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넣고 끓인 쌉싸레한 '대사리국' 먹고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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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넣고 끓인 쌉싸레한 '대사리국' 먹고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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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퇴비 쓸던 대빗자루 꺾어 다슬기 빼먹는 것도 묘미(妙味)

다슬기로 끓인 국을 '대사리국'이라 한다. 나는 '올갱이국'과 '다슬기탕', '고동국' 보다 '대사리국'을 훨씬 좋아한다. '아따 그놈 입 까다롭네!' 해도 어쩔 수 없다. 한 번 들인 맛이 그렇고 내 뇌리에 박힌 이미지가 있으니 홍어집에서 홍어탕이 없으면 그 집엔 발을 들이지 않는 이치요, 한식당(韓食堂)에 단무지가 나오면 두 번 다시 찾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같은 다슬기로 끓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대사리국이라고 써 놓아야 한 번 들어가 주인 칭찬하면서 맛나게 먹어준다.

 

 
   
  ^^^▲ 뚝배기에 나오는 다슬기탕.
ⓒ 김규환^^^
 
 

다슬기라고 다 똑 같지도 않다. 모양이 비슷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일단 상류(上流)라기보다 골짜기 냇가에서 잡은 것은 하류(下流) 강바닥에서 잡은 것에 비해 소라처럼 둥글게 원을 형성한 줄이 하나도 없다. 그냥 밋밋하다. 맨들맨들 해서 하나하나 잡아가는 느낌도 썩 좋다.

그런 토종 다슬기를 잡아오면 어머니는 물을 더 넣고 놋숟가락이나 놋젓가락을 담가 해감을 한다. 놋쇠를 넣으면 이 놈들이 역겨움 때문인지 ‘흐레’(다슬기 따위의 조개류가 머금고 있는 흙 등의 잔유물)를 서서히 게워낸다. 이러니 일부러 “박박” “벅벅” 소리나게 씻지 않아도 된다. 어디 이뿐인가. 물을 여러 차례 갈아줘 2~3일이나 걸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유기(鍮器)의 놀라운 신통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해감을 마치면 끓는 물에 집 된장 조금 풀고 30여분 끓이면 노랗던 국물이 푸르스름하게 바뀐다.

까무잡잡하고 까만 눈을 가진 아이가 어머니 곁에서 대사리국을 같이 끓였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의 눈망울을 보면 어머니는 꼬마가 무얼 원하는지 훤히 아신다. 한 그릇은 통째로 남겨서 이따 밤에 까먹게 해달라는 신호이니 넓은 국 대접에 가득 채워 부뚜막 위나 ‘설강’에 올려놓으신다. 그건 밥 먹고 나서 아이들 차지고 노리개다.

-“엄마 잘 삶아졌는가 한 번 보끄라우?”
“오냐. 한나 묵어봐라.”
-“예.”
-“톡!”
-“간도 맞고 잘 삶아졌구만이라우~”

 

 
   
  ^^^▲ 누나집 아파트 베란다에 보관된 확독. 믹서에 가는 것보다 이곳에 갈면 더 맛있는 까닭을 아시는지요. 옛집이 팔려 현재 가보로 갖고 있는 것은 이거 하나 뿐이랍니다.
ⓒ 김규환^^^
 
 

성한 이로 꽁무니를 물고 툭 깨물면 집안에 있던 도깨비도 모두 도망갈 정도로 귀에 들리는 소리는 대단했다. 다시 앞쪽으로 돌려 “쏘~옥”하는 소리를 내며 단번에 빨면 알맹이가 정말이지 톡 빠져 입안에 감칠맛 나게 자리 잡는다. 한 번에 안되면 다시 꽁지를 더 크게 구명을 낸다. 한두 번 씹어 비닐 같은 얇은 막을 “툭” 뱉어 날려 버리고 알맹이만 먹는데 그 작은 부위마다 씹히는 맛과 향이 다르다. 빨판을 중심으로 위쪽은 조금 질긴 듯하지만 쫄깃하고 아래 꼬리 쪽 파란 부분은 보드라운 걸 넘어 야들야들하며 쌉쌀한 맛이 더 하다.

어머니는 끓이기를 멈추고 국물을 그대로 둬 대사리를 조리나 채로 건져서 말끔히 씻어둔 ‘확독’으로 가져간다. 둥글 납작한 돌을 좌우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대사리를 갈면 껍질과 살, 비늘 막이 분리되지만 이걸로 일을 마친 것이 아니다.

다시 부엌으로 가져가 물동이를 옆에 두고 조리나 ‘체’ 또는 ‘얼기미’(올이 고은 체보다 더 굵어 숭숭 빠져나가는 체의 한 종류)를 이용하여 잘게 빻아진 껍질 따위를 건져서 버리고 알맹이만 한 곳에 모은 푸르스름한 연체동물을 솥단지로 다시 가져가 첫 번 째 끓인 국물에 넣고 마저 더 삶아내면 되니 큰 일은 대강 한 셈이다.

대사리국은 봄이나 가을엔 아욱이 잘 어울렸고 여름엔 애호박이 좋다. 겨울에 먹을 때는 미역을 넣어도 괜찮았다. 주재료에 보조재료로 ‘솔’이라는 부추를 막판에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 부드러워지면 한 대접씩 떠서 상에 올리고 드글드글 온 가족이 몰려 앉아 먹는 그 모습이 아득한 옛일이 되었다. 게 눈 감추듯 얼른 먹고 곧 더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나는 큰 양푼에 가득 떠서 상 옆에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다슬기국. 최소 1kg 정도는 돼야 맛이 납니다.
ⓒ 김규환^^^
 
 

밥 먹을 때 밥 하나 ‘들기면’(흘리면의 전라도 사투리) 호된 꾸지람을 듣고 말소리 조금 길면 호통을 듣던 우리들은 이 날만은 예외다.

“훕!”
“호로록~”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어른 두 분에 형제자매 여섯 명이 동시에 내는 그 소리가 아직 귓가에 스치는 듯하다. 된장 잘 풀어지고 퇴비 먹고 자란 잎 넓은 아욱에 재를 간간이 뿌려줘서 알칼리를 고루 먹은 부추, 파, 양파 썰고 마늘 다지고 매운 고추 두어 개 썰어 넣어 깔끔한 맛을 더해 된장 풀었으니 어떤 조미료를 넣지 않았어도 얼큰하고 깔끔했다.

이런 날은 특별히 ‘따순밥’(새로 한 따뜻한 밥)이 필요 없다. 식은 밥을 말아야 그 향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 여름에도 따뜻한 밥 아니면 안 드신 아버지께서도 이날만은 예외였다.

시퍼런 국물 떠먹고 질근질근 기분 좋게 씹히는 대사리국. 대사리국은 내 입맛을 찾아주고 영양을 보충하고 추억을 건져내는 맛난 음식이다.

 

 
   
  ^^^▲ 서울에서는 연신내와 서오릉 쪽에 가면 드실 수 있습니다. 체인점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군요. 간에 좋으니 해장에도 좋겠지요?
ⓒ 김규환^^^
 
 

밥을 양껏 먹고 나서 보릿대로 불을 사르고 생풀이나 생 나뭇잎으로 모깃불을 피우고 나면 여름에도 써늘한 기운이 도는 첩첩산중 호롱불은 흔들리므로 방에 두고 달빛에 의존해 밖으로 나와 마루에 앉거나 배를 깔고 엎드려서 대사리를 까먹는다. 이쑤시개가 따로 없던 시절이라 바늘이 대용품인데 어디 한 집에 바늘이 여러 개이던가? 탱자나무 가시가 제일 좋았으나 가까이 있지 않았다.

“야 거시가 마당에 가서 빗자루 좀 잘라와라.”
“아따~. 성아가 갔다오면 안 돼? 글다 도채비(도깨비) 나오면 어쩔라구?”
“형이 여기서 보고있응께 걱정말고 후딱 댕겨와야~!”
“참말로~. 하여튼 시켜 먹는 건 도사라니까~.”
“낼 성이 ‘때왈’ 따줄게. ‘폴새’(이미, 금방, 벌써) 갔다왔겠다.”
“알았어.”

으쓱한 아래채 외양간 근처 ‘망웃자리’(퇴비자리로 인분, 소똥, 돼지똥, 닭똥을 발효시키는 자리)에 대빗자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쪼르륵 달려가서는 빗자루 째 들고 왔다. 오늘도 닭이 후벼 판 망웃자리를 이 빗자루로 쓸어 올려주었건만 그게 대수랴! 대나무 가지를 묶어 만든 빗자루를 꺾어 대사리를 하나 둘 빼 먹는 그 재미. 더러운 줄도 모르고 그 맛에 폭 빠진 ‘귀신 씨나락 까먹던 시절’이 있다. 다음날 ‘장꽝’(장독대)을 보면 대사리 껍질이 꼬막껍데기와 어울려 뒹굴고 있었다.

 

 
   
  ^^^▲ 다슬기 대사리 올갱이 고동 골팽이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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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03-06-22 21:16:44
"아욱"이 뭔가요?! 잘못된 표현같은데...

김규환 2003-06-22 22:04:12
아욱이라고 한 번 검색 사이트에 쳐보세요.

채소 중 하나인데 된장국 끓일 때 빠지지 않는 채소랍니다.

시장에 가보시던가요?

참고로 무궁화도 아욱과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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