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 신앙적으로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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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유행’ 신앙적으로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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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
- 바이러스가 인간 몸에 스며들 때 인간의 마음은 다시 연결된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 사이에 스며들면서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다시 연결된다. 새로운 매혹적인 현실과 그 마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존재할 때까지 떨어져 살 수 있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 사이에 스며들면서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다시 연결된다. 새로운 매혹적인 현실과 그 마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존재할 때까지 떨어져 살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전염병 발생은 종교에 영향을 적지 않은 미쳤다. 그렇다면 이 전염병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바꿀까?”

중동 카타르 조지타운 대학에서 정치와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우데이 찬드라(Uday Chandra)729일 중동 위성 채널 알자지라 오피니언란에 제목과 같은 주제를 다뤘다.

우데이 찬드라는 신학은 세속적으로 보이는 시대에 유행병이 도는 동안, 우리의 마음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미생물 병원균의 인간이 아닌 세계와의 상호작용은 우리가 신으로 지정한 다른 종류의 비인간적 영역과의 관계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과거가 우리에게 어떤 무엇을 가르쳐준다면, 그것은 오늘날 사회와 정치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므로, 아마도 곡식과는 대조적으로, 변화하는 세계관들의 신학적 토대인 이삭이라는 이러 저러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고대 유행병(Pandemic)과 종교

유행병은 인간의 정착지와 농업만큼 오래되었다. 돌연, 동물매개감염질병(zoonotic diseases)으로 인한 광범위한 사망은 우리 초기 조상들의 마을과 마을에서 공포를 일으켰다. 그것은 그들이 사후(afterlife) 세계를 생각하게하고, 이승과 저승에서 구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신들을 초대했다.

발진티푸스에 의한 것일 수도 있는 아테네의 페스트에 대한 그의 유명한 설명에서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우리에게 임박한 죽음 앞에서 동료 시민들의 무력감에 대해 말해준다. 그는 신들이 아테네 사람들을 버렸고, 아테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맡겨졌고, 그들은 도덕의 가식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6세기 후, 천연두라고 할 수 있는 안토니우스 역병(Antonine Plague)도 로마인들 사이에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영국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로마 제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혼잡하고 불결한 도시 중심지에서는 옛 신들의 힘이 쇠약해지는 것 같았다. 로마의 시민들은 악의 탈피자인 아폴로 알렉시카코스(Apollo Alexikakos : 질병 회피자로서의 아폴로)에게 헛되이 돌아섰고,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약 5백만 명이 사망했다.

몇 세대 후 키프로스 역병(Plague of Cyprian)이 강타했을 때, 고대 로마 세계는 영원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기독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로마의 신들(Roman deities)은 이교도 숭배자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기독교가 로마 국교(國敎)라는 사명을 떠맡는 데는 한 세대 이상이 걸리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오늘날 페샤와르 근교의 간다라(인도 서북부 및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옛 이름, 헬레니즘 양식의 불교 미술이 융성)의 쿠샤나 왕조에서는 평신도들이 높은 열과 마마자국이 있는 피부를 식히기 위해 하리티(hariti, 부처에 의해 회개한 괴물)와 같은 불교 여신들을 달랬다.

인도 동부에서 적어도 1천년 동안 뱀에 물린 상처와 천연두를 피해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잎이 달린 파르나샤바리(Parnashabari)와 뱀여신 마나사(Manasa)와 같은 예언적인 여신들을 숭배해왔다.

사실, 유행병 특유의 신들에 대한 숭배는 인도에서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천연두 여신 시탈라(Shitala)에게 바쳐진 신전에서 계속되고 있다. 남아시아와 같은 다신교 사회에서의 의식은 종종 신과 치료자의 마법의 힘에 대한 믿음과 변종과 같은 의학적 관행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 역병(전염병)의 신학

기독교가 신자들에게 지상의 위안과 구원을 약속했지만, 불가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 페스트(페스트, bubonic plague)6세기 중반 비잔틴 제국에 도착했다. 그 후 2세기 동안 역사학자 카일 하퍼(Kyle Harper)가 최근에 보여 주었듯이, 성인(聖人)과 동정녀 성모 마리아(Virgin Mary)를 섬기는 대중적인 종교집단이 비잔틴 제국 전역에 확산됐다.

정통 기독교(Orthodox Christianity)는 유일신적인 유대교에서 벗어나 지중해 세계의 이교도 종교와 융합하게 되었다. 카일 하퍼는 또 비잔틴 땅에서 신성한 계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유일신교인 이슬람교를 지향하는 아주 자른 경향을 지적했다.

서유럽에서는 14세기 중반 선페스트의 영향이 그만큼 광범위했다. 흑사병(Black Death)은 영주들과 농민들을 묶은 봉건적 구조들을 샅샅이 뒤졌다. 죽음의 신(Grim Reaper : 해골 모습에 긴 망토를 걸치고 큰 낫을 든 가상적 존재)은 중세 유럽인들을 철저하게 괴롭혔고, 따라서 당시 성직자의 기도는 헛된 것처럼 보였다.

성직자들은 페스트를 신의 형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했고, 종종 전염병에 굴복했다. 유대인, 나환자, 그리고 사회적 편향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당시엔 급진적인 종교 운동이 번창했다.

채찍질 고행단(Flagellants)과 종교적 의식에 따른 자기 고행(苦行)을 하는 자들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들은 성직자들보다 더 높은 경건함을 주장하면서, 오래 전에 죽은 신성 로마 황제 프레데릭 2(Frederick II)의 귀환을 메시아로 갈망했다.

롤라드 족(Lollards : 14~15세기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파의 교도들)은 덜 극적인 종말을 추구했다 : 영어와 같은 토착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 그리고 성인, 금식, 고해성사, 순례의 숭배를 끝내는 것.

그들은 종교적인 관행을 성서에 더 순치시키려고 애쓰면서,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형시키는 성체의 관점을 거부했다.

비록 채찍질 고행단과 롤라드 둘 다 로마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었지만, 그들은 다양한 개신교 종파들 사이에서 경전에 대한 직접적인 일반적 해석과 개인주의적 신앙 관념의 길을 닦았고, 적어도 그들 중 몇몇은 세상에 대한 천년왕국 사상이 뒤집히고, 곧 닥칠 종말론(apocalypse)을 지지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사상은 주류 개신교에 의해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상 낙원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주류 개신교 교회들은 같은 지상 낙원의 이상하리만큼 통계학적인 비전을 추구해 왔는데, 그 비전에 의해 개인의 경건함과 국가의 규율기법이 서로 깔끔하게 일치하게 된다.

경건함에 대한 개인의 관념과 국가의 규율 관행은 모두 17세기 후반까지 전염병과 함께 서유럽에 공존했다.

가톨릭 유럽에서는 페스트(역병)가 전체적으로 다른 영향을 미쳤다. 개신교 개혁자들에 대한 대응으로 가톨릭 신학자들은 성직자적인 권위와 신성과 인간 영역 사이의 조정의 필요성을 옹호하려고 했다.

수세기에 걸쳐 퍼진 유행병에서 불완전하고 죄 많은 인간의 방식은 신의 의지의 변덕스러움과 일치하는 것 같았고, 성직자들은 구원에 대한 가톨릭 신자의 가장 좋은 희망으로 남아 있었다.

페스트에 대한 이슬람의 반응은 기독교 유럽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다. 페르시아의 지식인 이븐 시나(Ibn Sina)는 당연히 사회적 거리(개인-집단 간의 친근도)를 두는 최초의 지지자였을지 모르지만, 그라나다의 이븐 카티브(Ibn Khatib)와 이븐 카티마(Ibn Khatima)는 기독교 동시대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페스트의 학자였다. <<아랍어에서 Ibn‘~의 아들이라는 뜻>>

이 두 사람 모두 페스트를 알라의 유언으로 보았으며, 페스트를 관찰하고 선페스트와 폐렴의 을 구별하며 그 확산을 억제하고자 했다. 전염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쿠란(이슬람 경전)에 대한 정통 수니파 해석과 전적으로 양립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연과 사회의 안정된 패턴이 극적인 사건들에 의해 때때로 동요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기회원인론(occasionalism)의 교리를 고수했다 ; 전자는 인간의 마음에 이해될 수 있고 후자는 덜 이해될 수 있지만, 둘 다 신의 뜻에 따른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신념이다.

페스트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손실을 견딘 마그리비 철학자 이븐 칼둔(Ibn Khaldun)은 문명의 흥망성쇠 무캇디마(Muqadimah : 역사서설)에 관한 논문에서 기회원인론 취했다. 어떤 이들은 모로코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초기 현대 이슬람 세계의 그의 업적과 방역(검역)의 부족을 특히 개혁 후 유럽에서 현대 국가들과 함께 등장한 방역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숙명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일상적 보호조치가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생사를 지배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전적으로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행병 치료 중 검역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신체에 대한 이해의 증가와 하느님의 길에 대한 의식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재앙과 민족을 떠올리듯, 유행병은 종교적 변화의 순간만큼이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의 순간이라는 것이 분명해져야 한다.

* 세속적 시대의 전염병

우리는 세속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지만,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편안한 불신론에 안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해 왔다.

위에서 논의된 모든 신학적 반응은 지난 세기 동안 구별이 가능하다 : 우리가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절망과 무력감, 기도와 제물을 통해 신들을 예언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관심, 성직자의 권위를 방어하고 옹호하는 것, 심지어 새로운 예배 방식이나 심지어 새로운 신으로 가는 것, 준비. 종말론을 위하여, 자기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려는 충동으로 자신의 신앙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러나 현대 서구 사회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며, 그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배자라고 믿도록 습관화되어 있다.

이러한 믿음은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존 로크(John Locke) 등 초기 현대 철학자들의 저술에서 드러나듯이, 유럽 등지에서 경쟁자들을 예속시키거나 제거하려는 과정에서 개신교와 함께 생겨난 얄팍하게 위장된 신학적 세계관이 드러난다.

가톨릭의 유럽이나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다신교적 세계에서 이러한 경쟁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한 것은 무엇보다도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의 연속체에 존재하는 우리자신의 개념에 기초하여 인간의 성장에 대한 자연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와 현대 국가를 통한 부()의 끈질긴 추구는 성장을 무한한 것으로 간주하게 해 왔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와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 사이에 몇몇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엄청나게 부유해 졌고, 인류는 그 수가 4배나 증가했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는 다시 4배로 성장했다. 페스트균은 이제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홍역, 천연두와 같은 과거의 대량 살상자들과 함께 길들여지고 있다.

우리의 주된 위협은 바이러스, 즉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혼합된 DNA 가닥에서 나온다. 일반적인 감기부터 인플루엔자와 에볼라까지, 바이러스는 허망한 인류중심적 세계관에 도전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지구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발생했으며, 바이러스의 야생 서식지에서 동물 숙주를 대체하는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가 인간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이유가 없다. 만약 인간이 바이러스의 세계관으로부터 어떻게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유행병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1918년의 인플루엔자(스페인 독감) 대유행 이후, 바이러스는 한 종으로서 우리의 우월주의(supremacist) 주장을 조롱해왔다. 이에 대해 일부는 예전처럼 전통적인 종교와 신에 의지하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세속적 신(secular deity)인 현대국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것처럼, 레비아단(Leviathan : 성서에 나오는 바다 속 괴물)의 불안한 대제사장들은 전염병 속에서 거의 위안을 줄 수 없다. 지난 천년 동안 우리가 다른 신들을 숭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국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바이러스를 사라지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상현실에서는 신학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의 루머와 '가짜 뉴스(Fake News)'가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많이 퍼지고 있는 반면, 느슨하게 조직된 새로운 형태의 집단(공동체)들이 국경 안팎에서 나타나고 있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오늘날 가장 눈에 띄지만, 극보수주의(alt-right)적인 중상자들을 깎아내리지 말아야 한다. 극보수주의라는 인종 차별주의, 우상 숭배, 패권주의 등의 요소로 특징 지어지는 극보수적 정치 사상의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온라인 집단 활동을 트리브(Tribes : 부족, 혹은 종족)‘라고 부르는데, 이는 초기의 사회성으로의 이타적인 복귀를 의미한다.

이러한 집단은 아마도 현대적 자아의 신격화에 의한 신의 거울인 개인숭배(cult of the individual)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의 부족 공동체들은 또한 개인 생산자들을 동시에 생산되고 소비되는 수백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s)로 분해하는 하이브 마인드(hive minds, 군체 의식)로 이해될 수도 있다.

<여기서 데이터 포인트데이터 안에서 규명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말하며, 하이브 마인드는 지식이나 의견을 공유하고 무비판적 화합이나 집단지성을 산출하는 개념적 실체를 말하는데, 군체의식 혹은 집단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인간 생성 데이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결합하거나 분리하거나 재결합하여 강렬한 믿음과 영향을 바탕으로 디지털 집단을 형성한다.

무의식적으로 별개의 개인들을 무수한 데이터 포인트로 세분화시키는 것은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수이자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 중세전쟁사 박사인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모든 인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의 신비한 힘을 중심으로 한 미래 신앙으로 여기는 데이터이즘(dataism, 데이터교-인간이 데이터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세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전염병은 이 어설픈 믿음의 역사에 있어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조직화된 종교와 국가가 신자와 비신자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자신을 믿거나 영성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슬람 사원, 사원, 교회에서 오프라인으로 예배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이버스피어(cybersphere)에서는 디지털 시대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퇴보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피난처로 점점 더 특징지어지고 있다.

대유행은 또한 구경거리에 대한 욕구를 증폭시켰고, 문맹퇴치 후 시대를 가속화 시켰다. (memes : 유전자가 아니라 모방 등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됨)은 호감, 논평, 공유와 함께 신체적 거리감이 두드러진 디지털 시대에 집단적 퇴행의 중심이다. 재미있게도, 'meme'이라는 단어는 호전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로부터 유래되었는데,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은 어떻게 생물들이 수평적인 유전자와 유전자 변이를 통해 지구상에서 공동 진화했는지를 설명했다.

오늘날 온라인상의 믿음과 신념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이 전염병 동안 우리가 볼 수 있듯이, 개인이 아닌 하이브 마인드(군체 의식/집단지능)는 그것의 구성단위다. 무관심하거나 불가지론적인 것은 우리 시대의 유니콘이다. 그러나 거기에 딸린 신학적 앙금을 포함한 개인의 죽음은 은연중에 일어났다. 펑 하는 소리는커녕 훌쩍거림조차 없었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가 그러하듯이 세속적인 사람들이 '정신분열증 시대'에서 '교차적 압박'을 받는다고 제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후기 인간세계의 데이터 중심적으로 시작되는 인본주의적 빛나는 본보기이다.

새로운 천국과 새로운 지구(a new heaven and new Earth)”를 추구하는 황홀한 무리와 천년왕국설을 믿는 집단이 진행 중인 신학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 :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및 사회 체제)로부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이르기까지 지구적 해방의 비전을 추구하는 이들 집단은 일반적으로 해방신앙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핵심에는 사이버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세주의 신념이 있는데, 이들은 억압당했거나 억압당했다고 믿는 자들은 이제 해방되어야 하며, 수천 년 후의 황금시대가 도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속적 시대의 내적 프레임(immanent frame)’이나 God-shaped hole(하느님 모양의 구멍)에서 벗어나 우리 세상을 다시 환원시키고자 한다.

<God-shaped hole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영혼, , 삶에 공허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다는 뜻이며, 내적 프레임은 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이 그 근거나 원인을 자기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스어로 아포칼리시스(Apokalypsis)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우리 세계에 대한 추악하거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는 계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우리를 새로운 시작에 이르게 하는 데 필요한 악으로 보이듯이, 코로나19는 오늘날 급진적 변화의 주체로서 마음을 사로잡는 듯 하다. 아무도 이 변화가 무엇일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강력한 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유행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의 극적인 확산은 우리에게 "바이러스성"이라는 반복된 문구를 다시 생각하게 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마음과 신체를 지배할 때, 인간은 우리에 갇힌 생물로 전락하고 만다.

과거의 유행처럼, 이 역시 우리를 죽음에 더 가깝게 이끌었고, 삶의 의미를 심사숙고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버트 카뮈(Albert Camus) 소설의 실존주의 영웅도, 지나간 재앙의 불행한 희생자도 아니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 사이에 스며들면서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다시 연결된다. 새로운 매혹적인 현실과 그 마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존재할 때까지 떨어져 살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디지털 사후세계가 어떻게 생겼든 간에, 바이러스는 인간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를 능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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