짦은소설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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짦은소설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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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권 지음

아이는 더럭 겁이 났다.그날 따라 예쁘게만 보이는 저녁 노을에 눈을 빼앗긴 그때, 그 끔찍한 일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던 것이다. 고삐가 슬그머니 아이의 손을 빠져나가더니 철딱서니 없는 송아지는 그만 막 패기 시작한 이웃집 용칠이네 논벼를 싹둑싹둑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했던 것이다.

상처 입은 그 자리는 여름날 늦은 저녘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 크기만한 넓이였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표가 났다.
긴 가뭄으로 인해 땅이 마를 대로 말라 간신히 못자리를 하고 삼단 양수를 해서 겨우 모를 내고 병충해 방제로 공들여 애써 가꾸어 놓은 것인데 송아지가 일을 지질러 버렸으니 이만저만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죄짓고 잡혀 온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허둥대다가 뱀처럼 슬금슬금 기어가는 고삐를 얼른 잡아챘다. 그러자 벼를 열심히 입 속으로 몰아넣던 송아지는 앞 발에 힘을 주며 버티기만 했다. 먹을 콩 났다고 덤비듯이 성난 쥐처럼 안간힘 쓰며 복종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화가 치밀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송아지라고는 하지만 주인의 심정도 모르고 이럴 수가 있는가 말이다.

아이가 오른 손에 힘을 가하자 고삐가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송아지의 엉덩짝에 불이 났다. 송아지는배고픈 갓난 아기가 보채듯이 목을 길게 빼면서 어미소를 불렀다.

" 으음 매~!"
울음소리를 듣고 보니 송아지가 불쌍했다.아무것도 모르는 네발 달린 어린 짐승한테 가한 체형이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송아지를 잘 돌보지 못한 자신의 탓이 더 컸기 때문이다.
" 미안해, 송아지야......"

아이는 송아지의 엉덩짝을 쓰다듬어 주었다.
" 내가 잘못했어......"
아이는 송아지를 달래주고는 고삐를 잡아 끌었다.그런데 송아지는 갑자기 끙짜를 놓으며 큰 눈을 껌벅껌벅하더니 냅다 꼬리를 휘둘러 댔다.

아이는 송아지를 달래듯이 몰고 나와 둔덕 아래에 있는 튼실한 버드나무에 야무지게 고삐를 비끄러맸다.그리고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척, 그 자리를 슬그머니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천하를 굽어 살피시고 계시는 하느님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얼마를 뛰다가 아이는 동구밖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장죽을 물고 한가로이 서 있는 용칠이 할아버지를 이윽고 발견했다. 아이는 엉거주춤 멈춰서서 고개를 숙였다. 겁이 나서 그런지 온몸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잔뜩 겁을 먹고 있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냐?"
용칠이 할아버지는 속도 모르고 아이를 바라보며 입술을 추켜 올렸다.
아이는 두 손을 맞잡고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아이는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는 입을 모았다.

"저기...하,하 할아버지, 할아버지네 송아지가 이제 막 패기 시작한 우리 논벼를 오, 오십여 포기나 머, 먹어 치웠어요......"
아이는 벌룸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떠듬떠듬 말을 하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지껄여댔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뱉어 낸 말이 용칠이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아하, 저어런 쯔쯔쯔쯔......"
용칠이 할아버지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물었던 장죽을 내려 돌덩이에 탁탁, 털더니 태연스러웠고 얼굴 표정 또한 여유가 있었다.

" 얘야 걱정하지 말아아, 아직은 송아지이지만 소는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도 잘하고...... 성질은 온순하고 참을성이 강한 초식성 동물 아니겠냐. 사람에게 고기를 제공하고 그 뿐만이 아니지, 가죽, 뿔, 뼈 등은여러 가지 세공 재료로 쓰이니 죽어서까지도 사람들에게 큰 기여를 하니 얼마나 좋은 사랑스런 동물이냐. 그러니까 송아지의 입김은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침액과 같아서 농약 이상의 훌륭한 효험이 있단다. 언젠가 이 할아버지가 느네 집 논을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는데 소독을 해야겠더라 . 참 우리 송아진 기특도 하지. 그놈의 송아지 참 장한 일을 했구나....."

아이는 할아버지의 여유있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서 장죽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호통을 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상했다.
성질이 고약하기로 동네에서도 소문이 나 있고 염초청 굴뚝같은 분인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용칠이 할아버지의 의외의 반응에 아이는 당황했다.
아이가 조금 전에 사죄하듯이 한 말이 잘못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잠시 후였다. 잔뜩 겁먹은 마음으로 되는대로 지껄인 자신의 경박을 뉘우치면서 아이는 다시 말을 했다.

"하,할아버지 그게 아니구요. 저희 송아지가 하, 할아버지네 논벼를 오십여 포기나 꿀꺽했단 말이예요."
아이는 쥐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용칠이 할아버지의 눈에 시퍼런 칼이 섰고 얼굴엔 한 차례 용숫바람이 휘몰아 치는가 했더니, 먹장 구름이 주름진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 뭣이! 우우우우 우리 벼를 오오오 오십여 포기나.....!"
아이는 몽니사나운 용칠이 할아버지의 성난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용칠이 할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 표정만이 눈 앞을 가로 막으며 어른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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