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진공업국을 향하여(33)
[특집] 중진공업국을 향하여(33)
  • 오원철 박사
  • 승인 2007.07.09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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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기계공업의 태동(자동차) - 22

 
   
  ^^^▲ ▲ 일생을 바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우리나라 자동차 공업의 성공요인

필자는 자동차공업의 개척기에 큰 역할을 한 여러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이 글을 다듬었다. 그 분들의 공통된 의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본다.

우선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의거하여, 정부, 기업, 기술자, 기능사 모두 열심히 뛴 결과이다.

1) 1961년부터 69년까지 자동차공업 육성 일원화 정책을 추진했으나, 새나라자동차나, 신진자동차는 국산화에 성의가 없었다(역설적인 이야기가 되지만). 이로 인해서 독점에 대한 반대여론이 들끓었으며, 결국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다.

2) 정부에서는 강력한 부품공업육성 정책을 썼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품에 대해서는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3) 새로 출발한 자동차회사(기아와 현대)는 기존 메이커의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정부의 시책에 순응해서 종합자동차공장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시책에 따라가지 못한 업체는 부품수입의 길이 막히니,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4) 자동차공업 육성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테두리 내에 포함시켜, 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 박 대통령이 80년대 초에 연산 50만대를 생산하며 자동차산업을 수출산업화 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은 시기 적절했다.

5) 소형승용차, 특히 한국 고유모델車를 생산한 것은 제1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석유절약형 소형차가 요청되던 시기였던 만큼 시기 적절했다.

6) 외국회사와 합작하지 않는 정책이 주효했다.

7) 끝으로 자동차공업을 여기까지 발전시키기 위해, 몰아치는 압력을 몸으로 막아야 했던 젊은 공무원들의 희생정신과 정열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은 1976년부터 급격히 늘어가고 수출도 되기 시작했다. <도표 9-26>을 보면 79년까지 급신장한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 초에는 50만대 생산이 가능시 되었다. 그런데 80년에 자동차 업계에 큰 불황이 닥쳐왔다.

자동차공업이 이제 막 정착을 하려는 시점에서 정치적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아직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공업기반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공업의 역사와 현 좌표를 무시한 채 자동차공업 통폐합 조치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성과도 없이 혼란만 야기하게 되었다. 자동차 업계는 이 조치로 4∼5년간 큰 시련을 당해야 했다.

 
   
  ^^^^^^▲ ▲ 일생을 바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 ▲ 일생을 바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5공시대의 자동차 통폐합 조치

1979년 10월 26일 朴 대통령이 서거했다. 다음으로 집권한 전두환 행정부는 정치적 목적에서인가 朴 대통령을 깎아 내리기 시작했는데, 1960∼70년대에 이룩한 경제적 업적마저도 부정적으로 부각시켰다.

그 요지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과잉투자로 우리나라 경제는 멍들었는데 특히 발전설비와 자동차 부문이 이에 해당된다. 이 두 분야는 하루속히 과감하게 통폐합하겠다」라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정치, 학계, 언론계를 총 동원해서 공격케 함으로써 과히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로 조성했다. 그런데 통폐합조치는 실효를 거둘 수 없게되자 결국에 가서는 이를 백지화했다.

그 후 20여년이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통폐합조치가 가(可)하다, 부(否)하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가서 그때의 일들은 기억 속에서 사러져 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당시의 「통폐합 조치」라는 것이 어떠한 것이었으며,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사실 그대로 기록에 남기고자 한다.

후세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땀과 정성으로― 전력 투구해서 이룩한 빛나는 업적이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註: 상세한 내용은 본 홈페이지 『Q/A, "5공에서 실시한 자동차 분야의 통폐합조치란?"』 참조. 「발전설비의 통폐합조치」는 따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대만과 한국 자동차 공업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의 한 단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1970년 후반기 우리나라 자동차를 대만에 수출하기로 계약이 성립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만 정부에서 인가를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동차공업의 출발은 대만이 앞서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한국의 자동차공업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다는 말인가! 국민여론상 수입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국민으로부터 정부가 공격당하기 때문에 수입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대만 관리가 필자를 찾아와서 하는 이야기가 "대만도 처음에는 자동차공업에 일원화 정책을 써 왔소. 그런데 한 회사에게 독점시켜 폭리를 취하게 한다는 언론과 국회의 압력에 못 이겨, 자동차회사를 자유화할 수밖에 없었소. 그 결과 우후죽순격으로 자동차회사가 난립해서, 모두 CKD로 부품을 수입해다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게 되었소. 그것이 대만이 한국에 패배하게 된 원인이오"라고 하며 몹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대만에는 대규모 종합자동차공장이 없다.

대만에는 1995년 현재 11개의 자동차회사가 있다(95년에 12번째 완성차업체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 96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회사 수도 많고, 모델도 많다. 그래서 한 모델로 따지면, 경제단위가 안 된다. 대만 정부도 1985년에 우리나라처럼 소위 "國富自動車計劃"이라는 자동차공업 육성계획을 수립하고 일본의 도요타를 초치해서 국산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패하고 계획 자체가 백지화되고 말았다. 결국 대만은 자동차 수입국이 되었다. 우리나라 자동차도 대만에 많이 수출되고 있다. 1991년 기아는 "프라이드"차를 CKD로 18,618대 수출하여 4,599만 달러의 금액을 벌여들였다. 현대도 완성차 4,333대(3,453만 달러)를 수출하였고, 대우도 1,559대(1,164만 달러)를 수출했다. 1991년에 승용차만 24,610대를 수출해서, 9,215만 달러의 외화 획득을 한 것이다. 기타 차종까지 합치면 9,470만 달러로 약 1억 달러에 가까운 액수가 된다(<도표 9-27> 참조).

(註: 1992년에 대만과는 국교 단절로 대만에 대한 완성차 수출은 일시 중단되었고 기아의 CKD는 수출만 계속되었다. 기아는 1992년에 22,557대, 1993년 31,800대, 1994년 18,100대의 CKD수출을 했다. 기아에서 수출한 CKD는 자동차 한 대당 약 2,500 달러밖에 안 된다. 대만은 부품공업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어떤 외국 사람들은 부품공업(즉 중소기업)은 대만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고 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부품업계도 힘을 더 내서 더 좋은 물건을 더 값싸게 생산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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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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