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진공업국을 향하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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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중진공업국을 향하여(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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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기계공업의 태동(자동차) - 17

 
   
  ^^^▲ 일생을 받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기아산업의 자동차 공장 건설 계획

다음에는 기아 이야기로 옮겨간다. 필자가 차관보로 부임하고 난 직후, 기아의 김명기(金命錡) 상무가 취임인사차 찾아와 "이제야 우리나라 자동차공업도 한몫 보게 되었다"고 나를 추켜세우더니, "기아도 바퀴 하나를 더 달아 자동차공업을 하게 해주시오"라고 부탁했다.

필자는 즉시 "좋은 안을 가르쳐주겠소, 기아에서 엔진과 차체를 국산화한다면, 누가 자동차를 못 만들게 막을 수 있겠소. 그러니 실력으로 쟁취하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1970년 말 김명기 상무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좀 흥분된 어조로, "진짜! 자동차공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진짜"라고 강조하던 억양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날짜는 기억되지 않으나, 그날따라 나의 軍시절의 대선배가 와서 "자동차 국산화는 꿈 같은 소리이니 아예 할 생각 마시오" 하고 충고도 아니고 핀잔도 아닌 말을 하고 난 바로 직후였기 때문에 더욱 잘 기억할 수 있다.

김명기 상무는 시흥에 대지 20만평, 건평 1만 6천평의 대공장을 짓겠다고 했다. 자동차 제조에 관계되는 일관공장, 즉 "엔진공장, 주물공장, 기계가공공장, 금형공장, 프레스공장, 차체공장, 차축공장, 도장공장, 자동차조립공장 등을 모두 갖추겠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안이었다.

이 공장이 완성되면 자동차를 완전 국산화할 수 있고 제1단계로 연간 2만 5천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철호(金喆浩) 사장의 필생의 사업이라고 했다(註: 당시 김철호 사장은 만 65세로 몸이 불편했는데도 이런 대규모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자동차 국산화사업은 그의 신념이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 공장은 1970년 11월 10일에 우리나라에서 종합자동차공장 제1호로 착공되었다. 이 사실은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다른 자동차회사에도 "이제는 SKD나 CKD로 자동차를 조립하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똑똑히 실감시켜준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자동차회사도 뒤질세라 뛰기 시작하여 우리나라 자동차공업도 급신장하게 되었다.

자동차공업 육성의 제4막은 자동차공업을 수출산업으로 일대 전환을 하는 시대이다. 부품 국산화를 강력히 실시하고 종합자동차공장을 건설하며 한국형 고유모델 승용차를 양산하는 등, 자동차공업을 국제수준까지 끌어올려 자동차를 수출하겠다는 야망이 넘치는 시대이다.

중화학공업 육성계획 수립 지시

1971년 11월 14일, 필자는 정든 상공부를 떠나 청와대 경제제2수석 비서관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위산업 육성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1972년 5월 30일, 박 대통령은 월례 행사인 수출진흥 확대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나고 새로 수출되기 시작하는 중요 상품의 전시가 있었는데 그 달에는 수출되는 자동차 부품만을 모아서 전시가 되었다.

박 대통령은 이 회의가 있은 후 필자를 서재로 불렀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대통령이 방 중앙으로 걸어나오며, "오 수석"하고 불렀다. 필자는 "예, 각하"라고 대답하며 부동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로 박 대통령이 기분이 아주 좋을 때이다.

"오늘 무역확대회의 보고를 들으니 수출은 계속 늘고 있더구만, 100억 달러 수출도 문제없겠어. 그 이유는 새로운 수출상품이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 실감했어."

그리고는 나를 향해 "임자, 다음은 무슨 공업을 육성하지?"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때 내 나이 45세, 머리회전이 빠를 때이다. 번쩍 영감이 떠올랐다.

100억 달러 수출이라면 공장 몇 개를 건설한다든가, 공업의 한두 분야를 말해서는 현문우답(賢問愚答)이 된다. 그래서 서슴지 않고 중화학공업 건설에 대한 건의를 올렸다.

이렇게 되어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대한 안을 짜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김정렴 실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몇 달 동안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상세히 쓰기로 한다.

다만 이 시점에서 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동차공업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화학공업계획안을 짜면서 우선 자동차공업쪽부터 손을 대야 했다.

자동차공업 육성에 대한 청와대 회의

필자는 상공부의 담당차관보(金在官)와 담당과장(尹承植)을 불렀다. 그리고 필자는 김 차관보와 윤 과장, 그리고 김광모(金光模) 비서관, 권광원(權光遠) 비서관과 함께, 자동차공업 육성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소위 작전회의였다.

우선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부터 전달했다. 즉 중화학공업 육성계획 수립 지시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공업은 중화학공업으로 일대 개편을 실시하되 수출산업화 한다"는 지시이다. 그리고는 자동차공업과의 연관관계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

" 중화학공업 육성의 중추사업은 기계공업이다. 자동차공업이 선도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자동차 부품공업 육성이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부품공장만은 최신공장을 건설하되 외국 유명회사와 합작 또는 기술 제휴를 한다. 이들 공장은 기계공업기지(昌原)에 입주시킨다. 금융, 세제지원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와 준다. 자동차공업을 수출산업화 한다" 등이었다.

그리고 그 날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① 자동차공업은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의 테두리 내에 포함시킨다. ② 상공부는 곧바로 자동차공업 진흥 세부계획을 작성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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