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진술 조금 오락가락해도 성범죄 사건에서는 유죄 판결
스크롤 이동 상태바
피해자 진술 조금 오락가락해도 성범죄 사건에서는 유죄 판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 안세희 화백
그림 = 안세희 화백

요즘은 성범죄 사건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추세인데 이는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10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격언으로 표현되는 형사법의 기본적인 정신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 자체를 옹호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며 필자도 성범죄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입장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곽준호 변호사
곽준호 변호사

보통 일반적인 형사 사건에 있어서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에 따라 피고인의 유죄에 대해 검사가 주장과 입증을 전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이후 시간이 많이 경과한 경우에는 검사가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과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동시에 같이 소멸, 소실되기 때문에 검사와 피고인은 일단 비슷한 입장에서 싸우게 됩니다. 물론 기소 이후 단계에서 과연 두 사람이 실질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선 추후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 중 특히 준강간(여성이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의사에 반하여 성관계를 가지는 것) 사건 같은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술자리가 있었고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피해자인 여성 입장에서는 본인은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 성관계를 가졌다고 하고, 피고인인 남성 입장에서는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측의 말이 다를 때에는 성관계 당시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는 둘만이 아는 문제이므로 결국 성관계 전후에 어떤 분위기였는지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3년 전 사건이 뒤늦게 고소가 들어오고 고소를 당한 남성이 피해자 여성의 동의가 있었다고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남성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건 당시 성관계를 한 모텔의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부터 우선 확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이미 준강간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년이 흘렀기 때문에 모텔에서는 CCTV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고, 블랙박스는커녕 자동차는 작년에 바꿨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또 수사를 받으러 가면 수사관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너는 유죄다'는 분위기이며 몇 년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면 어김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추궁을 듣기 십상입니다. 그래도 피의자 신분이 된 남자는 ‘나도 증거가 없지만 어차피 검사 측도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며 이 사건 이후 시간이 흐른 탓으로 증거 수집을 못 해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검사도 마찬가지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기소가 되어 재판이 시작되면 판사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피해자도 증인으로 나와서 본인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면서 앞뒤 말이 다르고, 피해자 증언 이외의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피고인인 남자는 이렇게 피해자도 헷갈리고 피해자 진술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으니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나는 무죄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피해자의 진술만 가지고도 설사 피해자의 진술이 조금 오락가락하고 앞뒤가 안 맞는다고 하더라도 성범죄 사건에서는 유죄 판결이 나오게 됩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되면 피고인이 어디에 가서 정말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겠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과 신만이 알 것입니다. 앞서 말한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격언에 따라서 각종 형사법적인 이론들이 만들어졌지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실질적으로 이런 형사법적인 원칙들이 다 작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볼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또 강조하지만 저는 성범죄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성범죄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라는 이 시대의 흐름에 쓸려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는지, 그런 피해자들이 전혀 없다고 장담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수사만 받았다는 말이 나오더라도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현실을 볼 때 무고한 사람들이 받는 그 막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지, 그리고 처음부터 이런 피해자를 막을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곽준호 변호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fdfs 2019-04-23 22:18:20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J1eOh5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법과 성인식이 잘못되어있습니다. 또한 정말 처벌 받아야 하는 가해자가 아닌 억울한 성범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국민과 정부가 알아야 합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