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그 날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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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날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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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이 황량한 도시에서 무슨 아름다운 것들을 찾으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살아가는 순간순간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낸다. 그래서 나는 멍청한 모습을 잘 짓는다.

무엇 때문에 열심히 길을 걸어가다가. 쇼 윈도우에 서 있는 마네킹의 표정이 너무 애틋해서 멍하니 서 있다가, 좁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고는 ‘이크! 또 실수를 했구나.’ 생각을 하곤 황망히 자리를 비키곤 한다.

지하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도, 갑자기 지하철 벽의 벽화가 새로운 느낌이 들어 이리저리 고개를 들어 뜯어보다보면 내가 기다리던 전철이 떠나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겨우 전철을 타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계기로 무슨 생각에 잠기다 보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버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보는 당구는 3단이다.’란 말이 있듯이, 나는 느끼는 것으로만 치면 일류 예술가이다. 나에겐 모든 것이 그토록 아름답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상념도 아까워서 잊어버릴 수가 없고, 비오는 날 내리는 빗방울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내가 발을 내려서 보도블록을 밟을 때 튀어 오르는 그 물방울의 영롱한 색체가 또 나를 감동하게 한다.

나는 또한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내가 즐겨 입는 잠바를 강하게 휘젓는 그 바람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바람이 머리칼을 휘젓는 느낌이 좋아, 평소 짧게 깍는 머리를 길러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또 어둠을 좋아한다. 밤에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쇼 윈도우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것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 ‘중경삼림’의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둠 속을 지나가는 버스가 뿜어내는 환한 불빛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저녁 무렵의 노을이다. 세상의 모든 노을 중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나는 그 중에서도 붉은 빛이 약해진 노란빛의 노을과, 노을이 거의 사라져가서 짙은 코발트빛으로 변해가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나도 붉음과 노란색이 강렬히 섞여있는 그런 노을을 좋아하기도 한다. 단지 그런 화려함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렇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소박함 속에 깃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노을도 화려하지 않은 소박하고 조용한 노을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고 화려함이 전혀 싫은 것은 아니다. 이왕에 화려하려면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 좋다. 어설픈 화려함은 왠지 깊은 맛이 들지 않아서 그다지 마음이 가닫지 않는 것일 뿐, 나라고 화려함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언젠가 하루, 퇴근길에 정말 아름답고 화려한 노을을 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워 유리창에 얼굴을 부비고 눈물을 흘릴만한’ 그런 노을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나는 감동을 했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는데, 생각나는 번호가 없었다. 나는 지독하게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때 갑자기 의사친구의 전화번호가 하나 생각이 났다. 공중전화로 달려간 나는 다짜고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외쳐 댔다. “야! 지금 빨리 창밖에 노을 좀 봐라!” 친구는 무척이나 당황한 듯했다. “나 지금 회진 도는 중이야. 그리고 요즘 세상에 하늘 쳐다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아. 지금 빨리 보래도!” 친구는 내 성화를 못 이겨 병실의 창밖으로 노을을 바라보았다. 친구의 환자도, 간호사도, 친구도, 그리고 나도 함께 오랫동안 그 노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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