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 나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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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 나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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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수업

음치. 이것은 나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잣대이다. 굳이 말하자면 음 자체를 엉뚱하게 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곧잘 따라 부르기도 한다. 높은 음이 올라가지 않아 힘들기는 하지만, 나에게 잘 맞는 저음의 노래를 잘 골라서 부르면 때로는 박수를 받기도 할 정도는 된다.

하지만 나는 음치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 그것도 옆에 누가 있어 노래를 부르면 금세 따라가는데, 혼자서는 아무리 악보를 보아도 음을 낼 줄 모른다. ‘절대음감’이 없는 것이다. 나도 답답하다. 악보를 보고 금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연습을 해보기도 하였다. 피아노를 누르면서 도-, 레-, 미-, 파-를 계속 연습해도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웃기만 한다. 소리는 ‘도’라고 하는데, 내가 내는 음은 도저히 ‘도’라고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정도는 나도 쉽게 할 수 있다. 애국가는 물론이고, ‘오 필승 꼬레아’ 나 상당히 유명한 가요정도는 나도 곧잘 부른다. 그래서 아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의 이 오래된 고민을 모른다. 생활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음을 제대로 내고, 악보를 읽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운동은 물론,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하고 악기 하나 변변히 다룰 줄도 모르는데, 하다못해 악보라도 제대로 볼줄 알고 좋아하는 노래라도 제대로 불러보고 싶은 것이 내 숨은 욕심이다. 요즘 세상에 음악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악보를 보느냐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 그래서 요즘은 악보를 읽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덜하다.

하지만 내 학창시절에는 친구들이 노래책과 기타를 들고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학교 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잔디밭 중 한 두 군데는 반드시 기타를 가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만 보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지만,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서로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작은 키에 바짝 마른 몸매였지만, 항상 눈만은 반짝반짝 살아있었다. 고시준비를 하던 그 친구는 도서관 주변을 그저 얼쩡거리기만 하던 나와는 달리 모범생이었다. 발랄한 성격에다 피아노까지 상당히 잘 쳤다. 왠지 그에게 호감이 갔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냐?”
“집안에 누나들이 많다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어”
“누나들이 많으면 그냥 피아노가 쳐지냐?”
“응!”

이런 식이니 나로서는 얄미울 만도 했는데, 그가 가진 놀라울만한 친화력이 내가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내 주위에는 미술학도, 소설가 지망생, 연극배우 지망생, 종교서클 친구 등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진지했고 세상을 약간 어둡게 바라보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런 내 울타리 안에 갑자기 별종이 하나 뛰어 들어온 것이다.

“너는 음악이 쉽냐?”
“음악은 너무 쉬워. 그건 사람이 숨쉬는 게 어렵지 않은 것과 같은 거야!”
“그렇게 쉬운 거리면, 나한테 ‘음’ 좀 가르쳐 주라”
“응”

그렇게 나의 음악수업은 시작되었다. 음악관의 빈 연습실 피아노 앞에서 혹은 교정의 벤치에 않아서, 그는 고시생의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나에게 음악수업을 시켰다.. 물론 무료였다.

“도-”
“도오-”
“레-”
“레에-”

처음엔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던 그도 결국엔 두 손 두발을 다 들고 말았다.

“넌 노래는 잘 부르는데, 왜 그렇게 음을 잡지를 못하냐”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난 안 된다고 했잖아”
“야. 그러고도 어떻게 교회 성가대를 몇 년씩이나 하냐?”
“그거야 몇 번 불러보면 외워지니까, 그냥 외워서 하는 거지!”
“나도 이건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짧은 음악수업은 끝나고 말았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시절 초반까지 계속하던 나의 교회 성가대도 그 즈음에 그만두고 말았다. 나의 대학생활이 한가로이 노래연습을 할 수 없을 만큼 점점 분주해지기도 했지만, 성가대가 요구하는 수준도 악보를 읽지도 못하면서 몇 번의 연습으로 외워서 하기에는 점점 더 높아져 갔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다시 성가대에 않아있다. 물론 아직도 음을 모른다. 그러나 이곳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출석하게 된 조그만 교회의 성가대에선, 고맙게도 나같이 악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노래를 부를 기회를 준 것이었다.

참 오랜만이다. 나는 요즘 성가대에서 나는 어려운 슈베르트나, 르벤슈타인의 성가들을 부르고 있다. 아니 순전히 외우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에겐 일찌감치 내가 악보를 볼 줄 모르는 것을 고백 해 놓았다. 원래 자수하고 나면 광명을 찾는 법이다.

원래 베이스 음색인 나는 요즘 목소리가 제일 큰 파트 장 옆에 나란히 않아서, 그가 잡아주는 음을 따라 나의 기어들어가는 조그만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그렇게 내가 직접 그 주옥같은 명곡들을 부르는 느낌은, 듣기만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의 연속이다. 장로님은 “김 집사님이 들어오시니 베이스 목소리가 훨씬 커져서 좋습니다.”라고 덕담을 하신다.

그래 사람은 이런 식으로도 살아갈 수가 있나보다. 재주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나는 하나씩 젊어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뒤늦게 이루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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