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의를 믿는다
나는 정의를 믿는다
  • 박계형(소설가)
  • 승인 2020.02.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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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형(朴啓馨, Anastasia)
박계형(朴啓馨, Anastasia)

몇 해 전인가, ‘생존자(survivor)’란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어떤 유태인 생존자의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자서전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히틀러 치하의 나치들이 유럽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태인들을 모아다가 독 가스실에 집어넣거나 불 화덕에 집어넣어 질식시켜 죽이거나 태워 죽인 악명 높은 수용소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직접 현장에 가담했던 목격자로서 죽음을 눈앞에 둔 유태인들의 모습이 어떠했던가를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곳에 도착해 자신들의 참혹한 종말을 알게 된 유태인들의 도덕적 타락과 광태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곧 불 화덕에 넣어져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들은 극도의 절망감과 공포에 못 이겨 평소 때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짐승처럼 되어버리고 말더라는 것이다. 신(神)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하고나 간음하고, 욕질하고 뺏어먹고 때리고 싸우는 등 당시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그들의 절망적인 몸짓들로 인해 완전히 암흑의 무법천지 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희한하게 일부의 사람들만은 그 대다수의 몰락한 사람들과 합하지 않고, 끝까지 인간답게 남으려는 최후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신(神)을 경배하고, 당장 내일 불 속에 들어가 타버릴 몸인데도 의복을 단정히 하고 법과 예를 지키며 존절하게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더라는 얘기였다. 

놀라운 일은 그런 사람들에게만은 죽음의 길이 모면되고, 기적적으로 삶의 기회가 주어지더라는 것이 이 생존자의 목격담이었다. 어떤 뜻밖의 공교로운 일이 생겨 그들을 기어코 그 비운의 운명으로부터 건져내고 말더라는 것이었다. 

그 무서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세상사에 엄존하는 어떤 정의의 법과 질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왜 그 유태인들이 그렇게 무서운 일을 당해야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그렇게 한 전쟁광에 의해 무참히 떼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우리들 눈엔 일견 부조리한 일로 보이고 억울하게 느껴지지만 그 역시 세상을 다스리는 엄준한 정의의 질서가 만든 일환일 것이다. 

세상만사가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일 역시 반드시 어떤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유태인들이 그런 참형을 당한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에 대한 벌이다라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믿고 있다. 아무 죄도 없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그렇게 극형에 처해 잔인하게 죽였으니 그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비록 죄 없는 자라하여도 아주 죄가 없는 자가 있을 수 없으나, 하느님과 똑같은 신성(神性)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는 죄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함은 하느님과 똑같으신 하느님이시란 의미인데 하느님께 어떻게 죄가 해당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느님과 죄는 서로 상극된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 안에 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께 반대되는 것을 죄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하느님께서 죄를 지으실 수가 있단 말인가? 

절대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적신으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면서, 그들은 여기에 대한 벌을 자신들과 자신들의 후손들이 받겠노라고 당당하게 외쳤었다. 그 모습이 성서 안에 담겨져 있다. 히틀러에게 죽임을 당한 유태인들이 바로 그들의 후손인 것이다. 유태인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되는 것도 벌 받을 일들 중의 하나라고 알려주셨다. 만물 안엔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가 주어져 있고 만물이 그 질서 안에 머물러야 함이 도리요, 선한 일인데, 이를 어기는 일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거룩하고 선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이 짐승처럼 되어버린다면 이는 탈법자요 무법자로서 정의에 의한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을 때에도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면 잡아먹지 않는다는 옛말도 있다. 호랑이 눈에 사람이 개나 다른 짐승으로 보이기 때문에 잡아먹는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사람이 지어낸 얘기지만, 이 말 안에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있다.

사실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자연계 안의 질서 상 대단한 위배다.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오죽 볼품없이 타락해 버렸으면 짐승이 제 먹이로까지 삼고자 하겠는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본연의 제 모습을 지킬 수만 있었다면 짐승이 그 위엄에 눌려 감히 그런 짓을 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성인(St. Franscisco)같은 이는 모든 동물들을 자신의 뜻대로 완전히 압복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인간이 자신의 자리를 떠나 타락하면 결국은 무력해지고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리고 만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절대로 타락하거나 부패하지 말아야 한다. 

살다보면 우리생활 안에서도 우리는 ‘세상만사 안엔 정의의 법이 빈틈없이 배어 있구나’ 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소스라쳐질 때를 종종 만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선한 의도로 뿌린 일과 악한 마음으로 행한 일이 시간이 흐른 뒤 확연히 다른 결과로 나에게 되돌아옴을 목격하고 놀라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정의(正義)의 법과 질서가 엄존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인간에게 왜 그렇게 많은 불행과 비참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비극도 결국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 정의가 가하는 응징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거짓 정의에 속아왔기 때문에 자칫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게 돼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정의란 곧 벌과 심판을 전제하는 말이기 때문에 부족한 우리들로서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기피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으면서도, 정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는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사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정의다. 정의는 옳은 자를 반드시 일으켜주고, 억울한 자의 눈물을 씻어주며, 흉악한 자들에게 죽음과 패배와 멸망을 안겨주고, 힘써 일한 자들에게 제 정당한 몫을 돌려주며, 더 크고 높은 자들에게 더 작고 낮은 자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의 지팡이를 쥐어준다.

정의는 결코 열심히 일한 자와 일하지 않은 자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아니하며, 남의 소유를 함부로 탈취하라 가르치지 아니하고, 또한 정의는 결코 아랫사람을 세워서 윗사람을 치라고 하여 세상을 뒤집지 아니한다.

정의가 하는 좋은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만일 세상을 지배하는 정의가 없다면 세상은 끝없는 암흑의 무법천지만이 계속 되어갈 것이다. 악한 자들은 벌을 받지 않은 채 계속 악행을 계속해 나가며 흥할 것이고, 선하고 약한 자들은 끝없이 그들에게 눌리고 죽임을 당하며 고통만 받게 될 것이다. 아무도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실존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도 정의의 엄존을 통해서다. 우리가 세상에서 정의의 이루어짐을 볼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악인이 악행을 계속하면서 승승장구 잘되는 것을 보게되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소리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저런 놈들이 저렇게 계속 잘되는데···'라고 하는 말이다.  

지금 이 시대에 만연된 불의와 도덕적 타락은 스스로 정의에 의한 징벌의 불을 불러 내리고 있는 겻이다. 여간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이 시대에 만연된 죄악에의 불감증에 누구나가 감염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미친 짓을 하니까 미친 짓도 미친 짓으로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면 자기도 그들처럼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은 줄로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죄라고 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면 죄가 안 되는 줄로 알고 죄의식도 별로 느끼질 않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두 사람이 잘못할 때엔 하느님의 진노가 그다지 크게 않으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땐, 그만큼 하느님의 진노가 크게 폭발하신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으므로, 능히 신(神)의 마음을 가늠해 볼 수가 있다. 한 두 사람이 우리를 괴롭힐 때에도 우리의 마음이 분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게 되면 더 화가 나고 더 견딜 수 없어지고 만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노아의 홍수가 바로 그 증표다. 

지금의 죄악은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나, 노아의 홍수 때보다도 훨씬 더 능가한다라고 알려지고 있다. 정의의 속성상 이 패악한 시대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 불가피하다고 느낀다'. 

온 세계가 지금 온갖 재해와 재난과 우환과 기이한 일들로 들끓고 있다. 얼마 전엔 방사능 누출로 오염된 야채 과일 등을 TV에 나와 맛있게 먹어 보이며 국민들을 안위시키던 일본 연예인 체육인들이 그 후 몇 년 안에 온갖 암에 걸려 너무나도 비참하게 되어 있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보았다. 

우리들의 식탁은 과연 안전한지. 중국에서 시작된 신형독감이 급속도로 번지며 사람을 죽여가고 있는데도 고쳐줄 약이 없단다. 걸리면 고스라니 죽어갈 수밖에 없다. 살아난다면 요행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정도 대단히 심각하다. 적과 아군을 분별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의 상태다. 대통령으로 앉아있는 사람과 그 일당들이 대한민국편이 아니고 적의 편이라고 알리는 국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메우며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게 도대체 웬일이란 말인가, 딛고 있는 땅이 갈라지듯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폭로되는 저들의 죄악상과 패륜이 너무나 도가 지나쳐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도덕적 부패가 만연되면 결국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배워왔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내일 당장 우리들에게도 불화덕의 운명이 닥칠 수도 있다. 내일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 우리는 지금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의를 믿는다. 내 머리위의 저 푸른 하늘보다도 나는 더욱 정의를 믿는다. 비록 저 푸른 하늘은 사라질지라도 정의는 결코 사라지질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정의는 옳은 자를 악인들과 함께 죽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노아 때에도 노아 가족만은 살려주셨고 소돔과 고모라 때에도 롯의 가족만은 피하게 하여주셨다. 

이런 때에라도 우리가 만일 아우슈비츠의 최후의 생존자들처럼 신을 섬기고 이 시대의 대다수의 타락한 무리들과 합하지 않고, 최후까지 인간답게 남으려는 노력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겐 다른 운명이 주어지리라 믿는다. 

이 죄 많은 시대가 자초하고 있는 무서운 징벌의 길에서 반드시 피해 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선택해야하는 것이다. 

생존자의 길로 갈 것인가, 가스실로 갈 것인가,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우리의 길은 정해질 것이다.


박 계 형(朴啓馨, Anastasia) 

1943년 서울에서 출생
1961년 수도여고 졸업
1965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3년 동양방송(현 KBS 2 전신)개국(開局) 현상문예소설 50만원 당선작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어떤 신부(神父)]
1999년 조선일보 선정 [한국을 이끈 50인]의 한사람으로 뽑힘
2002년 [자랑스러운 고려대인(高麗大人)상] 수상  
현재   연변과학기술대학교 겸임(兼任)교수 
         성 어거스틴 회(St. Augustine Society) 대표

주요저서:
<Colors of Life, Deathbed. Page Publishing, New York, USA, 2015>  
<A Life(임종의 영문판), Troubador 출판사 출간, 영국, 2007>
<留すりたかった瞬間の數數(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의 일어판), 新宿書房 출간, 2005>
<정(情)이 가는 발자국 소리>, <해가지지 않는 땅>, <사랑의 샘> 
<자유를 향하여 날으는 새>,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어느 투명한 날의 풍경화>, <회귀(回歸)>, <환희, 구(舊)임종(臨終) 1,2>
<朴啓馨 全集> 외 약 6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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