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장병, 결코 별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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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장병, 결코 별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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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양민학살'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에게 이젠 전쟁이 없겠는가.

대부분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전쟁이 없어질수 없는 것은 우주의 섭리일는지도 모른다.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겠지만 결코 전쟁은 없어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 그것은 바로 사람이 사람 죽이는 것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노력만으로 없어질수가 없는게 전쟁이다. 그것은 인간사의 다툼이나 감정의 변화가 없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전쟁이든, 승리를 했든 패배를 했든 피해가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쟁의 평가도 객관적으로 옳은 전쟁이라는 평가가 나올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전쟁이 아닌가 하는 평가도 대부분 아전인수격의 평가이기 쉽다. 또한 객관적 평가의 기준도 승자의 논리로 귀착되기 쉽다. 하기에 승자이던 패자이던 전쟁의 책임은 상대에게 전가되는게 대부분이다.

불교의 가르침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옛날 대승의 상징으로 가사장삼과 큰 지팡이를 떠올리게 된다. 이 지팡이의 용도가 살생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맞는지는 모른다. 발밑의 벌레들을 쫓아 발에 밟혀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지팡이에 치어죽는 벌레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간과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팡이로 땅을 치는 순간 벌레들이 얼마나 몸을 피해 죽음을 면할수 있을런진 모르지만 생명을 중히 여기는 그 뜻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이 성선설이라는 주장도 있고 성악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설이 되었건 성인이 된 사람, 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최소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만일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우리와 같은 공기로 호흡하지 않아 우리의 인간과는 생성 과정이 다른 별종의 사람일 것이다. 최소한 이 지구상에서 우리와 같은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은 사람 죽이기를 즐겨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이라면 정신 이상자라 해도 살인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 정신의 혼란 상태에서 사람의 감정이 아닌 별종의 감정에서 사람을 죽이는 상황이 발생했다 해도 이내 그런 상황이 잘못된 것임을 느끼고 후회 하게 된다. 전쟁터에서의 적일지라도,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 했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인 이상, 괴로운 마음은 고통으로 남게 되며 심하면 죄의식에 사로잡혀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건전한 사고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이 아닌 사람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재판관이 사형언도를 내릴 때 재판관이란 직업을 갖게 된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고 한다. 그 사형 집행관은 물론, 그에 관여한 대부분의 사람도 그날은 집에들어 가기를 피하는 등 현실을 잊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 만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 죽이는 일을 즐겨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함에도 언제 부터인가, 우리의 주위엔 군인, 더 분명히 말해서 전쟁에 참여한 군인은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별종으로 묘사되고 있고 월남 참전 군인은 아예 식인종 쯤으로 보는 모양이다. 무척 안타깝다.

한쪽에선 진실을 밝히겠노라고 필봉을 휘두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분노를 삭이지 못해 치를 떨고 있다. 여기에 한 술 더떠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 세대에 존재하지도 않았든 사람이...... 어중이 떠중이까지 끼어들어 말도 되지않은 억지를 나열해가며 이러이러하니 양민을 죽인게 분명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면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을 거론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다. 같은 세대라도 전쟁에 참여한 사람과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시각 차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한세대 또는 절반의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그 당시의 전쟁을 거론한다는 것은 극복할수 없는 한계가 너무 크다. 따라서 세대차이를 극복할수 없는 상태에서 전쟁의 성격이나 전쟁의 양상을 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위험스러운 것이다.

이는 결코 보수적 성격의 시각이 아니다. 앞에서 밝혔지만 전쟁이란 영원히 없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분단 상태이건 통일 상태이건 전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정책을 수립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건 비단 우리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이 땅의 국민이라면 누구나를 가릴것 없이 군인의 신분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군인의 신분으로 있는 동안 전쟁이 발발하면 좋든 싫든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 참여하면 나를 죽이려하는 적을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것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군인으로써의 절대적인 의무이다.

그러한 책무가 주어진 상태에서 적을 맞막뜨려 죽여야 할사람과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을 구분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이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로 인한 오판은 전쟁터에선 비일비재할 것이다. 또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다 보니 적이 아닌 내 친한 친구를 내손으로 죽이는 오인 또는 오발사고도 있을수 있는게 전쟁터다.

스님이 벌레를 죽이고자 한것도 아닌데 스님의 발길에 밟혀 죽는 벌레도 있고 밟혀 죽는 것을 피하라고 땅을 쳐주는 지팡이에 치어 죽는 벌레도 있다. 이렇듯 사람의 생활속에는 보이지 않은 생명체가 죽어가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전쟁터다 보니 적이 아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은 전쟁의 또 다른 비극이다.

그것이 소위 전쟁에서 말하는 민간인 피해자일 것이다. 이 민간인 피해자의 발생이 사람을 죽고 죽이는 와중에서 단순하게 죽은 것이라면 이는 분명 민간인 피해자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적이 아닐뿐 아니라, 분명 나를, 아군을 해하려는 의도가 없는 자를 의도적으로 죽였다면 이는 민간인 살해라고 할것이며 그 수효가 많았을땐 양민 학살이라고 할 것이다. (국어사전의 해석을 떠나) 나를 해하려는 적이 아님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살해했다면 이는 분명 민간인 살해나 양민학살로 확인 할수 있는 것으로 건전한 사고 방식의 사람의 기준으로는 가정조차 할수 없는 것이다.

이는 분명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종의 사람 즉 별종의 사람이 아니고는 상상할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적이나 적의 동조자로 아무런 의심을 받을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않은 사람을 살해 했다면 이는 분명 정신 이상자의 정신 착란 상태에서 일으킨 사건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

또 하나 오판이란 것이 있다. 적이 아닌 사람을 적으로 알고 살해 했을 때 이는 오판이다. 오판의 경우,오판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학살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냉엄하지만 이는 민간인 피해자이다. 따라서 양민학살이건 민간인 학살이건 적이 아닌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였다면 이는 반인륜적 행위로 규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범죄자로 처벌되어야 한다.

우선 피해 당사자로 거론된 그들이 정말 학살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결정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위에서 거론된 오판과 정신 착란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순수 민간인으로 확인된 사람을 죽인것이라면 이는 분명 학살이다. 위에서 말한 학살의 조건을 갖추었는가는 피해자측의 주장이나 어느 한 두사람의 판단으로 결정될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공식적인 체널을 통해 피해자측과 가해자로 거론된 측의 대표를 포함한 일정수준의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하며 그 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라 적으로의 활동및 동조적인 부분이 있었는가의 검증이 있어야 할것이고 그런 부분이 없었다면 그가 단순한 전쟁 피해자인가 아니라면 전쟁범죄적 학살의 가능성의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겨레21에서 제기한 양민 학살론은 한사람의 르뽀성 추측자료에 불과한 것을 양민 학살로 단정, 서둘러 기사화한 것은 큰 실수였다. 한겨레 21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스스로 성급했든 점을 자각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도 한겨레 21은 정식 사과나 시정으로 사태를 수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무리수를 두어가며 짜맞추기식 기사를 만들어 온 것은 오기라고 밖에 볼수 없다.

한겨레의 기사대로라면 한국군은 사람죽이기를 즐기는 별종이다. 분명 사람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갖고있는 별종의 사람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징병제도가 성격적으로 사람죽이기를 즐기는 별종의 감정을 갖은자 만을 선별하는 것인지는 모를일이지만 그 당시 적령기의 대한민국 남자 20프로 정도의 파월장병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요, 이웃이었다. 어찌 그들만이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별종의 사람이겠는가.

아마도 그 20프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사람죽이기를 즐기는 종족인가 보다. 또한 사람죽이는 일에 동참하지 못한 한겨레 역시 사람죽이는 것을 즐기는 종족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종족이었기에 파월장병들의 자존심이라도 건드림으로써 사람죽이는 쾌감을 맛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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