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는다. 이후 외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친할머니가 이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한다. 빨치산에 나가 있는 자기 아들더러 죽으라는 저주와 같았기 때문이다.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서 가족들은 할머니의 아들인 삼촌이 죽었을 거라고 믿지만, 할머니는 점쟁이의 예언을 근거로 아들의 생환을 굳게 믿고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예언한 날이 되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의에 빠져 있던 할머니, 그 때 구렁이 한 마리가 애들의 돌팔매에 쫓겨 집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는 별안간 졸도한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는데 외할머니는 동네사람들을 쫓아 버리고 감나무에 올라앉은 구렁이에게 다가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할머니는 머리카락을 불에 그을린다. 그 냄새에 구렁이는 땅에 내려와 대밭으로 사라진다. 그 후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화해하게 되고 얼마 후 숨을 거둔다. 장마가 걷힌다.
윤흥길 중편소설 <장마>의 줄거리다. 좌우 대립이 심했던 혼란기 구렁이라는 샤머니즘에 기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작가의 화해에 대한 갈구는 53년 전 일어났던 6. 25 ‘한국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쉬 다가오지 않는다.
장마가 주는 역사적 교훈
장마! 기나긴 비 내림, 마귀같은 비의 연속, 혼란의 지속, 무질서와 혼돈, 끝 모를 절망, 밀고 밀리는 전선의 교란, 치열한 전투의 지속, 마귀의 긴 꼬리를 장마라 표현하면 무리가 따를까?
이렇게 까지 장마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까닭이 있다. 그나마 동족상잔의 피비린내가 장맛비에 씻겨갔으니 망정이지 8월 무더위 철이었다면 어찌했을까? 불 보듯 명확하지 않은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시체, 뿔뿔이 흩어진 가족, 어디 한 데서라도 눈 붙일 여유조차 없었던 생지옥, 우왕좌왕 갈곳 몰라하는 가축들, 낮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밤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민으로 살다갔던 우리 부모들은 진절머리나게 장맛비를 싫어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왜 한국전쟁 6. 25는 하고많은 날들 중에 하필 6월 25일에 일어났을까? 남침이니 북침이니 하는 것은 나에겐 관심사가 아니다. 그건 역사학자들과 당시 위정자들의 몫이니 여기서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오히려 미국이나 소련의 몇몇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을 터다.
겨울철 상황으로 보면 동지(冬至)를 훌쩍 넘기고 대한(大寒) 무렵이나 가장 추울 때인 소한(小寒) 때나 마찬가지로 최악의 기상조건에 비견할 만한 시기가 여름으로 보면 하지(夏至)를 막 넘긴 6월 25일 즈음이다. 하지 무렵 남부지방은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고 중부지방으로 그 전선이 치고 올라오는 데는 사나흘이면 충분하다.
장마 시작되는 날, 6.25가 발발했다
장마와 전쟁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얼마 전에 일어났던 첨단무기 경연장이었던 이라크 전(戰) 같으면 건조한 사막에 바람이 결정적 요인인데 비해 한반도의 경우 추위와 비가 최대의 적이다.
비란 어떤 존재인가? 비는 마음을 한량없이 풀어지게 하는 힘을 가진 마술사다. 비 오는 날에는 적당히 비 설거지만 해놓으면 만사가 태평이다. 돈 없는 사람도 빈대떡에 물 조금만 넣고 거른 진한 농주(農酒)를 한 됫박 거나하게 마시고 싶어진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푹 풀어져서 낮잠이나 길게 자고 싶은 게 비인데 장마가 시작되었다면 “어절씨구 지화자” 농한기를 노래할 법하지 않겠는가?
군인들 처지에서 한 번 볼까.
“설마 쳐들어오려고? 올 테면 와보라지.”
“장마 기간에는 다리 쭉 펴고 살 수 있겠다.”
“벼락과 번개는 칠 망정 날벼락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게야!”
“나도 힘든데 지네들이라고 안 힘들겠어. 가만히 서 있어도 이리 힘든데 전쟁이라? 미친 놈들 아니고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장마와 전쟁. 1950년 6월의 비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한쪽에선 마음 푹 놓고 있을 때 속전 속결로 밀어붙이면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허를 찌르는 전쟁의 기초지식에서 날을 잡아 감행한 것이니 <손자병법>에 충실한 전법인 셈이다.
따발총이나 나무 총 칼빈 등 당시 재래식 무기는 고열이 나면 물에 푹 담가 열을 식혀줘야 하니 거꾸로 물은 전투에 필요악이 되었던 것이다. 준비하지 않은 측에서는 설마 했던 것이 현실이 되니 얼마나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을까? 그러니 초반 전세는 급격히 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릴적 어른들은 그 말을 꼭 들려주셨다. "장마 시작되는 날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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