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당한 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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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당한 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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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는 얼빠진 군주의 보완책이다

^^^▲ 선조대왕태실비^^^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첫줄에서 -

정철(鄭澈 1536-93)은 호가 송강(松江)이다. 위 옛글 가사(歌辭)를 요즘말로 옮겨보자. “이 몸 태어날 때 임 따라 태어났네, 한 평생의 연분이니 하늘조차 모를 일일까. 나 오직 젊고 임 오직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은 어디 견줄 데 없다.” 이 연가(戀歌)에서 송강이 자기의 여성적 정조를 바친 상대방은 16세 연하인 조선 14대 왕 선조(宣祖 1552-1608)이다.

소경정윤 입극성덕 홍열지성 대의격천희운 현문의무 성예달효 대왕(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 선조의 시호(諡號)이다. 아마 그의 장례 때 붙인 칭호였을 것이다. 유교적 가치관에서 무상(無上)의 인간으로 평가되어 있다. 군주에게 바친 신하의 찬사일까? 7차원 정도의 세계에 들어가야 해득될 법한 작품으로써 한 마디로 어마어마하다.

왕의 시호에는 종묘(宗廟)의 위패에 올리는 묘호(廟號)가 따로 있다. 조선의 묘호에는 왕가의 정통을 이은 종(宗), 나라의 패러다임을 바꾼 조(祖), 폐위된 군(君), 세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효의 첫 사용은 신라 22대 지증(智證 재위 500-514) 왕으로,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지철로 마립간이었다. 고려 때 조를 받은 왕은 초대 태조(太祖 877-943) 뿐이다.

오늘날 선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쉽게 말하면, O-X 사이에 스펙트럼이 분포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혁신과 보수 양극 사이에 걸쳐진 다원화 사회의 갈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에서 재미있는 것은 충무공과 충정공에 대한 평가가 선조와 함께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박정희 시대의 통치적 구도에서 지나치게 “이순신 O-X 원균”이란 공식이 잡혔다는 것이다.

근래에 인터넷에 오른 악성 댓글 때문에 유명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서 “진실 댓글 O-X 허위 댓글”이란 공식이 점차 우리사회의 주장(propaganda)으로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을 실명확인하여 악성 댓글을 차단하겠다는 행정규제는 지나친 것이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소프트웨어를 한 차원 높이는 자산임을 간과하는 단견과 비슷하다.

조선왕조의 붕당정치는 O-X 문제인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서기 위한 역사적 필연수순이었다. 말하자면, 붕당의 투쟁은 군주제에서 민주제로 탈바꿈하는 몸부림이다. 그렇다면, 고려왕조에서는 왜 붕당이 없었는가? 그렇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성리학의 흥성으로 신하들의 정치의식이 한껏 계몽되었기 때문이다. 붕당은 여야의 맹아였던 것이다.

한 인물의 옆얼굴을 스케치했거나 간략하게 소개한 난을 프로필(profile)이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할 때 그것은 프로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평가는 부분적인 것이지 O-X 문제가 아니다. 사진작품은 카메라 앵글을 잡기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부분적이고 한 측면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고 한계임을 받아드려야 한다.

선조(재위 1567-1608)는 조선 전기를 마감하고 중기를 연 임금이다. 그는 무엇보다 대군이 아닌 서얼출신에서 옥좌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었다. 또 개조(1392) 이래 득세했던 훈구파가 소멸되고, 과거에서 등용된 사림파가 실세를 이뤘다. 사림파는 처음 숫자가 많았던 동인이 서인을 분위기로 압도했다. 이어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서게 된다.

특별히 선조의 인물 됨됨이는 7년왜란(1592-98) 동안 발가벗겨졌다. 이때 선조의 모습은 제 하나 살 궁리에 급급했다. 왕성을 버린 것은 그렇다 치고 의주에서 강 건너 명나라로 망명까지 간청했다. 이는 전방에서 최선봉에 섰던 지도자 칭기즈칸과 명암이 엇갈린다. 그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돋보였던 충신 이순신, 유성룡, 정철 등에게는 죄를 만들어 그 빛을 지우기 바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하인이 용도가 없으면 주인에게 버림받는다는 고사이다. 송강은 성품이 호방했고, 그 문장이 세차고 막힘없는 물살 같았다. 선조는 그러한 그를 아꼈다. 소모품같이 조직에서 행동대원이 필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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