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텃밭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텃밭 가꾸기가 유일한 낙이라도 되듯 정성을 쏟았던 적이 있습니다. 다 자란 배추를 보며 농심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도 있었습니다. 제게는 한 포기 한 포기가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얼굴을 들이대고 배추 속을 관찰하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때의 신기함이란 아마도 산고를 이겨내고 침대 머리맡에 아기와 함께 누워 있던 아내의 마음과 엇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저는 배추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이런 자그마한 소출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어디서든 배추가 보이면 발걸음이 절로 멈춰지곤 합니다. 나름대로의 식견을 갖추어 배추장사들의 속내를 읽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습니다.
^^^ⓒ 김유원 기자^^^ | ||
어느 지하철역 계단에서 배추를 파시는 두 아주머니가 제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펼쳐진 배추들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가 저 배추의 주인을 자처할까?"싶어 안타까움마저 들었습니다.
몇 분이 지나도 기웃대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제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계속 배추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시들어가는 마른 잎사귀들의 길이가 점점 줄어들지 않기를,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아주머니들의 주름이 더 이상 깊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하철 계단을 올랐습니다.
한낮 지하철 안은 서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좀체 자리를 잡고 앉지 않는 편인데 빈 자리가 너무 많아 그만 앉았습니다. 맞은편 승객과의 어색한 시선을 감수하고 말입니다.
조금 뒤에 "양해의 말씀..."하는 소리가 시선 처리를 도와주었습니다. 이번 아이템은 부채입니다. 아무도 사지 않자 다음 칸으로 사라졌습니다. 잠시 뒤 젊은 지체 장애인이 등장했습니다. 코팅 처리된 자기소개서를 승객들에게 돌립니다.
무릎 위에 얹혀진 그의 소개서엔 '희망'이란 글자가 보입니다. 그는 손을 내밀며 승객들에게 껌을 돌렸습니다. 저는 잠시 갈등했습니다. '껌과 1000원짜리 지폐를 교환할 것인가, 껌은 돌려주고 지폐만 줄 것인가?' 저는 그의 자존심을 생각해 껌을 받고 1000원을 내밀었습니다.
뜨거운 햇빛을 이고 배추를 파시는 아주머니에게, 무거운 짐짝을 객차마다 끌고 다니는 상인에게, 매일 값싼 동정을 이끌어내는 장애인에게 그들이 말하는 '희망'은 언제나 올까요?
희망은 여기 그림처럼 '구르지 않는 공'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도 나도 살아 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 미동(微動)조차 보이지 않는 공 말입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정문에 설치된 작품 '각축(角逐)' ⓒ 김유원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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