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것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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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것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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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원의 차이에서 각자의 능력이 구별되고

^^^▲ 르네 프랑수아 오귀스트 로뎅, "생각하는 사람"^^^
공손추 “호연지기란 무엇입니까?”
맹자 “말로는 어려우나, 그 기는 극히 크고 굳세다. 이를 바르게 길러 이웃을 도와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기는 의로움과 함께 가는 길이 되는 것이며, 이를 버리면 시들어버린다.”

- 맹자의 “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上)” 중에서 -

"예스(yes)냐 노(no)냐", 이것만 밝히라고 욱박지르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상대의 대답에 따라 어떤 결과를 뚜렷하게 도출되도록 만든다. 여태까지 불투명했던 사태가 명확해지고, 그런 측면에서 대화의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런 말투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단순하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양자택일을 당해야 하는 상대방은 거꾸로 복잡해진다.

양분(兩分)은 (+)극과 (-)극의 꼭짓점만 밖으로 드러나게 한다. 그 극단 사이에 연결된 가운데 토막은 무시되고 만다. 이것은 마치 광 스펙트럼에서 가시광선을 빼고 적외선과 자외선만을 강조하는 무식과 통하지 않을까. 좌파 교조주의나 우파 근본주의가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이 흑백논리보다 그들의 더 큰 문제는 일방적 파시즘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도 물론 의식이 있다. 그러나 단순하고 지혜가 모자라 보인다. 사람이 봤을 때 동물은 “먹느냐 먹히느냐”하는 갈림길만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종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오로지 생존의 직선 축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 사람은 별나냐? 그렇다. 그 별난 것이 바로 문화 축이다. 언어너머 잠재의식이 있고, 말로 어려운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다.

언어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가금류나 유인원 중에 일부가 조금 흉내를 냈으나 인간의 언어를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 모든 동물들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통하는 구체적 신호가 있다하지만 역시 추상화를 핵으로 하는 언어의 기능을 가질 수 없다. 때로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과 프로그래밍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창의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문장은 크게 명사와 동사로 구성된다. 명사는 대명사와 보통명사로, 동사는 자동사와 타동사로 나눠진다. 형용사는 명사를, 부사는 동사를 꾸민다. 이와 같이 언어는 보통 한 켤레의 이항대립 쌍으로 개념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온오프(on/off) 스위치로서의 쌍대(雙對)이다. 그러므로 통속적으로 언어는 (예, 아니오)의 쌍대처럼 양자택일(either-or)하도록 이끌어간다.

이원론(二元論)은 일상 언어의 산물이다. 모든 존재가 본질적으로 양분된 쌍의 켤레로 구성되어 있다는 단순한 철학이다. 육체-영혼, 물질-정신, 시간-공간, 진보-보수, 생-사, 긍정-부정, 좌-우, 진-위, 남-여, 안-밖 등등 이원의 세계관은 거의 완벽하다. 그런데 바이러스, 좀비, 아편은 각각 생물과 무생물, 삶과 죽음, 마약과 진통제 사이에서 이원론을 해체하고 있다.

이원론이 내세우는 쌍대 사이에 이처럼 애매한 간격이 남아있다. 이것은 파동과 입자 사이에 상존하는 불확정성 원리에서 기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시간과 공간 사이는 빛이 매개하고 있다. 광속으로 달리는 관측자는 그 방향의 공간이 시간으로, 그리고 시간이 공간으로 변환되어 파악될 것이다. 복소수 평면의 실수축과 허수축이 원점 (0, 0)에서 교차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낙솔 자네는 시간-빛-공간의 삼원론(三元論)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굳이 문자로 명칭을 만들자면, 복소수가 하나이듯 일원론(一元論)이라 표현하고 싶다. 좀더 붙여 “삼원적 일체론”이 실재에 가까워 보인다. 필연-우연-박애의 삼각형이 있고, 별도의 꼭짓점으로 자유가 그것과 입체로 연결한 세모뿔이라 하자. 이 일체화가 자유의 전체 모습이다.

전류와 전압은 시간과 더불어 전기에너지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이렇게 볼 때 전류나 전압은 실체가 아니라 에너지의 한쪽 그림자에 불과하다. 전류와 전압은 다만 전하의 동정(動靜) 상태에 따를 뿐이지 다른 차이는 없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쌍대로서 다른 단위로 측정되고 있다. 입체로서 전기에너지의 모습은 단순하지만, 이것을 말로 설명하자면 길고 복잡하다.

교통사고는 단순하나 법정에서 책임을 따진다면 변호사를 대야한다. 사건은 삼차원, 언어는 일차원, 그 갭 이차원에서 각자의 능력이 발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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