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돌려주오!"
"내 인생을 돌려주오!"
  • 김용호 기자
  • 승인 2002.08.28 0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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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터에서 얻은 신경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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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있을 때 박격포 공격을 받고 총기난사 사건이 있은 후 상황근무 할 때나 연병장에 집합하는 긴박한 모습을 보면 심장이 덜컹 한 박자 건너가는 듯한 충격을 받곤 하여 그때마다 가슴을 손바닥으로 탁탁치며 심호흡을 하면 증세가 없어지고 또 그러기를 반복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군 병원에 갔더라도 꾀병취급하고 병명조차 없었을 테지만...) 복무한 후 귀국하여 군 생활을 마쳤는데...

이제와 되돌아 보니 1971년 겨울 베트남에서 돌아온 이후 1972년 3월에 제대하여 나이 쉰이 넘도록 정신없이 열심히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은 20대초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만 건강하였고 30대 때부터는 사지육신만 멀쩡하였지 정신적으로는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야 했다.

제대후에도 간혹 심장이 덜컹거리는 증세를 느끼며, 살아가는 일이 바빠 대충 지나가던 1977년 여름 갑작스레 심장이 더욱 덜컹덜컹 부정확하게 벌떡거리며 빠르게 뛰고 곧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심장마비가 아닌가? 하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길바닥에 쪼그리고 주저앉았다가 퇴계로의 성심병원 응급실에서 다급한 응급조치를 받고 난 이후부터 시름시름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지독한 피곤함과 사람들이 많이 타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숨이 막혀오는 괴상한 증세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는 고엽제니 전쟁증후군이니 스트레스니 하는 증세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을 때였고 병원에 가서 연일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였다가 사라지는 증세를 호소해도 "심장신경증" 이라며 신경안정제를 투여하는 게 고작이었다.

100M를 13초 이내에 주파하고 산봉우리를 단숨에 뛰어 올라갈 정도로 건강하였고 심심하면 시내버스나 기차를 타고 창가에 앉아 종점에서 종점까지 왕복하며 생각에 잠기는 걸 즐겨할 정도로 버스나 기차 타기를 잘했는데 이젠 버스만 타면 마치 간질 발작하듯 심장이 벌렁거리고 빠르게 뛰며 호흡이 가빠오는 증세가 거의 매일 계속되는 지라 사회활동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몸은 야위어만 갔다.

그 당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이동 수단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택시도 못 탈만큼 연일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으니 변변히 직장생활도 못하겠고 점점 몸이 쇠약하여져 1977년 가을에 결국 들어 눕고 말았다가 1978년 봄 월남 가서 살아 돌아온 큰 아들이 시름시름 앓으며 말라 비틀어져 가자 죽으려면 고향에 와서 죽으라는 어머니의 눈물에 그나마 간신히 버티던 서울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요양할 수밖에 없었다.

몸무게 50kg이 못되고 마치 미이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말라 비틀어졌지만 제대후 일찌감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까지 있는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부양하는 책임까지 몸이 불편함을 이유로 게을리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위장이 헐었는지 속이 쓰리고 아파 도저히 밥을 먹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무책임하게 죽을 수 없다고 다짐하며 치사한(?)삶과 투쟁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때로는 질긴 것이어서 금방 죽을 것같은 공포와 불안이 지나고 나면 죽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고 그런 사실을 알고 부터는 아예 나를 괴롭히는 그 정체불명의 공포를 간직한 채 지금까지 내 몸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로 열심히 살아왔다.(아니 왜 이렇게 되었는지 조차도 생각해 보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난 지금까지 제주도를 못 가봤다. 배를 타자니 멀미와 갑갑함이 무섭고 비행기는 더구나 질식할 것같아 못타니 제주도를 갈 방법이 없지 않는가? 아니, 육지인 설악산도 올라보지 못했다. 숨이 차니 올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몰려오는 공포와 싸워야 하는 몸이니 남의 돈을 받는 직장에선 일할 수가 없어 밑천도 없이 조그마한 사업을 하면서 동료 사업가들과 해외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있어도 나만은 갈 수가 없었고 기차나 버스타고 육지 여행도 마음놓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게 벌써 어언 25년이다. 그러나 이젠 체력이 달려서 그런지 많이 힘이 든다. 그런데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성빈혈까지 겹쳤단다. 3층 계단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숨가빠 어렵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내게만 있는 게 아님을 안 것이 최근이다. 지난 1992년 고엽제의 참상이 알려지고 참전용사들에게 고엽제의 치료와 생계지원 대책이 마련된 이후에도 전쟁증후군에 대하여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에 고엽제를 대수롭지 않은 풍토병인 줄 여겼던 것처럼 악몽을 꾸고 진땀을 흘리며 잠을 못자고 귀에서 쇳소리가 나며 숨이 차고 금방 죽을 것같은 공포 속에 차차 우울증에 빠져드는 신경증세는 예민한 사람들이 신경을 많이 쓰면 의례 그러려니 했다.

내가 그간 병, 의원에서 들은 내몸의 증세는 심장신경증, 자율신경 실조증, 예기불안증, 등등 부르다가 최근에 와서는 <공황장애> 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런 증세의 원인을 찿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충격이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오래 노출되면 예민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신경정신과의 고질적 증세임을 이제서야 알았다.

어쩌면 전쟁상황에서의 긴장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이런 증세를 가질 수 있다는데 그런건 까맣게 모른채 벌써 25년째 고생하며 홀로 장애 아닌 장애를 겪고 있었단 말인가? 정글화를 벗지 못해 베트남 현지에서 얻어온 악성 무좀이나 여름철에 만발하는 습진같은 피부병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작년부터 인터넷 활동을 하면서 의외로 많은 전우들이 이 같은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고부터는 몇 년간 나를 치료하고 보살펴주는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해외의 사례를 찾아봐 달라 부탁한 결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참전병사들의 신경정신과 영역의 장애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있고 걸프전 이후 <외상 후 증후군>이라는 병명으로 치료해주고 보살펴준다고 하며 과도한 스트레스가 전장의 병사들에게 미치는 정신건강에 대하여 외상(外傷) 못지않은 배려를 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눈으로 보이는 일반 외상(外傷)은 진단을 통하여 그 경중(輕重)을 알 수 있고 장애등급을 판정하기가 쉬운데 반해 신경계통의 증세는 진단이 어렵고 그러나 당사자는 눈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장기간 고통을 겪어야 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본인 이외에는 그 고통을 알기 힘들며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술, 담배를 전혀 안하며 육식보다 채식과 생선을 즐겨하여 고혈압, 당뇨, 더구나 간질환 같은 성인병이 없어 겉으로는 멀쩡하고 건강한 상태로 보이는 것이며 고엽제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보훈병원에서의 치료나 고엽제보상 따위와도 거리가 멀다.

그런 상태로 삶의 무게를 지고 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아왔고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 본인이나 함께 생활하며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것도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이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니 이게 반병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간은 아직 늙지 않았으니 그럭저럭 견디며 살아왔지만 이제 나이먹고 노쇠하여지면 인생 말년이 참담하고 고통스러울 게 너무도 뻔하다. 게다가 국방의 의무 완수를 위해 징집되었다가 파월된 것이 양민학살군대에 용병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비하되어 조국이 필요로 할 때 전쟁터에 <파병된 장병> 이라는 알량한 긍지마저 짓밟혀 버렸으니 정신적 충격과 상심 또한 만만치 않다.

제대 후 하루도 건강하게 살아보지 못한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그 몹쓸 놈의 증세만 없었더라면 내인생은 좀더 활발할 수 있었을 것인데... 정말 나도 한번 다만 몇 달만이라도 마음놓고 건강하고 활달하게 살아보고 싶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언급이 없었고 관심조차 없었던 "베트남 전쟁터에서 얻은 신경증"을 새로운 전쟁후유증 문제로 제기한다. 그러나 과연 누가 이런 부담스런 소리를 귀담아 들을까?


P.S.
파월 국군을 비판하시는 네티즌들은 행여 이 글이 신세 한탄이나 동정심에 호소하는 글로 보지 마시라.
베트남 전쟁터에서 이제까지 사례조차 나타나지 않은 또 다른 문제의 제기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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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01:57:57
백만원을 벌기위해 월남으로 파병 나갔지. 너나없이 자원 해서 갔다고 봐야지 그 부잣집 아들인 남진도 갈 정도 였으니 보통 이만원 월급받는데 백만원은 괜찮았지 일년만 잘 버티면 되니까. 원양어선으로 독일탄광으로 중동으로 외국엘 가야 밥벌이를 했거든 개코도 모르면서 가오 잡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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