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53주년에 ‘미아리고개’에서 평화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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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53주년에 ‘미아리고개’에서 평화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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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에서 역사를 배운다

그대 ‘미아리고개’에 가보았는가? 북쪽으로 난 그 침울한 고갯길. 53년 전 6월 27일 쯤에 북한군은 북에서 남쪽으로 향했으니 미아사거리에서 돈암동 향해 중앙청을 목표로 진격해갔을 것이다. 나는 반대로 6. 25가 일어난 날 돈암동에서 미아리 일대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다시 돈암동 성신여대입구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어제는 하루를 보냈다.

지방 산골에서 고교까지 마친 나에게도 미아리고개의 첫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15년 전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그 고개를 차를 타고 넘는데도 버스는 힘겨워했다. 미아리 삼양동 달동네에서 미아6동에서 산 것도 2년은 된다. 그곳을 지나치는 것이 인연이라면 그 고개와 맺은 인연은 남다르다. 기천 번은 넘었으니 말이다.

돈암동에서 술 먹은 거며, 길음동에서 사회 첫 발을 내디딘 거며, 미아리텍사스 골목 안 포장마차에서 굴을 훔쳐먹은 전과도 있는 사람이다. 대학 때 개운산을 넘어 미팅하러 나가다보면 보이는 게 그 고개요, 노동자대회 때마다 학교로 진입하려고 산을 넘던 기억까지 있으니 미아리와 미아리 고개는 꽤 친근하고 익숙한 고개다.

 
   
  ▲ 미아리고개에 있는 <소극장 아리랑 아트홀> 입구와 성곽
ⓒ 김규환
 
 

21세기인 지금 아직 서울 지명 중에 마을을 뜻하는 리(里)를 쓰는 곳이 더러 있다. 서울 동북부 지역에 유달리 지명에 마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 일대가 예전 도성(都城) 외곽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面)에 속했던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해방과 6.25 전쟁 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았던 서민들의 정착촌이었기 때문이리라.

대표적인 곳으로 청량리가 있고 화양리, 답십리, 망우리, 왕십리, 수유리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미아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아리는 미아1동에서 미아9동까지와 수유동에서 시작하여 번동, 월곡동, 돈암동, 길음동, 정릉동 일대를 가리키는 대단히 광활한 지역으로 강북구(區)의 절반 이상과 성북구(區)의 꽤 많은 부분을 통칭한다.

 
   
  ▲ 울고 넘던 고개에 붉은 꽃은 그날의 피를 말하는 건지...
ⓒ 김규환
 
 

오랑캐꽃 제비꽃이 보랏빛을 띠던 이른 봄 되놈 뙤놈들은 병자호란 때 ‘무너미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진격했다. 기마대가 1차 관문인 무너미고개(水踰里) 물만 건너면 코앞이 지금의 서울이다. 십여 리(里)를 더 달려 정릉천을 간단히 넘고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그곳이 지금의 미아리고개로 불리는 되넘이고개(돈암동 고개 敦巖峴)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간신히 올라 북한산 아래 집에 올라 화려한 서울 야경을 한숨 푹 쉬면서 볼 수 있는 곳, 공동화장실에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 한여름엔 파리들의 고향, 못사는 동네, 왠지 음침할 것 같은 지역, 산동네, 달동네 1번지로 그려지는 미아리. 삼양동(洞)은 미아1동이다. 이 일대에 한 때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기도 했다.
 

 
   
  ▲ 뉴타운이 들어서는 길음동 일대. 시내에서 외곽 방향으로 고개를 넘자 마자 좌측은 길음동이다.
ⓒ 김규환
 
 

6.25 발발 53주년을 맞아 하루를 꼬박 보냈던 미아리는 이제 사정이 다르다. 개발열풍의 한가운데에 있다. 솔샘길을 넘어 길음동, 정릉동 일대에서 미아리 고개 바로 턱 밑 옛 서라벌고등학교까지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건물마다 1층에는 복덕방 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 투기자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엔 흘러간 ‘전당포(典當鋪)’가 남아 있어 20세기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24시간 출입금지 구역인 ‘미아리텍사스’가 있는 곳도 미아리다. ‘집단점성가촌’도 미아리 고개 아래 성신여대입구역 좌측에 줄지어 있다. 그 고개가 지금은 왕복 8차선의 대로(大路)로 확장되었으니 그렇지 사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마저 기어오르기 힘든 험난한 고개 중 하나다.

신의주로 가는 서쪽 길목에 무악재(毋岳-) 근처엔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慕華館)이 있어 통상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의 교역과 왕래가 끊이지 않았던 반면 이곳 미아리 고개는 외세 침략전쟁의 주요한 길목이었다.

멀리 고려시대 몽골족(蒙古族)이 내려왔을 터고 병자호란 때 오랑캐인 청나라의 되놈이 이 길을 거쳐 넘어와 한성(漢城) 사대문(四大門)을 함락시키는 적유령(狄踰嶺)에서 비롯되어 수난의 역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모의 고개다.
 

 
   
  ▲ 내부순환로가 보이고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방향에 고개가 있다. 이 아래 흐르던 정릉천은 88년 까지는 복개가 되지 않아서 지나다니는데도 즐거웠었는데...
ⓒ 김규환
 
 

해방 후 걷힐 것 같은 안개는 남과 북이 철천지원수가 되어 벌이는 한국전쟁 6.25 때로 이어진다. 용산(龍山)이 몽고족 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이래 일제 강점기에도 그러했고 현재 주한미군(駐韓美軍)의 군사기지가 된 유래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6.25가 발발하자 파죽지세로 3일만에 서울 진격에 성공한 북한군이 넘은 고개가 여기 미아리 고개다. 중부지방과 남부지방 대부분을 내주고 낙동강에 전선을 형성하던 유엔군은 71살 퇴역 노병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그 해 9월 28일 수도서울을 회복한다.

주먹밥에 강냉이죽, 개떡과 꿀꿀이죽이라도 먹을 수 있던 부산에 모인 사람들, 농사지은 것으로 풀 죽이라도 쒀 먹었던 농촌지역 사람들은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강철교 폭파로 발이 꽁꽁 묶여 피난을 떠날 수 없었던 대부분의 한강 이북 사람들은 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영등포(永登浦) 동(東)쪽 영동(永東)인 강남, 서초 지역이 70년대 개발이 되었으니 당시는 서울 사람 60% 이상은 한강 이북에 몰려 살았다.
 

 
   
  ▲ 미아리 텍사스 내부 한 골목. 퇴락한 것인지 손님이 덜하답니다. 김강자 서장있을 때는 파리가 날렸다는 군요. 낮에 가서 아직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 김규환
 
 

서울을 빼앗기고 평양행을 서둘렀던 북한군은 자발적이든 강제든 간에 남쪽의 수많은 인사와 함께 퇴각을 하게되는데 그 퇴로도 바로 이 고개다. 북서쪽 아리랑고개를 끼고 암석에서 모래로 풍화되어 가는 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그 좁다란 길이 단장(斷腸)의 고개가 되어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붉은 피를 수 없이 쏟아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한 아낙의 처절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단장(斷腸)이란 창자가 끊어지는 것을 말하니 이 얼마나 애답고 처절한가?
 

 
   
  ▲ 이런 건물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곳곳에 들어서 있는 부동산 이라는 간판은 이제 이곳이 변모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신안아파트 까지 걸어 올라가는 그 길은 참 멀었다. 삼양
ⓒ 김규환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편(黜免篇)에 단장(斷腸)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촉(蜀)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가던 중 양쯔강 중류 협곡인 삼협(三峽)을 지나게 되었다. 이곳은 쓰촨(泗川省)과 후베이(湖北省)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중국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공사가 끝나 현재 물을 가두기 시작한 ‘삼협댐’ 부근을 지나면서 한 병사가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런데 그 원숭이 어미가 환온이 탄 배를 좇아 백여 리를 뒤따라오며 구슬피 울었다. 그러다가 배가 강어귀가 좁아지는 곳에 이를 즈음 그 원숭이는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원숭이는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애를 태우며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배에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다.

배에 있던 병사들이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창자를 끊은 것이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은 새끼원숭이를 풀어주고 그 원숭이를 잡아왔던 병사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버렸다.

이렇듯 단장(斷腸)은 부모 자식간이든 연인간이든 친구간이든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슬픈 이별의 아픔을 나타낸다. 창자인 ‘애’가 녹아 끊어지는 절박한 마음을 누가 알리요. 여기에 작곡가 이재호(이삼동 1914~60,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불효자는 웁니다' 같은 노래도 작곡)의 영향도 크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지어 전후 이산의 슬픔을 노래했으니 말이다.
 

 
   
  ▲ 96년 공사를 마치고 세웠던 <미아리고개 유래> 사적비
ⓒ 김규환
 
 

<단장의 미아리 고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많은 미아리 고개

 
   
  ▲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돈암역) 지근거리에 60년대 모여들기 시작한 집단점성가촌. 미아리고개에서 시내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면 즐비하다.
ⓒ 김규환
 
 

미아리 고개는 한국 현대사를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다. 6. 15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며 북한의 핵 문제로 이념갈등이 재연될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

허나 어쩌랴? 이미 전쟁을 겪은 지 53년이 흘렀고 정전협정을 맺은 지도 50년이 지났다. 과거를 온전히 다 끌어안고 갈 수도 없거니와 미래에 대한 진일보한 비약을 서둘러야 하는 시점이다. 세계적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역사의 한 페이지에 고스란히 고이 보존하고 재발하지 않을 장치를 마련하고 앞으로 달려나가야 한다.

허구헌날 ‘상기하자~’라든가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하며 되 뇌인들 상처 치유는커녕 앞으로 나가는데 장애만 될 뿐이다. 너무나 그 멍에가 크므로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에도 벅차다. 하지만 그 망령되이 떠오르는 유물의 실체를 명확히 규정하는데 나서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북 모두 이 고개가 아픔이었고 잊고 싶은 뼈아픈 기억이겠지만 이제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물꼬를 터야 할 때다. 언제까지 미룰 문제는 아니잖는가?
 

 
   
  ▲ 미아리 고개 바로 앞 <국가유공자의 집>에는 늘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규환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남북관계가 그렇고 초강대국 미국의 광란이 그렇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은 1주일이 멀다하고 좌우로 나뉘어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만 통일의 한 당사자에게 처단(處斷) 운운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나와 우리 가족,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 풍전등화(風前燈火)이거늘 어느 한 집단이라도 진중한 모습을 보여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엄중한 시국에 때려잡자는 식의 주장은 또 한 번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는 우를 범할 지도 모른다. 강대국에 날몸으로 내버려진 우리의 처지를 곰곰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지 않은가?

미아리 고개를 내려오며 전후 세대인 나의 나약함에 술 한 잔 하지 않고는 차마 돌아오지 못하겠더라.
 

 
   
  ▲ 미아리 고개 소공원에 피기 시작하는 무궁화. 북한 꽃은 함박꽃이라 불리는 산목련 목란(木蘭)이라는 꽃이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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