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밀, 하얀 코털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의 비밀, 하얀 코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나에겐 조그만 소망이 있다

미국 서부영화 어디선가 하얀 코털이란 이름의 등장인물을 본 것 같다. 백인장군 중 하얀 콧수염을 가진 잔인한 장군에 맞서 싸우는 인디언들이 그 악질적인 장군을 부르는 이름이다.

아내가 말한다.
“코에 딱지가 붙어 있어요”

거울을 본다. 정말 오랜만에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코딱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
나는 약간 짜증스런 말투로 물어본다.
“잘 살펴봐요!, 분명히 하얀 게 묻어 있다니까?”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아! 정말 하얀 것이 내 코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코딱지가 아니다. 그 하얀 것의 정체는 코털이었다. 나는 코속 깊숙한 곳에 있어서 잘 만져지지도 않는 그 하얀 코털을 뽑아내고는 아내 앞에 돌아섰다.
“이젠 없지?”

나는 그게 코털이었다고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얀 콧털! 그후 자꾸만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웃음이 지어진다. 친구들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머리털이 듬성듬성 희어지기도 하고, 벌써 반백이 다된 친구도 있다. 새치머리 하나도 없는 나는 친구들 앞에서 은근히 뽐을 내며 아직도 생생한 청춘을 자랑하곤 했었다. 그런데 하얀 코털이라니!

사실 나에겐 비밀이 하나 있다. 몇 년 전부터 턱수염 중 몇 개가 흰색으로 색이 바뀐 것이다. 휴가 때 며칠 출근하지 않고 놀면서 일부러 면도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가족을 태우고 서울을 벗어나 ‘나도 이젠 자연인이다’는 느낌을 만끽해 보고 싶어서였다.

매일 아침 면도를 해도 저녁이면 금새 까칠까칠하게 자라서 다소 지저분하게 보이는 게 신경이 쓰여 제법 오래 정성들여 깎던 수염을 며칠째 깎지 않으니, 근질근질한 느낌이 드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휴가가 며칠 남아 있지만 그냥 면도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해 버렸다.

아직 청춘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자랑하듯이, 제법 촘촘하게 나있는 턱수염 사이로 노란색깔의 털이 몇 개 발견된 것이다. 깜짝 놀라서 제법 길게 자란 턱수염을 뽑아서 확인해 보니, 뿌리부터 노란 것이 영락없는 노란수염이 아닌가!

나는 그날 당장 턱수염을 다시 짧게 깎아 버렸다. 수염을 짧게 깎은 턱에선 노란색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런데 오늘 나는 하얀 코털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제법 몇 개의 코털이 코 안에서 마음대로 이리저리 뻗어있는 모습을!

하긴, 서서히 낡아가는 내 몸의 흔적은 그것만은 아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나는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얼굴엔 두 가지 주름이 있다. 눈가에 하나, 그리고 눈 사이 이마에 하나.

눈 사이 미간에 난 주름은 얼굴을 찡그릴 때 생겨나는 것이다. 난 어지간한 일에는 잘 찡그리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주름은 나의 그런 생각이 틀린 것이란 걸 증명해 보이고 있다. 거울을 보며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 봐도 미간에 생긴 주름은 찡그릴 때가 아니면 생기지가 않는 것이다.

눈 옆으로 눈 꼬리를 따라서 뻗어나가는 또 하나의 주름은 웃을 때 생기는 것이다. 나는 눈웃음을 짓는 버릇이 있다. 다른 웃음을 지어보려고 하여도 웃을 때마다 눈웃음이 지어지고, 그때마다 눈꼬리에 주름이 접히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내 얼굴의 주름은 기쁨과 슬픔의 흔적이다. 내가 내 나이만큼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기뻐하고 슬퍼한 흔적이 그대로 내 얼굴에 남겨진 것이다. 삶에 늘 기쁨만 있을 순 없듯이 주름도 눈 옆에만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또 그만큼의 주름이 미간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노란 턱수염을 발견하고, 하얀 코털을 발견하게 되듯이 언젠가는 백발이 내 머리를 덮을 것이다. 처음 그런 것들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지만 난 결국 그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하나의 소망이 있다. 그것은 좀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좀 더 많은 인생의 연륜이 내 얼굴위에 흔적을 남길 때 내 머리위에 하얀 백발이 가을벌판의 억새들처럼 물결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집안은 대대로 소문난 대머리 집안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