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민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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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민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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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끓이면 맛 있는데”.
“그래 아빠가 끓여주라”. 아이들까지 엄마를 거든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드라마 ‘인어아가씨’ 최종분을 보고 있었다.
“저녁에 살찐다”
“그래도 먹어야 된다”.

‘먹자, 안된다’ 옥신각신하다 나는 결국 라면을 끓였다.냉장고에서 깐마늘 두개와 땡초 반개를 물을 담은 냄비에 넣고 가스레인지에 끓이기 시작했다. 딸 아이가 사온 4개의 라면 중 3개만 끓였다.

나는 라면을 끓일 때 졸깃한 면발을 얻기위해 냄비 뚜껑을 닫지 않는다. 밀가루 냄새는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을때 뚜껑을 잠시 닫는 것으로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탁위에 올려진 냄비는 국물 한방울 남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졌다.

“라면 맛 있제 그자”.
“아빠가 끓이면 억수로 맛 있다”.

나는 특별히 라면을 좋아했다. 새벽 무·배추를 마산 공판장에 내다 팔려고 2시간이상 물길을 달려간 어머니가 장배(통통배)를 타고 돌아오실 시간, 어린날 여동생과 나는 마을 선착장에 쪼그리고 앉아 “어떤 선물을 사오실까”기대하며 기다렸다.

라면땅 한 박스? 아니면 뽑기, 붕어빵일까?. 아니다 오빠 혹시 인형아닐까?. 하여튼 어머니가 타고 오실 장배는 우리 남매에게는 보물선이었다.라면이라도 한 박스 사오시면 좋아라 난리가 났었다. 라면이 귀할 때였으니 동생과 나에게 라면은 일용할 양식 중 으뜸이었다. 가장 라면을 많이 먹을때는 한꺼번에 일곱개까지 끓여 먹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라면 가운데 한 봉지가 대학시절 내 생애 결정적인 훈수까지 두어주었다. 나는 식당에서 아침과 저녁밥을 식권으로 해결했다. 용돈이 부족할때면 아침은 건너뛰기로 하고 식권을 반으로 줄였다. 친구들을 좋아하다보니 그 식권도 일주일이 못가 동날 때가 많았다. 친구들에게 “밥 굶는다”해도 농담쯤으로 들으니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부족한 양식은 자연히 미리 사둔 라면 한 박스가 대신했다.

어느날인가 친구들이 자취방을 습격했다. 한 친구가 “야 먹을것 좀 없나 배도 고픈데”하더니 간이 옷장 밑에 소중하게 모셔두고 있는 라면박스를 발견했다. 그때 박스안에는 두개의 라면이 남아 있었다. 친구는 그 중 한개를 해 치우기 시작했다.

“친구야 그거 내 일주일 양식이다”라는 말이 목구멍에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친구에게 과자 한봉지 내어 줄 수 없는 처지에 라면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한개는 아직 남았는데’하며 자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이게 아니올시다’였다. 그 친구가 팔을 뻗어 마지막 남은 라면을 집어들었을 순간 나는 거의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야 임마 그거 내 일주일 양식이다”하며 빼았으려 했지만 순간 그 친구는 가볍게 팔을 들며 피하는 듯 하더니 야속하게도 양 손바닥으로 봉지까지 터트리고 말았다. 그 허망함이란.

그 친구는 개선장군 처럼 마지막 나의 일용할 양식을 해 치우며 이렇게 말했다. “친구야 민생고에 처하다보니 친구쯤은 안중에도 없제. 그래 민생고가 사람을 한 순간에 이리 망치는기라” 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과탄과 지랄탄이 대학가를 어지럽힐 그때 그 친구는 라면한봉지로 나에게 귀중한 교훈을 선물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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