이종찬^^^
 
 

 

 
   
  ^^^▲ 산신당
ⓒ 이종찬^^^
 
 

골굴암은 석굴사원이다. 석굴사원은 인도나 중국에서는 흔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꽤 보기 드물다고 한다. 왜? 우리 나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석굴을 조성할 정도의 대규모 암벽이 없단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암벽은 대부분 단단한 석질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천연석굴이 생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 숙종 12년(1686)에 정시한이 쓴 <산중일기>에 의하면, 골굴암의 석굴들은 앞면을 목조 기와집으로 막은 뒤, 화려한 단청을 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그 당시에는 이곳이 화려한 석굴들이 마치 마을을 이룬 것처럼 보였단다. 또 석굴마다 법당굴, 석법굴 등으로 구분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석굴은 법당굴뿐이다. 법당굴은 4굴 앞면에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어놓았다. 그래서 언뜻 바라보기에는 소박한 기와집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당굴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석굴이다. 법당굴 북쪽 벽에는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이 너무 심해 얼굴 표정을 알아볼 수가 없다.

석굴과 석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로 된 가파른 계단이다. 암벽 정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마애불로 오르려면 여기 저기 패여진 이 천연석굴을 지나야 한다. 최근 마애불로 오르는 이 길을 안전하게 손질을 했다고 하지만 노약자나 어린이가 오르기에는 여전히 가파르고 아찔하다.

"세월이 흘러가모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대자연의 이치이거늘, 훼손을 막는다꼬 마애불을 플라스틱 하우스 속에 가두고, 방부제까지 칠해서야 되것나."
"글쎄요? 과연 어느 방법이 옳은 것인지 저도 생각 좀 해 보아야겠네요. 플라스틱 삿갓을 쓴 마애불이라. 그러면 불자들이 기도를 할 때도 플라스틱 기도를?"

아, 자칫했으면 깜빡 지나칠 뻔했다. 골굴암은 선무도의 본원이기도 하다. 선무도란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로 심신의 평화로운 안정을 얻어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일종의 구도적 수행법이라고 한다. 선무도의 모든 동작은 격렬하지 않고 빠르고 느린 동작, 부드럽고 강한 동작 등이 한데 어우러진다고 한다.

주말수련회, 일요수련회, 청소년수련회 등이 있어 일반인들도 신청을 하면 누구나 골굴암에 와서 선무도를 배울 수 있다.

 

 
   
  ^^^▲ 선무도
ⓒ 골굴암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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