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진공업국을 향하여(30)
[특집]중진공업국을 향하여(30)
  • 오원철 박사
  • 승인 2007.06.07 12: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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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기계공업의 태동(자동차) - 19

 
   
  ^^^▲ 일생을 바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자동차 공업에 대한 대통령 지시각서

그래서 대통령 지시각서의 기안을 시켰다. 필자는 김정렴 실장에게 상공부 보고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대통령 지시각서가 필요하다고 건의를 했다.

김 실장은 "잘해보소"하며 지시 각서 안에다 서명을 해주었다."잘해보소"는 김 실장 특유의 어휘로서 "소신대로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뜻이다.

필자는 대통령에게 상공부 안에 대해 브리핑했다. 그리고는 자동차 4社의 동태를 설명하고, "각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시각서를 기안해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상신했다. 대통령은 "그래" 하고 크게 서명을 했다. 그리고 상공부에서 올라온 병풍에까지 사인을 했다. 강력한 의지가 담긴 힘찬 사인이었다. 지시각서의 형식은 "○○할 것"으로 명령조이다.

대통령 지시각서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의 관심사라는 것이고,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겠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자동차공업 육성은 상공부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직접 다루겠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상공부는 자동차공업 육성정책을 수립할 때는 경제각의를 통과하고 난 후, 총리 재가를 받아 가지고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추진사항도 그때그때 보고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의 지시각서까지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완전 국산화를 이룩하자"고 서로 다짐을 했다. 나 자신도 이제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결심을 했다.

상공부는 대통령 지시각서에 의해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을 각 자동차 업체가 제출한 계획에 맞추어 다듬었다. 1974년 1월에 최종안이 작성되었고, 그 해 5월 7일에 확정되었다. 이로써 세제혜택 등 정부지원책도 완비하게 되었다.

기아의 가솔린 엔진 생산 : 차량 제작 허가 취득

기아는 1973년 7월 4일, 2,000cc 가솔린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공장을 준공한지 한 달만에 거둔 성과였다. 비로소 현대식 공법에 의해 대량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완전국산화의 관문을 여는 제1보였다.

자동차 회사들이 한사코 국산화를 거부하던 우리나라 자동차회사의 과거 실태를 회상한다면, 기아에서 엔진을 국산화한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사에 길이 남을 공임을 인정해야 한다. 박 대통령을 위시한, 자동차 행정에 종사했던 공무원의 자동차 국산화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모두 "책임을 완수해 감사하다"는 심정뿐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가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이들 행정가의 공을 길이 기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아는 그 해 12월 1,000c 가솔린 엔진 생산도 시작했다. "브리사"용 엔진이다. 1974년 상반기에 소형 승용차 생산을 위한 제반준비가 완료되자 정부로부터 승용차 제작 승인을 받았다.
 

 
   
  ^^^▲ 저자주^^^  
 

국산차 브리사의 탄생

같은 해(1974년) 10월에 드디어 국산엔진을 부착한 자동차 "브리사(S-1000)"가 탄생했다. 74년에 617대를 생산, 22대를 판매하였고, 다음해인 1975년에는 국산화율이 80% 이상으로 향상되면서 생산대수가 1만 202대, 판매 대수가 1만757대로 폭발적인 신장을 보여 "브리사 시대"를 열었다. 1983년까지 모두 3만 1,017대를 생산, 내수판매 2만 9,432대, 수출 1,526대의 영업실적을 올렸다.

1976년 말 당시 서울시내에 운행되던 택시의 총수는 1만 1,930대로 집계되었는데, 이 가운데 "브리사"가 6,090대로 51.2%를 차지하였으며, "코티나"가 2,602대로 21.8%, "시보레"가 1,583대로 13.3%, "포니"가 991대로 8.3%, "코로나"가 570대로 4.7%, "피아트"가 67대로 0.5%를 각각 차지하였다(『起亞 50年史』pp.209∼216 참조).

기아의 운도 좋았다. 1973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 석유 값이 몇 배나 뛰는 바람에 엔진 크기가 1,000cc인 브리사가 휘발유 소비가 적게 들어 그 덕을 톡톡히 보았기 때문이다. 기아가 공장 건설을 시작할 당시 ㎘ 당 116.94 달러 하던 휘발유 값이 1974년에는 355.4 달러로 뛰어 304%로 폭등한 것이다. 자동차세(稅)도 1,000cc가 못되는 "브리사"는 240 달러인데 비하여, 1,300cc짜리 차종은 432달러로, 1.8배나 비쌌다(註: 자료에 달러로 표시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한다). 정부의 시책은 1,000cc 이하의 소형차를 권장할 때여서 1,000cc가 넘는 차종은 세금이 크게 비쌌던 것이다.

국산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를 "국산차"라고 규정한다면, 혁명 후 최초의 국산자동차라는 명예는 기아에서 나온 "브리사"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유의 종합자동차공장이라는 영예도 기아의 것이다.

현대의 공장 건설 방침과 한국형 국민차 개발 구상

서는 정주영 회장 진두지휘 하에 자동차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기본방침은 다음과 같았다.유모델의 승용차를 개발, 수출주력 상품화한다. ② 외국기업과의 자본제휴는 하지 않는다. ③ 종합 자동차공장을 건설하되, 새로운 승용차는 완전 국산화한다. ④ 규모를 국제경쟁력이 가능한 규모로 한다 등이었다. 정부의 방침이고 정주영 회장의 결단이었다. 우선 자동차 종합공장을 먼저 건설하기 시작한 기아의 신축공장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기아보다 더 큰 공장 건설에 정열을 쏟았고 특히 자동차 모델은 정부의 안대로 "한국형 국민차"로 설계하기로 했다. 현대에서 만들겠다는 국민차는 우리나라 초유의 국민차이다. 우리나라가 생겨난 후 처음 한국형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로는 우리나라가 중진국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나 업계 모두 온힘을 기울였고, 일이 진척되어 감에 따라 국민의 호응도도 높아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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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욱 2007-06-18 22:46:31
참으로 그때가 그립군 그리워 당시는 영심히하면 무엇이고 잘 되었지 나는 월급 몇푼 안되는것으로 열심히 일하니까 1년6개월만에 집을 사게됐어 물론 주택은행에서 융자받고 참으로 좋은세상이었지 아그립군 그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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