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납치된 마지막 위안부 기록 남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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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납치된 마지막 위안부 기록 남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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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의 일본군 고급 참모와 386좌익들

 
   
  ▲ 종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순옥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제1권 2부는 ‘식민지 하의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오사카산업대학 후지나가다케시 교수, 미 시카고대학 최경희 교수, 산프란시스코주립대학의 소정희교수, 이 3인의 글이 방대한 분량의 논문으로 실려 있다.

위 논문들이 인용한 근거자료들을 보면 일본인들의 조사가 매우 많은 반면 한국인들의 조사가 매우 빈약하다. 국내학자들은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고, 정대협은 객관성이 결여된 감정적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수많은 국제인들에게 망신스러운 결과만 초래했다는 게 이들 자료에 시사돼 있다.

일본군 위안소의 원조, 상해위안소

위안부 문제가 일본에 충격을 준 것은 1991년 8월부터 위안부들이 잇따라 자기 존재를 밝히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한 소송을 전개한 일이었다.

자료상 확인된 바에 의하면 1932년 상해 위안소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며 중일전쟁 개시 이후 이 지역에서의 위안부 수가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상해 위안소는 타 지역의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상해 위안소 환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상해에는 개인적인 돈벌이를 위해 일본인 매춘여성(가라유키상)이 해외로 나간 가장 전형적인 케이스다. 상해 주재 일본영사관은 1880년대부터 가라유키상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이는 공창제도의 도입을 의미했다. 공창제도의 설치 동기는 1)강간방지, 2)군의 사기앙양 3)성병예방 4)방첩이었다.

당시 상해에서의 조선인 여성 실태는 이러했다. 상해에서 조선인 여성 댄서가 출현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여급도 출현했다. 조선인이 운영하는 사창도 있었다. 이들은 신흥접객부로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했다. 이러한 여성들은 불경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이 상해로 모여들었다.

1936년 당시 상해에는 조선인 여성 댄서가 37명, 이들은 풍속을 혼란시켰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음식점, 카페 등에서 일하는 조선인 여급은 48명,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밀매음을 하여 주인과 반반씩 나누었다 한다. 이 무렵 상해에는 290명의 조선인 사창도 존재했다. 사창이란 공창으로 인정받지 못한 곳이었다.

만주사변 때 나타난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매춘부 출신이며 그 중에는 조선인 여성이 일부 포함돼 있었지만 중일전쟁 중기인 1940년 무렵에는 조선일 여인을 강제로 데려다 위안부를 시킨 ‘성적 노예’들도 새롭게 출현했다. 중일전쟁이 전면화된 이후 위안소가 대량으로 개설되는 시기에 위안소 경영자 중에 조선인 이름이 꽤 있었다.

일본군이 개설했던 위안부는 1)군직영위안소 2)군이 감독-통제하는 군전용위안소 3)민간매춘소를 병사용으로 지정한 곳(민간, 군 공용) 4) 순수한 민간 전용 위안소(군이 다니더라도 그건 개인적인 일). 4번째 형 위안소는 일본군 위안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군 고급 참모가 위안부 설치했다

1932년3,14자 상해 파견군 고급참모 오카베 나오자부로의 일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요즘 병사들이 여자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다는 추잡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다. 이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설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 . .”

상해 파견군 참모부장 오카무라 야스지는 이렇게 회상했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한다. . .이렇게 말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위안부 안의 창설자다. 쇼와7년(1932)의 상하이 사변 때 두 세 건의 강간죄가 발생했으므로 파견군 참모부장이었던 나는 그곳 해군을 본떠 나가시키 현지사에게 요청하여 위안부단을 불러들였다. 그 후 강간죄가 완전히 그쳤기 때문에 기뻤다”

1932년의 일본군 고급 참모와 386좌익들

1961년 박정희 시대가 열리기 전, 한국정부는 매춘을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었다. 여인들은 단속을 피해 가정집에 남자들을 끌어 들였다. 매춘이 주택가로 범람한 것이다. 당국 몰래 해야 하기 때문에 성병이 창궐했다. 매춘 가격도 올랐다. 매춘 값이 없는 남성들은 여성 구경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성범죄가 범람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마자 공창제를 허용했다. 위에서 발생했던 모든 암적 병리현상들이 해결되고, 매춘여성에 대한 건강관리가 용이해졌다.

이를 또 다시 노무현 정부의 머리 나쁜 좌익들이 성매매금지법을 만들어 폐기시켰다. 수용자와 공급자 모두가 이제는 산으로 가고, 주택가로 가고, 노래방으로 가고, 해외로 나가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

1932년의 일본군 고급참모 오카무라 야스지, 박정희, 노무현, 이 세 사람 중 누가 합리적인 생각을 했고, 누가 비합리적이었는지 우리는 금방 판단할 수 있다.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는 분명히 존재한다

당시 조선 시대에는 딸들이 부모로부터 엄청난 학대를 받았다.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무지하여 딸들을 학교에 보내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집에만 가두어두면서 소처럼 일만 시켰다. 당시의 딸들은 공부도 하고 싶고, 고운 옷도 입고 싶고 넓은 세계에 나가 신여성이 되고 싶어 했으며, 인신매매단들은 이런 점을 이용하여 돈도 발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접근했다,. 이런 경로가 대부분의 위안부들이 걸어 온 길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집에서 밥을 짓다가 청천벽력으로 끌려간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기록들을 보면 위안부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은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일본측 보도에 의하면 일본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위안부 기록이 입수됐다고 한다. 만일 그런 기록이 있다면 심미자 할머니에 대한 기록이라고 판단된다.

위안부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는 정대협이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정대협이 심미자 할머니를 내세워 일본수상 아베를 상대로 투쟁을 한다면 아마도 일본 정부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웬 일인지 정대협은 일본의 상당히 많은 사람들, 즉 변호사 및 시민단체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심미자 할머니에 대해서는 가짜라 하고, 일본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할머니들만 내세우고 다니며 눈물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는 심미자 할머니를 위해 대법원에까지 가서 싸워준 변호사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대협이 내세우고 다니는 할머니들은 그런 할머니들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일본인들의 도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심미자 할머니의 인생 역정을 쓰실 분을 찾습니다

심미자 할머니의 생생한 인생과 그에 관한 역사 자료집이 있습니다. 심미자 할머니의 생생한 이야기를 엮어서 책으로 낸다면 이는 할머니를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정말로 중요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만일 심미자 할머니(84세)마저 돌아가신다면 일본인들이 인정하는 진짜로 강제납치된 대한민국의 중요한 마지막 증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제가라도 써드리고 싶지만 저는 도저히 시간이 없습니다. 할머니로부터 구술을 듣고 자료집을 참고하여 일제시대의 역사에 할머니의 인생을 접목시킨다면 참으로 귀중한 작품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글을 잘 쓰든 조금 부족하게 표현하든 진실한 내용을 체계 있게 정리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혹시 나설 분 계시면 제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해에 비해 많이 수척해지신 심미자 할머니가 오늘 사무실에 오셔서 울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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