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해병 제2여단 7중대장의 '다른 고백'
청룡해병 제2여단 7중대장의 '다른 고백'
  • 편집부
  • 승인 2002.08.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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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고백' 중대장의 취재당시 상황 증언

지금도 한겨레21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캠페인"베트남 양민학살 성금 모금을 계속합니다"라는 코너에 월남참전 한국군을 학살자로 몰아넣는 기사가 버젓이 시리즈로 게시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영문(English Edition)으로 게시된 외국사람들이 많이 보는 항목 Vietnam Korean Massacre를 클릭하면 정말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이 부끄러워지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다.

2000년 4월19일자 한겨레 신문에 최초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증언했다는 청룡부대 "김기태"중대장은 누구인가? 그는 왜 그런 끔찍한 증언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기태"씨를 만나서 한겨레21에 증언한 과정을 들어봤다. 이제 여러분은 왜곡된 편집을 일삼는 한겨레21의 실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언론사인지 할 말을 잊을뿐이다.
- 최진현 (vietvet@korea.com)

개 요
일 시 : 2001년 1월 18일 10:00∼16:00
장 소 : 전쟁기념관 4층 전우신문사 회장실
참전 기간 : 1966. 9 ∼ 1967. 11
-소속/직책 : 해병 제2여단 제2대대 7중대장(1966. 9 ∼ 1967. 6)
-계급/성명 : 대위 김기태
현 직 책 : 해병 전우회 봉사활동
대 담 : 최용호, 남정옥, 이선호


[증언내용]

▶ 질문1 : 베트남에 파월 되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답변1
본인은 1955년 서울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제14기생으로 입교하였다. 1960년 해병소위로 임관한 후, 1966년 9월 월남전 참전명령을 받고, 1967년 11월까지 월남전쟁에서 전투 중대장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귀국하였다.이후 1982년까지 약 2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하였다.전역 후에는 금속비소 생산공장 및 대기공해방지시설 설비공장 등을 운영하다가IMF 등으로 경제여건이 여의치 않아 1999년 사업체를 정리하고 집에서 소일하고 있다.

▶ 질문2 : 한겨레21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 경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답변2
금년 2000년 2월 중순경 한겨레21(주간지) 황기자라고 하면서 월남전에 대하여 듣고 싶은 게 있다고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응했다. 그런데 질문의 내용이 '양민학살'에 초점을 맞추어 질문을 하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설명으로 월남전의 특수성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내용은 VC(베트콩)은 양민복장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해 베트콩과 양민을 완벽하게 식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 특수상황인 게릴라전에 대하여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하여 주었다.본인의 설명에 이어서 황기자가 본인 중대가 작전한 과정을 질문하기에 일반적인 상황 외에 부분적으로 부연하여 설명한 것은 있었다.

그러나 한겨레21(2000. 4 27) 제305호와 한겨레신문 2000년 4월 19일자 1면 톱과 3면에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 [참전 중대장 최초 증언] "청년 29명 모아놓고 수류탄 세례" 라는 제하의 제목으로 게재된 보도내용은 본인의 진술과는 터무니없이 다르게 왜곡된 내용이다.이 같은 왜곡된 보도는 당시에 참전하였던 해병청룡부대 2대대 7중대 장병이 월남에 파병되어 양민만을 학살하는 살인극을 벌인 부대로 매도된 것은 너무나 허망하고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본인은 언론 중재위원회에 "시정 반론 보도"를 요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였다.

▶ 질문3 : 귀하의 요구에 대한 언론 중재위원회의 조치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또한 한겨레의 보도에 따라 귀하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답변3
언론 중재위원회는 본인의 요청을 받아한겨레신문에 정정 보도를 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도내용이 너무 작아 효과는 별로 없었다. 한겨레의 보도로 인해 본인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본인의 정신적 충격 피해는 물론이고,본인의 명예와 가문의 명예가 멸실 되었다. <좌측 사진: 한겨레신문의 정정보도 5월24일>

또한 당시 국위선양을 위해 참전하였던 30만 전우들의 명예와,월남전에서 산화한 5,000여명의 유족과,불구의 몸이 되어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전상이 용사들의 명예,그리고 고엽제 후유증으로신체의 부자유한 몸이 된 전우들과 그 가족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아울러 불굴불멸의 해병대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파문이 되어 엄청난 저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해외 여행의 신변위협까지 받을 정도의 파문이 이루어진 피해를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 질문4 : 왜곡 보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답변4
한겨레신문 및 한겨레21은 지난 4월 19일자 1면과 3면 그리고 한겨레21 제305호(2000. 4 27)에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참전 중대장 최초 증언]"66년 11월 작전때 무차별 사살... 상부엔 보고 안해" "청년 29명 모아놓고 수류탄 세례" "베트남 참전 중대장의 '고백' 작전중 세 차례 민간인 학살 마을 주민 40∼50명 사살도... 닥치는 데로 총 쏘고, 불태우고... 밥 먹던 노인, 젖먹이도 피범벅" 등의 제하의 기사에서 양민학살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한 바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본인 김기태와 해병청룡부대 제2대대 7중대 장병은 양민을 학살한 사실이 없습니다. 다만 작전수행 중 양민과 베트콩이 혼재된 상태에서 양민 사이에 낀 베트콩들의 저격과 저항, 그리고 도주가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가운데 그들 베트콩을 추격 섬멸하기 위한 작전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다소의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고의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은 없었다.한겨레 측에서 양민학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에 불과한 사실과 다른 왜곡된 보도이다. 한겨레신문(2000년 4월 19일) 1면 톱기사 제목의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이라고 보도하였다.

▶ 질문5 :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부분도 언급이 있었습니까?
답변5
민간인 학살이란 있을 수 없는 사실로써, 본인이 시인하거나 언급한 사실이 없었음에도있었던 사실인양 허위왜곡으로 보도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지면 제목에 "참전 중대장 최초 증언" 이라고 보도하였다. 이 같은 보도내용은 본인이 한겨레신문에 위와 같이 추상적인 진술을 한바 없었음에도보도의 내용이 진실인 양 호도 하는 제목으로 일관한 사실과 다른 허위 왜곡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동지면 소제목에 "66년 11월 작전때 무차별 사살...상부엔 보고 안해"라고 보도하였다. 위와 같이 무차별 사살한 사실도 없었거니와 상부에 보고 안한 사실도 없었는데, 한겨레신문은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고 무슨 근거로 위와 같이 사실과 다르게 허위 왜곡 보도하였는가? 오히려 본인이 반문하고 싶다.

▶ 질문6 : 베트남 비무장 청년 29명을 학살하였다는 내용의 보도는 어떻습니까?
답변6
한겨레신문 동지면 10열에 "지난 66년 11월 14일 베트남 중부지역 쿠아옹아이 선틴현 지역에서 베트콩 탐색 및 소탕 작전을 수행하던 중 20∼35살 정도의 비무장 청년 29명을 후송과정에서 폭탄 구덩이에 넣고 모두 사살했다"고 증언했다는 보도를 했다. 본인이 본 지면을 통하여 한겨레신문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시에 본인이 지휘하는 7중대는 아군에게 산 위의 바위틈이나 나무 꼭대기에서 집중사격으로 저격을 가해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산악 동굴에 은신하고 있던자들을 동굴 수색에서 색출 검거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월맹군 통치지역으로부터 안전지역으로 후송하고 있었다.이때 인접 4∼5km 떨어진 곳에서 이동 중인 아군 6중대가 월맹정규군 매복대에게 기습을 받아 중대장을 비롯한 많은 전우가 전사 내지 전상을 받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6중대를 구출하라는 긴급 작전지시를 받았다. 이때 귀하라면 어떻게 상황처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헬리콥터 지원은 최소 30분에서 1시간이다. 또한 그 지역은 월맹군 통치하의 중요지역(호지민의 고향)이며, 월맹군 또는 베트콩과 계속접전을 하는 교전지역으로서 감시병 몇 명만을 남겨두고는 6중대 구출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귀하라면 어떻게 상황을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귀하의 현명한 해답이 있어야 될 것으로 본다.

▶ 질문7 : 한겨레신문은 "용안 작전"중에 이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보도했는데...
답변7
한겨레신문 동지면 16열에 "김씨는 '이 사건으로 66년 11월 9일부터 14일까지선틴현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베트콩 소탕작전(일명 용안작전) 과정에서 일어났다'며같은 달 10일 민간인 촌락에 진입하던 중 경미한 사격이 날아오자 그곳에 살던 '부녀자와 노인들 수십 명을 사살하고 가옥을 모두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고 밝혔다는 보도를 하였다.

위 보도에서 부녀자와 노인들을 사살하였다고 하는데, 부녀자나 노인들을 사살한 사실은 없고, 다만 민간인 피해가 다소 있었음을 한겨레21에 언급한 바 있었던 것을 한겨레신문은 이를 인용하여 사실과 다르게 허위 날조 보도하였다 또한 가옥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허위 날조된 조작 보도이다. 공격작전 중 가열된 실탄이 초가에 박혀 불이 난 경우는 있어도, 고의로 불을 지른 적은 단 한 건도 없었음을 밝혀 두는 바이다.

▶ 질문8 : 한 마을의 주민 40∼50명을 모아 놓고 집단학살 하였다는 기사는?
답변8
한겨레신문 동지면 28열에 "김씨는 또 한마을에서 40∼50명 정도의 주민을 모아 놓아다가 모두 집단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며 '당시 나는 중대원들에게 살려 주라'고 명령했으나 뒤에 남아 있던 부대원들이 이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보도를 하였다.위 보도에서 40∼50명 정도의 주민을 모아 놓았다가 집단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위의 보도와 같이 집단 사살하였다는 보도는 터무니없는 날조된 보도다. 또한 중대원 들에게 살려주라고 명령했으나 뒤에 남아 있던 부대원들이 이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위와 같이 언급한 사실이 없다. 지나치게 왜곡된 허위 보도다. 중대장은 베트콩을 추격하는 전방 소대를 무전으로 지휘하고, 상부에 상황보고하고, 인접 중대와 밀접한 협조 교신하기도 바쁘다. 만일 뒤에서 불시에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산발적으로 일정한 도주로가 없이도주하는 베트콩 또는 그 용의자를 일차 부르고, 그래도 도주하며는 갈겨버리는 경우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또한 한겨레신문은 "김씨는 이런 살상 내용을 상부에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너무도 터무니없는 상식에도 없는 보도다. 어떻게 접전중인 전투상황에서 중대장이 시시각각으로 발생하는 상황보고를 하지 않는단 말인가? 오히려 반문하고 싶은 허황된 보도가 아닐 수 없다.

▶ 질문9 : "질문6"의 베트남 청년 29명을 사살한 일은 있었습니까?
답변9
한겨레심문 동지면 3면 제목기사에 "청년 29명 모아놓고 수류탄 세례" 라고 보도하였다.위 보도와 같이 29명을 사살하였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전날 전투에서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준 베트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설명을 수 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설명하여 준 전제사항은 일말에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마치 29명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것인 양 단편적인 보도로 일관한 것은 지나치게 왜곡된 보도였다. 마치 한겨레신문은 당시의 적이었던 베트콩을 옹호, 미화하는 보도로 일관하고 있음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반공국가인 대한민국의 언론인지 심히 의심치 않을 수 없는 사실로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 질문10 : 베트남 참전중대장이 고백하였다는데...
답변10
한겨레신문 동지면 소제목으로 베트남 참전 중대장의 '고백' 이라고 보도하였다. 본인은 위 보도와 같이 고백한 사실이 전혀 없다. 다만 한겨레21이 월남전 당시 한국군이 주둔하여 작전하였던 지역의 민간인 피해 상황을 모두 사전 조사한 후에,피해 주민들의 과장된 증언만을 토대로 양민학살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취지를 근본으로 하여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양민학살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하였다.

이어서 본인은 여러 가지 수많은 작전에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는 양상을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하여 주었는데 마치 그와 같은 것이 고백을 한 것으로 왜곡 보도 되리라고는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과연 한겨레신문이 이렇게 왜곡된 보도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언론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증언자로부터의 사실입증을 근거로 보도했어야 하며 아울러 이제는 양민학살이라는근본적 목적을 추구하는 취지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 질문11 : 작전중 세 차례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데...
답변11
한겨레신문 동지면 소 재목으로 "작전중 세 차례 민간인 학살"이라고 보도하였다. 우선 위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하나도 입증되고 시인된 바 없는 소제목을 무엇을 근거로 조작 보도하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의에 찬 보도다.누가 어디에서 세 차례나 민간인을 학살했단 말인가? 한겨레신문은 소제목 하나하나 내용 하나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이와 같은 왜곡 보도로 당시 작전에 참전하였던 7중대 장병들을 매도하는 일이다시는 발생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 질문12 : 그렇다면 마을주민 40∼50명을 집단 학살하였다는 기사는...
답변12
한겨레신문 동지면 소제목으로 "마을 주민 40∼50명 사살도" 라고 보도하였다. 본인은 위 보도 내용이 근거 없는 허위보도 내용임을 밝힌다. 본인은 한겨레21이 주장하는 양민 40∼50명을 학살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시인 또는 인정한 바 없다.한겨레 측이 일방적으로 현지 주민들의 과장된 증언기록만을 토대로양민학살이라는 주장과 함께, 공인된 피해조사에서 입증되지도 않은 사실을양민학살로 기정사실화 하려는 논리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양심 있는 시민들을혼란케 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겨레신문은 필히 깊은 반성의 자구책이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반드시 사실에 입각한 진실보도를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 질문13 : 용안작전 1단계 작전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데...
답변13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1행 5열에 "용안 제 1단계 작전과정에서 세 차례 민간인을 학살했다", 고 보도했다. 우선 위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하나도 입증되고 시인된 바 없는 사실을 무엇을 근거로 조작 보도하였는지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의에 찬 보도다. 누가 어디에서 세 차례나 민간인을 학살했단 말인가?한겨레신문은 보도내용 하나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이와 같은 왜곡 보도로 당시 작전에 참전하였던 7중대 장병들을 매도하는 일이 또다시 발생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 질문14 : 귀하의 7중대가 사살한 29명이 민간인이었다고 하는데...
답변14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1행 9열에 "소대장은 '이놈들 어떻게 할까요?' 라고 중대장에게 물었다. 눈앞에는 20∼35살 가량의 청년 29명이 탄약 줄에 두 손을 묶여 굴비처럼 엮여 있었다. (중략) 중대장은 짤막하게 지시했다. '저리 끌고 가' 베트남 젊은이들은 차례로 폭탄구덩이에 던져졌고 자동화기와 수류탄 세례가 가해졌다. 그리고 대원들의 확인사살이 이어졌다,"라고 보도했다.

위 보도는 사실과 다르게 많이 왜곡되었는데, 한겨레 측이 전후사항을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이들을 양민으로 비화하는 이유를본인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으로서 한겨레 측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당시에 본인의 판단으로는 그들이 분명한 베트콩이었음을 확신하여 주었는데,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가한 그들을 독자들로 하여금 양민으로 오판하게 하는 기사로 일관하는 한겨레 측은 분명히 그 사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 질문15 : 민간인 학살 장면을 진술한 적이 있나요?
답변15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1행 맨 밑 25열에 "길바닥엔 아이들과 여자들, 노인들의 주검이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가 깨지고 팔이 떨어져 나가고... 주검이 무더기로 있는 곳도 보였다"고 보도하였다.본인은 상기와 같은 표현을 전혀 한 일이 없음에도 무자비한 살인극을 벌인 중대로 독자들이 인식케 하는 보도를 한 것은근본적인 양민학살이라는 취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자비한 표현으로 매도한 사실과 너무도 다른 보도이다.

▶ 질문16 : 한겨레신문은 중대장의 조치사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답변16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2행 3열에 "중대장은 무전으로 앞서가는 소대장들에게 고함을 쳤다. '야, 이 새끼들아, 그만 좀 죽여!' 이 마을에서 대략 몇 명이 죽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주검을 밟고 가야할 정도로 많은 주검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보도하였다.본인의 진술은 공격 목표로 선정된 베트콩 마을을 공격 추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다소 희생된 것은 사실로서, 죽음을 목격하고 불타고있는 가옥사이에서발로 밟고 넘어간 적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겨레 측의 보도에는 "주검이 널브러져 있었다"는 표현으로 많은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것처럼 사실과 다르게 과장 왜곡 보도하였다.또한 본인이 앞으로 진출하는 소대장에게 "죽이지 말라"고 무전으로 소리쳤다고 하였다.얼마를 죽였기에 "그만 좀 죽여라"고 하는 표현을 써서 독자로 하여금많은 양민을 학살한 느낌을 갖게끔 하는 왜곡되고 편향된 표현 보도는사실과 너무도 다른 보도이다. 또한 "이 마을에서 대략 몇 명이 죽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하는 보도는질문 받은 일조차 없고, 더더욱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준 사실조차 없는 터무니없는 왜곡된 보도로서, 현지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조작된 보도이다.

▶ 질문17 : 여자들과 노인들을 학살하였다고 하는데...
답변17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2행 9열에 "앞서가던 2소대와 3소대원들이 이번에는 주민들을 모아 앉혀 놓았다. 40∼50명쯤 됐을까. 대부분 아이들과 여자들, 노인들이었다. '야, 그냥 보내!' 중대장은 중대본부를 뒤따라오던 화기소대에 주민들을 살려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소대들을 지휘하며 전진했다.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뒤에서 총소리가 요란했다. '야, 뭐야!' 중대장이 고개를 돌리며 고함쳤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 병사의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총성은 계속됐다!"고 보도했다.

위의 보도 내용은 한겨레 측이 "40∼50명의 양민을 학살했다"는 가정을 기정 사실화하여 작성 보도된 내용이다. 본인은 이 상황에서 40∼50명의 민간인이 모여 있었다고 시인한 바는 있다. 이 때 나는 앞으로 전진하면서 소대를 지휘하고 있을 때 뒤에서 총소리가 한 두발 탕! 탕! 났다고 하였다. 뭐냐고 하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누군가 말하기에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소대를 지휘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겨레 측에서는 "총성이 계속됐다"고 왜곡 보도하였고, 또한 모두 살해당했다고 하기에 그 후의 상황은 보고 받은 바 없어 모른다고 하였는데,사실과 다르게 시나리오로 재구성한 왜곡 보도이다.

▶ 질문18 : "민간인 학살이 알려지지 않도록 확인사살 하였다"고 하는데...
답변18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3행 7열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냥 갈 수 없었다. 누군가 살아 남아서 증언하게 되면 골치 아프니까. 중대장으로선 전쟁터에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지면 알려지지 않도록 '확실히(확인사살을) 하라' 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하였다.본인이 위의 보도 내용과 같은 말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다만 베트남의 여러 게릴라 작전에서 상황 상황에 따라 간간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양민을 학살하였다"는데 초점을 맞추어 짜깁기한 시나리오로서 사실과 다르게 왜곡 보도된 것이다

▶ 질문19 : 용안작전에서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이 사살되었다는데...
답변19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4행 박스기사 2열에 "용안작전 이틀째 있었던 푹빈촌 사건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이라 죄책감이 든다"고보도하였다. 위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었다. 한겨레 측에서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부녀자들이거나 어린이들이라는 사실조차본인은 모르는 일이고 사실을 시인한 일이 없다. 아울러 죄책감이 든다고 발언한 사실이 없는 왜곡 된 보도다.또한 동지면 4행 36열에 "그러나 작전이 일찍 끝나지 않고 아군이 피해를 받으면 사살했다", 라고 보도했다.

위 보도와 같이 언급한 바 없는 왜곡된 보도로서 사실 무근인 보도다.동지면 4행 41열에 "젊은 사람들은 도망가 숨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은 안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마을에 남아 있던 어린이들과 부녀자 등이 오히려 피해를 많이 봤다"고 본인이 언급한 것처럼 보도하였다. 위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본인이 베트콩들을 추격하는 가운데 다소의 비전투원인 민간인이 피해를 받는 일이 있었다고 언급한 바는 있다.이러한 피해 주민이 어린아이거나 부녀자들이라고 시인한 바도 없고 확인시켜 준 사실도 없는데 다만 피해 주민들의 증언만을 토대로 추측 보도된 것으로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 질문20 : 한국군이 귀와 코를 잘랐다는데...
답변20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4행 46열에 "한국군이 귀를 자르고 코를 잘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중대원 가운데 한 명은 죽은 사람의 눈알만 파서 알코올 병에 담아두는 병사가 있었다. 또 한 명은 한쪽 귀만 잘라 모아 철사로 꿰어 막사 앞에 걸어놓기도 했다. 전투성과 보고용이다. 귀국할 때 기념으로 가져가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위 보도는 한마디로 사실과 다르다.한겨레21측이 현지 피해 주민들의 증언에서 들은 이야기로 귀를 자르고 코를 잘랐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랬냐고 하기에 그런 사실 없다고 하였다. 다만 한 병사가 베트콩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면 전리품으로 귀나 눈을 가져온 경우는 있었다고 했는데 위 보도에서는 마치 양민의 귀나 눈을 자르거나 뺀 것처럼양민학살의 느낌을 주는 보도로 일관하여 왜곡보도 하였다.

▶ 질문21 : 본인을 "살인 교사자"라고 자책하였다는데...
답변21 한겨레신문은 동지면 4행 57열에 "나는 살인 교사자이자, 살인 집행관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비록 부하들이 죽였지만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보도하였다. 위 보도에서와 같이 본인이 살인 교사자이자 살인 집행관이라고 증언이나 시인한 바도 없고, 또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시인한 바도 없다. 그런데 마치 양민을 학살하는 작전을 수행한 것인 양 지나치게 양민학살이라는취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허구의 문장으로 일관하여 구성한 왜곡 보도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한국군의 작전을 매도하였음이 역력한 보도이다.

▶ 질문22 : 한겨레신문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답변22
한겨레신문(2000년 4월 19일자)에 보도한 내용의 초점이 한겨레 측의 주장처럼본인이 양민학살을 고백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29명의 베트콩을 부득이하고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사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주장과 함께 당시의 베트남전이 양민과 베트콩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비정규전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특수 상황을 일관되게 주장하였다.그러나 한겨레 측에서는 전혀 그러한 당시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지 주민들의 일방적인 피해 주장과 증언기록만을 토대로 삼으려 하였다. 때문에 본인이 월남전의 일반적인 전쟁양상과 작전양상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면서다소의 민간인 피해가 있었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한겨레 측에서는 본인이 상황,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적인 설명을 모두 왜곡되게 재구성하여 한겨레 측의 보도방향과 부합시키고, 현지인의 증언과 기록에 맞게 양민학살이라는 어구에 시인한 바 없음에도시인한 것으로 보도하였다.한겨레 측의 이 같은 보도는 지나친 인권침해와 함께 위법을 초래하였다. 아울러 금번 보도로 인한 개인의 명예와 많은 관련단체들의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본 기사를 왜곡 과장 보도한 한겨레 측은 정중한 사과문을 보도함으로써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신망 있는 언론이라는 명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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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2008-10-30 09:51:24
한계레 황기자놈의 사상부터 알아야 할것입니다 나도 그당시 목숨걸고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고 지금은 전상과 고엽제로 어거지인생을 살지만 우릴 그런식으로 매도한다면 황기자네놈도 적으로 간주하여 적절하고 응분에 댓가를 받던지 확실하고 진심에 용서를 구하여라