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무가지가 앙상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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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나무가지가 앙상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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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진정 강인한 계절이다

잎들이 자신의 몸을 노랗게 물들인 후 마침내 오랫동안 머물렀던 제 자리를 떠나는, 그 눈부시게 자유롭고도 슬픈 조락의 시절이 지나고 난 뒤에도 나무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잎이 떠난 나무는 다소 외로워보였다. 그 시절 나무는 진정 그렇게 외로울까?

아니다. 나무는 오히려 그 시절에 가장 강해진다. 자신을 무성하게 뒤덮고 있던 잎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고요와 적막의 시기가 찾아왔을 때, 나무는 제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본다. 조용한 침잠의 시기로 되돌아간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깊고도 깊은 진정한 침묵을 겪으면서 나무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나무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 찬 공기에 노출된 뺨이 마치 불에 타들어가는 듯이 시려오고, 손과 발이 곱아들 만큼 추운 날을 택해 겨울교정을 거닐어 본다. 추운 날을 택해서 하는 이런 산책은, 겨울 속으로의 여행이자 일종의 순례이다. 그래서 유난히 추운 날이면, 나는 텅 빈 교정을 걸으며 겨울의 모습과 차분히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곤 했다. 겨울의 여러 가지 표정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가슴에 새겨두었다.

인적이 끊긴 교정을 걸어본다. 우두커니 서 본다. 길은 텅 비어 있고, 차가운 겨울공기는 내 속으로 스며들어 머리를 정갈하게 씻어준다. 겨울로 씻어낸 눈길로 보면 세상이 명징하게 보였다. 이렇게 고요를 듣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귀 기울여본다.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적막이 들리고, 잘 알지 못하는 외로움이 들렸다. 그리고 여전히 힘차게 뛰고 있는 내 심장의 박동이 들렸다.

그래. 나는 살아있다. 이렇게 확실히 살아있다. 내 걸음, 내 몸짓, 내 표정, 그 모든 것이 이제 진정 나의 것이다. 이 고요가, 이 차가운 추위가, 이토록 절실한 적막이 나에게 나를 더욱 명확하게 만나도록 만들어 준다. 그렇게 차가운 대기 속에 우뚝 서서, 나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곤 했다.

그럴 때. 내 곁엔 나무가 조용히 서 있었다. 인적이 없는 외진 길 한 귀퉁이에 보는 이 없어도 상관치 않고, 뿌리를 든든히 땅에 박고, 바람 찬 세상을 향해 몸을 우뚝 일으켜 세운 나무. 그래서 오직 몸 하나로 겨울의 한기를 맞닥뜨리고 있는 나무. 겨울나무.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그 벗은 몸으로 추위를 음미하며, 겨울의 한가운데 말없이 고요히 서 있는 나무.

나는 그렇게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무성한 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하늘이, 벌거벗은 나무의 가지사이로는 명확하게 드러나 보였다. 마른 가지사이로 구획 지어진 하늘이 주는 그 형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나무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공간을 향해 얼기설기 빈 가지를 뻗어 외로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무는 그렇게 빈 공간을 채우고 나는 나무를 보며 내 가슴을 채웠다.

그랬다. 겨울은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다. 온갖 번잡함을 털어낸 후 비로서 자신을 찾은 시간이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들만이 당당하게 그 눈부신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나는 또 한해의 겨울이 끝날 때까지 진정한 순례자가 된다. 또 다시 봄이 시작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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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운 2003-06-28 14:54:51
김광진 기자님께..

기자편집회의 258번에 쪽지 하나 남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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